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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7.01.12 리베르 탱고

 

침대 밖으로 발을 밀어 보니 차가운 방 안 공기가 살로 파고든다. 어마나. 다시 발을 끌어당겨 두 장의 담요 속을 탐색하며 두 발로 잡으려고 해도 도무지 잡히질 않는다. 에이, 도대체 어디 간 거야? 따습게 품은 담요를 젖힌다.

 

어이구. 창가로 바짝 밀쳐져도 헤 웃는 얼굴의 연한 갈색의 곰돌이 크눌프의 너부데데한 궁둥이 밑에 숨어 있다. 연한 초록과 노란색이 엇갈려 보기에도 따듯한 느낌의 수면 양말. 가능하면 살살 움직여야 한다. 먼지가 풀썩거리는 게 싫으니까.

 

무언가 입속에 넣긴 해야 할 것 같다. 참으로 귀찮지만 계속 들리는 꾸르륵 소리가 그리 예민하지도 않은 신경 줄을 건드린다. 커피 필터가 투명한 플라스틱 상자에 가득 쌓여있다. . 12개군. 12잔을 마셨다. 블라인드 사이로 하얀 별 뽁뽁이가 드러나는 걸 보니 아직 낮이다.

 

새벽에 잠시 오줌이 마려워 일어났다가 뭣이든 밖의 소음을 막아줄 소리를 컴퓨터에서 찾다가 메일이 왔다는 알림 소리를 듣는다. 그래그래, 미리 설정해 놓기를 정말 잘했어. 크크크. 셜록 시즌 4가 드디어 업로드되었다는 은밀한 소식이었다. 아이 신나라.

 

메리의 죽음과 이어지는 에피소드의 두 번째였다. 왓슨과 셜록의 관계를 떠올린다. 메리는 삼각형을 잇는 한 점이었는데 그 점이 사라져 왓슨과 셜록은 직선이 된다. 그들의 관계는 메리가 남긴 영상으로 회복되어 가는 상태였다. 세심한 관찰과 논리적인 접근으로 결과를 도출하는 셜록이 사랑스러운 것은 그만이 만드는 관계의 독특함에 있다.

 

너무 성급하지도 속단하지도 않을 인간의 관계에는 전제되는 것이 딱 하나. 시간이다. 관계를 이어 줄 시간을 넘나듦이다. 2016에서 숫자 하나를 바꾸어야 할 순간에 끓어오르던 감정이 무엇인지 알아차린다. 다른 세계에 있는 자들을 향한 아직 거두지 못한 눈 맞춤이다.

 

시간에 숨겨진 은밀함. 그것을 나누는 것이 관계였다. 더는 나눌 수 없을 때 관계는 끝이다. 예전에는 일방적인 공들임이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한쪽만이 공들이는 시간은 그 대상의 받아들임이 가능한 시간만큼만 유효한 관계이다.

 

안타깝게도 나의 마음이 온전하게 남아있다 해도 관계의 대상이 주파수를 맞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우주의 기운이 이어주리라는 것은 분명 망상에 가깝다. 살아있는 것들에서는 그렇다. 생명이 사물로 전락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주 명료하다. 기억하지 못한다.

 

아직 그대가 기억하는 것이 있다면 관계는 다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기억한다는 것은 작은 관심과 애정이 있을 때 가능한 일이니까. 피아 소야의 리베르 탱고, 한 곡만이 계속해서 반복되는 순간이랄까. 안절부절못하던 마음을 이 곡만큼 잘 표현한 것은 적어도 내게는 없었다.

 

리듬을 따라가는 숨 막히는 몸짓과 허덕이는 마음의 흐름이 진정되는 순간은 리베르 탱고가 끝났을 때이다. 그리고 다시 시작이다. 숨 쉴 새도 없이 그 곡에 맞춰 숨가쁘게 시간을 마주한다. 그 시간을 뛰어 넘으려면 정지 버튼을 누르면 된다. 하지만 오늘은 내버려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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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랏빛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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