군함도, 망각의 역사

Overdye*~ 2017.09.14 15:01

 

  실제 역사적 사실로부터 영감을 받아 창작되었음시작을 알리면서 자막이 뜬다. 영화는 허구다. 영화는 진실을 고스란히 드러낼 수 없다. 사실은 적당한 수준을 노출하고 문제의식 정도에 머물 수밖에 없다. 영화 상영 후 12년 한국사 교과 과정에서 단 한 줄도 기록되지 않았던 역사에 이목이 집중된다. 영화가 사회에 끼치는 영향은 무시할 수 없기에 진실 공방이 등장하기도 한다.

 

 영화 시작부터 창작물임을 밝힌다. 역사를 다시 재조명할 기회를 준 것만으로 영화는 충분하다. 20173월 민족문제 연구소에서 출간한 군함도, 끝나지 않은 전쟁에는 일제 강제동원 100년의 진실이 있다. 그 진실은 과거사로 묻혀 지금도 한국 근현대사의 쟁점과 과제를 연구 해명하고, 과거 청산 운동을 통해 정의 실현을 위해 민족문제연구소 활동이 있을 뿐이다. 국가 차원에서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민간연구소로 친일인명사전을 편찬했다.

 

 일제가 조선인 노동자를 대규모로 동원한 이유는 장기화되던 중일전쟁 때문이었다. 이를 보충하기 위해 식민지 조선으로 눈을 돌려 일본에 가서 일을 하면 쌀밥을 배불리 먹을 수 있고 돈도 많이 벌 수 있다는 말로 조선인들을 유혹했다.

 

 반신반의한 조선인들이 응모자가 많지 않자 강제모집에 나섰고 면서기와 순사들을 대동하고 나섰다. 그래도 부족한 인원을 보충하기 위해 19442월 일제는 조선에도 강제동원령을 국민징용령을 적용했다. 할당된 인원수를 채우기 위해 어린 아이까지도 무차별 강제징용 대상이었다.

 

 강제징용에는 일제에 협력하여 부를 쌓은 조선인 역할을 외면할 수 없다. 그들은 현재까지 민족을 거들먹거리며 잘 먹고 잘 살아온 권력 부역자들이다. 자본 축적으로 여전히 국민을 우롱하며 왕성하게 정치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나는 탐욕하는 인간이 야만성을 드러낼 때, 인간으로 보지 않는다.

 

 조선이 망하고 대한제국이 선포되면서 일제강점기를 지나 해방을 맞기까지. 분단과 독재, 한국적 민주주의와 신군부 쿠데타, 3당 합당으로 정치 지형이 오염된 문민정부 시절, IMF 시기의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를 거쳐 이명박 정부와 탄핵 정부. 5월 대선에서 작은 희망을 다시 품는 문재인 정부까지 1세기 넘게 역사는 단 한 번도 사실을 기록할 수 없었다.

 

 100세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국가주도 경제 성장을 앞세우며 삶의 가치는 무엇이었나? 한국 사회에 철학이 존재하는가? 행복추구를 위해 한국사회는 무엇을 해 왔나? 끊임없이 되묻게 되는 질문들에 기성세대는 무슨 답을 낼 수 있을까? 채무의식은 쌓여만 간다. 성장만을 앞세워 행복한 삶을 돈으로 사는 것이 더 쉽고 빨랐던 세상에서 가 살아가는 이유를 스스로에게 묻는다.

 

 5월 대선으로 정권이 교체되었지만 국민을 대의하는 국회는 아수라장이다. 정당의 존재를 생각한다. 현재 국회 갈등은 민주주의에서 자연스레 일어나는 갈등이 아니기에 정기국회를 바라보는 시민으로 낯부끄럽다. 대의명분이 사익으로 사칭될 때 민주주의는 비틀거린다.

 

 정치가 제대로 작동할 한국사회는 국민들의 관심으로 가능하다. 국민의 알권리를 위한 노력, 공정 언론을 되찾는 일이기도 하다. 국가 정보가 투명하고 공정하게 전달될 수 있는 매스 미디어는 개인들의 안목을 필요로 한다. 내가 바로 세상을 볼 수 있어야 하기에 꿈틀거려야 한다. 내 삶을 향유할 수 있는 시대, 정치가 제대로 작동될 때이다.

