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소식 2017.12.19 11:01

 

 

 

한 곳에 뿌리 내리지 못하는 습성을 방랑벽이라고 하던가. 어머니께서 왕성하게 사회활동을 하던 시절에는 사주를 보는 일이 흔한 일이었다고 한다. 그 시절 사주를 보고 성인이 된 후에 알려주셨다. 나는 세 가지를 타고 났는데 그중 하나가 역마살로 한곳에 머물지 못하고 이리저리 떠도는 삶을 타고났다는 말이었다.

 

이불보를 꿰맬 때 바늘에 실을 길게 잡으면 집에서 멀리 간다던데 내가 그랬다는 거였다. 그런 말을 들을 때면 웃으며 지나왔는데 지금을 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

 

어찌 되었건 내게는 사주와 상관없이 만들어진 이 있다. 내게 삶의 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데 세월이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사주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어머니는 인정하지 않으시지만, 아무래도 이 결을 설명하려면 세월을 풀어야 가능할 이야기이긴 하다.

 

40년이나 지나 서야만 눈치를 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새삼스레 나이를 가리키는 숫자가 바뀔 날이 막바지에 올 12월 중반이 넘어갈 때면 어김없이 기억은 살아난다. 어떻게 이런 삶을 살아가고 있는 걸까 하는 질문을 던지면 단 하나 글자가 떠오른다.

 

 

결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중심으로 솟아 시작되는 것은 책 읽기다. 십 대부터 현재까지 이어온 진한 선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책 읽기에서 시작된 일과 놀이로 쌓아온 세월의 더께는 삶의 가치를 만들어가는 데 필요충분조건이었다.

 

출판물이 하루에 몇천 권씩 쏟아져 나오는데 그 생산량에 비교해 소비는 바닥이다. 예외로 놓을 출판물은 실용서이고 문학 관련 출판물은 베스트셀러이거나 출판사 광고와 마케팅으로 후원하는 책이 관심을 끌기는 한다. 아니면 ‘00이라는 수식이 필요하다. 대부분 신간 코너에 1주일쯤 머물다가 물류창고로 사라지는 일은 흔한 일이다.

 

한국사회에 책 읽는 문화는 거의 실종 중이라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청소년 시기부터 책 읽기보다는 지식을 암기하고 누군가 원하는 정답을 알아맞히는 일이 중요하니까. 책을 읽으며 생각에 잠기거나 이야기를 나누는 일은 자연스럽게 만들어지기 어렵다. 그나마 막연하게 책을 읽어야지 하면서 읊조리기는 하지만 막상 그 선택은 늘 다음으로 밀려난다.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들은 빠르게 표준화를 따른다. 마음으로 볼 수 있는 것들은 설명하기 힘든 이유도 있지만, 그것이 대개는 마음으로 알아차리는 일이 더 쉬운 이유도 있다. 책 읽기 문화는 선택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에 주류가 되기도 하고 밀려나기도 한다. 하지만 인류사를 돌아보면 이 세계를 지탱하는 중심에는 꼿꼿하게 있는 책이 있다.

 

내게 필요한 필수품 구매가 늘 책값에 비례해서 가늠되는 일은 저절로 만들어진 판단 근거였다. 멋진 옷 한 벌을 사야 할 때면 책이 몇 권인가를 떠올리게 되는 일처럼 개인에게 소용되는 물품에 우선순위는 다르다. 그 순위에 따라 삶의 결이 흐르는 것 같다. 그 결을 알아차리는 경우는 삶의 전환이 필요한 시기, 어김없이 영향을 준다.

 

책에서 답을 구하는 일이 내게는 가장 쉽고 편한 경로였는데 그 이야기를 할 때면 목청이 높아진다. 새천년 시작을 알리며 달력의 첫 숫자가 1에서 2로 바뀌던 200011. 그 날 보신각 종소리는 유난히 컸던 기억이 있다. 20세기 마지막 해에 21세기를 준비하는 사회 분위기는 꽤 좋아 보였다. 이제야 한국 사회가 변화 가능성을 공론화하는구나. 길게 늘여 십 년 동안 가능했던 일이다.

 

1970년대 경제 급성장에는 가능했던 지식으로 지금까지 계속되는 교육과정이 진행 중이다. 문재인 정부 교육정책이 하루아침에 뒤바뀌기 힘들다. 거의 1세기를 같은 방법으로 축적한 기득권이 물러나 다양한 계층으로 채워지기까지 적어도 그만큼 시간이 필요할 테니까. 사회속도는 기업이 질주하는 속도를 따라잡기가 힘들다. 그렇기에 개인이 그 속도를 따라잡아야 하고 그 시작이 책 읽기 문화라 생각한다.

 

책 읽기는 내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되었고 그것으로 십 대 꿈을 이룬 것은 삶의 일상이 가져다준 기회였다. 어느 분야든 소수이지만 달인들이 있다. 전문가라는 명패보다는 자기 즐거움으로 공부를 하며 세상을 바라보고 책에서 얻는 다양한 지식과 경험을 활용하는 평생 책 읽기를 벗 삼고 있는 사람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 내가 행복해야 하는 것은 내가 태어난 이유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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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함도, 망각의 역사

Overdye*~ 2017.09.14 15:01

 

  실제 역사적 사실로부터 영감을 받아 창작되었음시작을 알리면서 자막이 뜬다. 영화는 허구다. 영화는 진실을 고스란히 드러낼 수 없다. 사실은 적당한 수준을 노출하고 문제의식 정도에 머물 수밖에 없다. 영화 상영 후 12년 한국사 교과 과정에서 단 한 줄도 기록되지 않았던 역사에 이목이 집중된다. 영화가 사회에 끼치는 영향은 무시할 수 없기에 진실 공방이 등장하기도 한다.

 

 영화 시작부터 창작물임을 밝힌다. 역사를 다시 재조명할 기회를 준 것만으로 영화는 충분하다. 20173월 민족문제 연구소에서 출간한 군함도, 끝나지 않은 전쟁에는 일제 강제동원 100년의 진실이 있다. 그 진실은 과거사로 묻혀 지금도 한국 근현대사의 쟁점과 과제를 연구 해명하고, 과거 청산 운동을 통해 정의 실현을 위해 민족문제연구소 활동이 있을 뿐이다. 국가 차원에서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민간연구소로 친일인명사전을 편찬했다.

 

 일제가 조선인 노동자를 대규모로 동원한 이유는 장기화되던 중일전쟁 때문이었다. 이를 보충하기 위해 식민지 조선으로 눈을 돌려 일본에 가서 일을 하면 쌀밥을 배불리 먹을 수 있고 돈도 많이 벌 수 있다는 말로 조선인들을 유혹했다.

 

 반신반의한 조선인들이 응모자가 많지 않자 강제모집에 나섰고 면서기와 순사들을 대동하고 나섰다. 그래도 부족한 인원을 보충하기 위해 19442월 일제는 조선에도 강제동원령을 국민징용령을 적용했다. 할당된 인원수를 채우기 위해 어린 아이까지도 무차별 강제징용 대상이었다.

 

 강제징용에는 일제에 협력하여 부를 쌓은 조선인 역할을 외면할 수 없다. 그들은 현재까지 민족을 거들먹거리며 잘 먹고 잘 살아온 권력 부역자들이다. 자본 축적으로 여전히 국민을 우롱하며 왕성하게 정치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나는 탐욕하는 인간이 야만성을 드러낼 때, 인간으로 보지 않는다.

 

 조선이 망하고 대한제국이 선포되면서 일제강점기를 지나 해방을 맞기까지. 분단과 독재, 한국적 민주주의와 신군부 쿠데타, 3당 합당으로 정치 지형이 오염된 문민정부 시절, IMF 시기의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를 거쳐 이명박 정부와 탄핵 정부. 5월 대선에서 작은 희망을 다시 품는 문재인 정부까지 1세기 넘게 역사는 단 한 번도 사실을 기록할 수 없었다.

 

 100세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국가주도 경제 성장을 앞세우며 삶의 가치는 무엇이었나? 한국 사회에 철학이 존재하는가? 행복추구를 위해 한국사회는 무엇을 해 왔나? 끊임없이 되묻게 되는 질문들에 기성세대는 무슨 답을 낼 수 있을까? 채무의식은 쌓여만 간다. 성장만을 앞세워 행복한 삶을 돈으로 사는 것이 더 쉽고 빨랐던 세상에서 가 살아가는 이유를 스스로에게 묻는다.