 

 ‘18909월 탄광개발에 착수하여 1937년 중일전쟁을 기점으로 태평양 전쟁에 이르기까지 일본 군수 산업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군함도는 1970년에 일본의 새로운 에너지 정책으로 19741월 폐관된다. 2015년 군함도는 일본 메이지 산업혁명에 포함되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제되었다. 현재 일본 정부는 201712월까지 강제징용을 포함한 각 시설의 역사적 사실을 알려야 한다는 유네스코 권고사항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 영화 마지막 자막이다.

 

 이제 한국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 민간 연구소에만 맡길 것이 아니라 공적 자금을 투입하여 살아있는 역사를 후대에게 알릴 의무와 책임을 더 이상 미루어서는 안 된다. 엄청난 자금을 유네스코에 후원하고 있는 일본은 전범기업의 산업시설을 세계유산으로 지정하는 후안무치한 정치인들이 앞장서고 있다.

 

 현재까지 강제동원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유가 친미와 친일을 개인의 탐욕과 정치적으로 이용한 독재정권 1965한일협정이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특히 간과해서는 안 될 사실은 굴욕의 한일협정 뒤에는 미국이 있다는 점이다. 미국이 제 나라를 위해 한국의 운명을 농단하고 있다는 인식이 절실하다.

 

 인간이 얼마나 야만일 수 있는가. 기업이 전쟁을 이용하여 이익을 얻어 부를 축적하는 일. 국가가 내거는 애국이라는 이유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짓밟힐 수 있는가. 사회약자들이 만나는 공포는 도대체 누가 조장하는가를 생각한다. 생존본능만으로 인간은 살아갈 의미가 있는 걸까.

 

 영화에서 건네는 미래를 바꿀 힘은 촛불이다. 지난 겨울 광장을 밝히던 시민들의 촛불을 연상하게 하는 장면이 군함도를 탈출할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 영화 마저도 희망을 말할 수 없다면 대중영화는 관객을 잃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세상은 너무 고약하지 않다는 약간의 희망으로 그 다음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자리를 뜰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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짓다

 

 

협동조합 붐이 내게로 밀려왔던 몇 년 전 품었던 설렘으로 지금 서 있는 분명한 이유를 다시 생각하며 <가장자리>라는 협동조합으로 세상 읽기를 시작하는 아침이다.

 

대통령 탄핵 인용 선고를 하루 남긴 오늘, 편지 한 통을 받았다. 4년을 협동조합 <가장자리> 조합원으로 있었다. 이젠 과거의 일로 되었다. 이사장으로 자리를 지켜낸 홍세화 선생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희망을 품고 달려오던 시간이었다.

 

자주 만나거나 조합원으로 활동은 게으른 자의 변명으로 남았다. 그동안 정기적으로 가장자리에서 보내준 <말과 활>이란 잡지와 어느 때부턴가 잡지가 멈추고 책 한 권이 오기 시작했어도 변화를 감지하지는 못했다. 다음 카페 활동도 있었고 사유의 공간도 있다.

 

나는 마음만 있었다. 혼자서 책 읽고 조합비를 내는 것 말고는 협동조합을 위한 구체적인 일은 하지 않았다. 그나마 변명으로 삼고 싶은 것은 꾸준한 책 읽기와 작은 모임을 하고 있다는 정도일 게다. 경제활동을 전제로 하는 협동조합이기에 가장자리가 추구하는 목적과는 결이 달랐다는 현실의 문제가 충분히 이해된다.

 

다행스럽게 홍세화 선생님은 그 마음을 지켜 임의단체인 <소박한 자유인>으로 전환을 했다.

 

<소박한 자유인>의 발기인 홍세화 선생님과 같은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소박한 자유인이기에 편지 일부를 소개하고 싶다.

 

 

짓다라는 한국어 동사가 있습니다. 농사를 짓고, 옷을 짓고, 집을 짓습니다. 인간 생존에 필수적인 식의주가 모두 짓다의 목적어가 됩니다. 따라서 사회 구성원 중 아무도 부족함이 없도록 잘 짓고 잘 나누어야겠지요.

 

제가 느닷없이 짓다라는 동사를 꺼낸 것은 우리 각 개인에게 주어진 과제가 나를 잘 짓는 데 있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한 번 태어나 되돌릴 수 없는 나를 어떻게 지을 것인가는 결국 각자의 몫입니다. 긴장이 필요합니다. 그 증거로서 책과 함께 사는 것만한 게 없다고 믿습니다.