 

 5월 대선으로 정권이 교체되었지만 국민을 대의하는 국회는 아수라장이다. 정당의 존재를 생각한다. 현재 국회 갈등은 민주주의에서 자연스레 일어나는 갈등이 아니기에 정기국회를 바라보는 시민으로 낯부끄럽다. 대의명분이 사익으로 사칭될 때 민주주의는 비틀거린다.

 

 정치가 제대로 작동할 한국사회는 국민들의 관심으로 가능하다. 국민의 알권리를 위한 노력, 공정 언론을 되찾는 일이기도 하다. 국가 정보가 투명하고 공정하게 전달될 수 있는 매스 미디어는 개인들의 안목을 필요로 한다. 내가 바로 세상을 볼 수 있어야 하기에 꿈틀거려야 한다. 내 삶을 향유할 수 있는 시대, 정치가 제대로 작동될 때이다.

 

 ‘18909월 탄광개발에 착수하여 1937년 중일전쟁을 기점으로 태평양 전쟁에 이르기까지 일본 군수 산업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군함도는 1970년에 일본의 새로운 에너지 정책으로 19741월 폐관된다. 2015년 군함도는 일본 메이지 산업혁명에 포함되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제되었다. 현재 일본 정부는 201712월까지 강제징용을 포함한 각 시설의 역사적 사실을 알려야 한다는 유네스코 권고사항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 영화 마지막 자막이다.

 

 이제 한국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 민간 연구소에만 맡길 것이 아니라 공적 자금을 투입하여 살아있는 역사를 후대에게 알릴 의무와 책임을 더 이상 미루어서는 안 된다. 엄청난 자금을 유네스코에 후원하고 있는 일본은 전범기업의 산업시설을 세계유산으로 지정하는 후안무치한 정치인들이 앞장서고 있다.

 

 현재까지 강제동원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유가 친미와 친일을 개인의 탐욕과 정치적으로 이용한 독재정권 1965한일협정이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특히 간과해서는 안 될 사실은 굴욕의 한일협정 뒤에는 미국이 있다는 점이다. 미국이 제 나라를 위해 한국의 운명을 농단하고 있다는 인식이 절실하다.

 

 인간이 얼마나 야만일 수 있는가. 기업이 전쟁을 이용하여 이익을 얻어 부를 축적하는 일. 국가가 내거는 애국이라는 이유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짓밟힐 수 있는가. 사회약자들이 만나는 공포는 도대체 누가 조장하는가를 생각한다. 생존본능만으로 인간은 살아갈 의미가 있는 걸까.

 

 영화에서 건네는 미래를 바꿀 힘은 촛불이다. 지난 겨울 광장을 밝히던 시민들의 촛불을 연상하게 하는 장면이 군함도를 탈출할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 영화 마저도 희망을 말할 수 없다면 대중영화는 관객을 잃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세상은 너무 고약하지 않다는 약간의 희망으로 그 다음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자리를 뜰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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짓다

 

 

협동조합 붐이 내게로 밀려왔던 몇 년 전 품었던 설렘으로 지금 서 있는 분명한 이유를 다시 생각하며 <가장자리>라는 협동조합으로 세상 읽기를 시작하는 아침이다.

 

대통령 탄핵 인용 선고를 하루 남긴 오늘, 편지 한 통을 받았다. 4년을 협동조합 <가장자리> 조합원으로 있었다. 이젠 과거의 일로 되었다. 이사장으로 자리를 지켜낸 홍세화 선생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희망을 품고 달려오던 시간이었다.

 

자주 만나거나 조합원으로 활동은 게으른 자의 변명으로 남았다. 그동안 정기적으로 가장자리에서 보내준 <말과 활>이란 잡지와 어느 때부턴가 잡지가 멈추고 책 한 권이 오기 시작했어도 변화를 감지하지는 못했다. 다음 카페 활동도 있었고 사유의 공간도 있다.