 

<소박한 자유인> 발기인 홍세화

 

내가 걸어오고 선택한 여러 갈래의 길은 결코 평탄한 길은 아니었다. 내가 가는 길은 늘 마음이 먼저 가는 길이었다. 그 길에 같은 마음으로 함께 할 사람이 늘 그리웠다. 사람들의 고통에 마음을 열고 공감한다는 것은 다른 존재와 두루 관계를 갖고, 그들을 깊이 느낌으로써 삶에 참여하고 의미를 찾는다는 것이겠지. 아름다운 동행에는 우리가 수없이 있다.

 

경제 조건이 악화하고 정치가 불안해지고 절망적 분위기가 만연해지면 사회적 신뢰는 사라진다. 우리가 정서적으로 공감을 통해 새로운 에너지를 만들어야 할 때이다. 어느새 우리는 이 사회를 잠식한 모든 신자유주의에 매몰되어 사람보다는 효율을 앞세워 숨을 헐떡거린다. 이 노동의 가혹한 현실과 부정의를 물리칠 때 우리는 서로 치열하게 경쟁할 이유가 사라진다.

 

얼마나 행복하겠는가. 신나게 놀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내 나라의 말로 책을 읽고 수다를 떨고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은. 우리의 정체성을 지켜나갈 수 있을 때 우린 좀 더 행복해질 수 있다. 영어 몰입 교육으로 음악 대신 영어 듣기 파일을 안 들어도 되고, 성형으로 동글납작한 얼굴을 깎아 낼 이유도 사라진다. 그저 나답게 생긴 대로 살고 싶은 대로 살아가도 될 세상이면 싶다.

 

그런 세상을 만들어 내는 일. 우등과 열등 인간의 구분으로 진행되는 사회는 전체주의를 자각하는 일이 필요했다. 국가권력이 공인으로 자격 없는 이들의 손에 쥐어졌을 때 국민은 기만당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더는 그들에 손에 놀아나지 않을 공정한 언론이 필요하다. 공영방송의 역할을 바로 세우고 국민을 대의 하는 국회의 책임을 요구하며 너무도 당연한 알 권리가 보장되어야 했다.

 

Pay it for world*~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 실천을 했던 나눔 운동,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세상을 향한 마음들이 모여 협동조합이 탄생했지만, 지금까지 온갖 어려움에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현실감의 벽은 참으로 높다. 이 땅에 사람을 향한 가치가 넘치기를 바라는 마음들이 함께 하는 협동조합의 조합원 참여는 아름다운 동행이다. 그 동행을 가능하게 할 순간의 선택은 늘 내 몫이었다.

 

 

각 개인에게 주어진 과제, 나를 잘 짓는 데 있다. /홍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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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정치를 공부하는 일은 이 사회에서 행복한 시간으로 내 삶을 채우기 위한 거다. 그래서 가장 궁금한 것을 먼저 알아가며 이해하려 노력하는 거다. 그동안 사회적으로 학습된 내 머릿속에 있는 기존의 생각들을 좀 벗어나서 차근차근 진행해 보는 일은 꽤 재미있다. 그래서 개념부터 정리해 보고 키워드를 설정하고 그와 관련된 자료들을 찾아내며 끊임없이 묻고 또 묻는 일이기도 했다.

 

정치(政治)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두 가지의 의미를 알 수 있다. 하나는 통치자나 정치가가 사회 구성원들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거나 통제하고 국가의 정책과 목적을 실현하는 일이다. 두 번째는 개인이나 집단이 이익과 권력을 얻거나 늘이기 위하여 사회적으로 교섭하고 전략적으로 활동하는 일로 풀어 놓았다. 정치는 이사회에서 살아가는 구성원들이 할 수 있는 일인 거다.

 

사회 분야마다 전문가들이 있다. 그들의 책이나 관련된 자료들을 찾다 보면 떠오르는 물음들이 있다. 주변에서는 유독 정치와 관련된 책들도 말들도 조심스럽게 꺼내야 하는 경우도 많다. 최근에는 사상에 대해서까지 조심스러운 말에 끼어들어 가버린 것 같은데 이런 일들이 꽤 오랫동안 한국사회에 내재하여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자기검열이 자연스러워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일상에서 특히 정치는 이상하리만치 멀리 있다.

 

나의 시선을 끈 관심사는 선거 개표이다. 20121219일 대선이었다. 그때 개인적으로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 선거 결과였다. 이 대선의 결과를 받아들이기 어려운 점은 그때까지만 해도 순전히 한국사회를 바라보는 개인의 몰이해였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힘들었던 시간이었다. 87항쟁 이후 한국적 민주주의는 그 명을 다했다고 보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적어도 이명박 정권을 지나오면서 선거를 통해 그 정권이 연장되리라고는 상상하기 힘들었다. 5년을 겪고도 이런 대선 결과가 나올 수 있었다는 점에 의구심을 떨칠 수가 없었다. 물론 언론의 불공정함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진행된 것이기에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은 것도 한몫했다. 옳지 못한 방법으로 얻은 부귀는 뜬구름 같다는 공자의 말에 위안으로 삼을까.

 

그렇게 현 정부는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 탄핵의 헌재 판결을 앞두고 특검이 진행 중이다. 여전히 언론은 그 모양으로 있고 가짜 뉴스들은 그칠 줄 모른다. 삼권 분립이라는 민주주의의 원칙은 박근혜 정부에서 상징적인 단어 블랙리스트로 대한민국의 헌법 정신은 고사 직전에 놓여 있다. 적어도 다시는 그런 일이 반복될 수 없어야 하기에 현재의 정치를 주시한다. 정치가 작동되지 않는 사회, 민주주의는 비틀거리지만,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이니까.

 

중요한 것은 자본주의에서 유일하게 평등한 11표로 다수의 유권자가 행사한 투표가 개표 과정에서 부정된다면 결과는 늘 같을 수밖에 없다는 점이겠다. 공정한 선거 결과를 도출하기 위한 선거 개표 과정이 투명하게 진행되어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어쨌든 유권자의 다수가 선출한 대통령이니 다수결의 오류라 해도 인정할 것은 인정할 수밖에 더 있나. 문제는 투명성이 없어 믿을 수가 없다는 것이고 그것은 결과에 승복하기 어려운 일이 된다는 점이기도 하다.

 

개인의 일이야 나 홀로 해결해 나가야 할 문제이지만 한 사회에서 일어나는 널린 의문들은 사회 안에서 해결해 나가야 한다는 거다. 그런데 그 의문들을 무시하거나 왜곡해 버린다면 쌓인 물음표들은 결국, 이 사회를 둘러쌀 거대한 장벽이 되고 만다는 거다. 정치는 정치인만이 하는 일이 아니었다. 그 정치가 나의 삶을 피폐하게 만든다면 바로 내가 정치적이어야 한다는 가장 큰 이유가 될 수 있다. 정치적으로 산다는 것은 사람과 사람이 더불어서 공생하는 것을 말하지 않던가.

 

정부가 현 사회의 제 문제들을 다루는 능력의 한계가 클수록 정치는 현실을 외면하는 개인들을 확산하는 시작이 된다. 내가 아무리 기를 써도 현재의 삶에서 나아지기 어렵다는 생각이 짙어질 때가 있다. 하루의 노동이 내일의 하루를 따라갈 수 없다면 그다음 날을 생각해 볼 수 있을까. 내일 일자리가 사라진다면 과연 노동은 내가 원하는 삶을 위해 필요한 것일까. 사람이 먹고사는 데 필요한 존재로 머물 뿐이라면 인류는 이렇게 긴 여정을 이어오지는 않았을 거다.

 

내가 선택한 삶의 첫울음은 아니었어도 내게 주어진 삶은 적어도 내가 운영할 수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내 삶을 누리는데 이 사회가 방해꾼이 된다면 그것을 물리쳐야 하는 것 아닐까. 생존은 그런 것이어야 한다. 먹고 사는 것이 아니라 살아야 하므로 먹어야 하는 것처럼 사람으로 좋은 삶을 누릴 이유는 충분하다. 정치적 존재가 된다는 것은 내 삶을 내가 제대로 살아내기 위한 정치인 거다. 끊임없이 나를 낯설게 만나기 위함이다. 너무도 익숙해진 시간에 정치로 딴죽을 거는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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