 

나는 마음만 있었다. 혼자서 책 읽고 조합비를 내는 것 말고는 협동조합을 위한 구체적인 일은 하지 않았다. 그나마 변명으로 삼고 싶은 것은 꾸준한 책 읽기와 작은 모임을 하고 있다는 정도일 게다. 경제활동을 전제로 하는 협동조합이기에 가장자리가 추구하는 목적과는 결이 달랐다는 현실의 문제가 충분히 이해된다.

 

다행스럽게 홍세화 선생님은 그 마음을 지켜 임의단체인 <소박한 자유인>으로 전환을 했다.

 

<소박한 자유인>의 발기인 홍세화 선생님과 같은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소박한 자유인이기에 편지 일부를 소개하고 싶다.

 

 

짓다라는 한국어 동사가 있습니다. 농사를 짓고, 옷을 짓고, 집을 짓습니다. 인간 생존에 필수적인 식의주가 모두 짓다의 목적어가 됩니다. 따라서 사회 구성원 중 아무도 부족함이 없도록 잘 짓고 잘 나누어야겠지요.

 

제가 느닷없이 짓다라는 동사를 꺼낸 것은 우리 각 개인에게 주어진 과제가 나를 잘 짓는 데 있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한 번 태어나 되돌릴 수 없는 나를 어떻게 지을 것인가는 결국 각자의 몫입니다. 긴장이 필요합니다. 그 증거로서 책과 함께 사는 것만한 게 없다고 믿습니다.

 

<소박한 자유인> 발기인 홍세화

 

내가 걸어오고 선택한 여러 갈래의 길은 결코 평탄한 길은 아니었다. 내가 가는 길은 늘 마음이 먼저 가는 길이었다. 그 길에 같은 마음으로 함께 할 사람이 늘 그리웠다. 사람들의 고통에 마음을 열고 공감한다는 것은 다른 존재와 두루 관계를 갖고, 그들을 깊이 느낌으로써 삶에 참여하고 의미를 찾는다는 것이겠지. 아름다운 동행에는 우리가 수없이 있다.

 

경제 조건이 악화하고 정치가 불안해지고 절망적 분위기가 만연해지면 사회적 신뢰는 사라진다. 우리가 정서적으로 공감을 통해 새로운 에너지를 만들어야 할 때이다. 어느새 우리는 이 사회를 잠식한 모든 신자유주의에 매몰되어 사람보다는 효율을 앞세워 숨을 헐떡거린다. 이 노동의 가혹한 현실과 부정의를 물리칠 때 우리는 서로 치열하게 경쟁할 이유가 사라진다.

 

얼마나 행복하겠는가. 신나게 놀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내 나라의 말로 책을 읽고 수다를 떨고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은. 우리의 정체성을 지켜나갈 수 있을 때 우린 좀 더 행복해질 수 있다. 영어 몰입 교육으로 음악 대신 영어 듣기 파일을 안 들어도 되고, 성형으로 동글납작한 얼굴을 깎아 낼 이유도 사라진다. 그저 나답게 생긴 대로 살고 싶은 대로 살아가도 될 세상이면 싶다.

 

그런 세상을 만들어 내는 일. 우등과 열등 인간의 구분으로 진행되는 사회는 전체주의를 자각하는 일이 필요했다. 국가권력이 공인으로 자격 없는 이들의 손에 쥐어졌을 때 국민은 기만당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더는 그들에 손에 놀아나지 않을 공정한 언론이 필요하다. 공영방송의 역할을 바로 세우고 국민을 대의 하는 국회의 책임을 요구하며 너무도 당연한 알 권리가 보장되어야 했다.

 

Pay it for world*~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 실천을 했던 나눔 운동,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세상을 향한 마음들이 모여 협동조합이 탄생했지만, 지금까지 온갖 어려움에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현실감의 벽은 참으로 높다. 이 땅에 사람을 향한 가치가 넘치기를 바라는 마음들이 함께 하는 협동조합의 조합원 참여는 아름다운 동행이다. 그 동행을 가능하게 할 순간의 선택은 늘 내 몫이었다.

 

 

각 개인에게 주어진 과제, 나를 잘 짓는 데 있다. /홍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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