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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제 역사적 사실로부터 영감을 받아 창작되었음시작을 알리면서 자막이 뜬다. 영화는 허구다. 영화는 진실을 고스란히 드러낼 수 없다. 사실은 적당한 수준을 노출하고 문제의식 정도에 머물 수밖에 없다. 영화 상영 후 12년 한국사 교과 과정에서 단 한 줄도 기록되지 않았던 역사에 이목이 집중된다. 영화가 사회에 끼치는 영향은 무시할 수 없기에 진실 공방이 등장하기도 한다.

 

 영화 시작부터 창작물임을 밝힌다. 역사를 다시 재조명할 기회를 준 것만으로 영화는 충분하다. 20173월 민족문제 연구소에서 출간한 군함도, 끝나지 않은 전쟁에는 일제 강제동원 100년의 진실이 있다. 그 진실은 과거사로 묻혀 지금도 한국 근현대사의 쟁점과 과제를 연구 해명하고, 과거 청산 운동을 통해 정의 실현을 위해 민족문제연구소 활동이 있을 뿐이다. 국가 차원에서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민간연구소로 친일인명사전을 편찬했다.

 

 일제가 조선인 노동자를 대규모로 동원한 이유는 장기화되던 중일전쟁 때문이었다. 이를 보충하기 위해 식민지 조선으로 눈을 돌려 일본에 가서 일을 하면 쌀밥을 배불리 먹을 수 있고 돈도 많이 벌 수 있다는 말로 조선인들을 유혹했다.

 

 반신반의한 조선인들이 응모자가 많지 않자 강제모집에 나섰고 면서기와 순사들을 대동하고 나섰다. 그래도 부족한 인원을 보충하기 위해 19442월 일제는 조선에도 강제동원령을 국민징용령을 적용했다. 할당된 인원수를 채우기 위해 어린 아이까지도 무차별 강제징용 대상이었다.

 

 강제징용에는 일제에 협력하여 부를 쌓은 조선인 역할을 외면할 수 없다. 그들은 현재까지 민족을 거들먹거리며 잘 먹고 잘 살아온 권력 부역자들이다. 자본 축적으로 여전히 국민을 우롱하며 왕성하게 정치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나는 탐욕하는 인간이 야만성을 드러낼 때, 인간으로 보지 않는다.

 

 조선이 망하고 대한제국이 선포되면서 일제강점기를 지나 해방을 맞기까지. 분단과 독재, 한국적 민주주의와 신군부 쿠데타, 3당 합당으로 정치 지형이 오염된 문민정부 시절, IMF 시기의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를 거쳐 이명박 정부와 탄핵 정부. 5월 대선에서 작은 희망을 다시 품는 문재인 정부까지 1세기 넘게 역사는 단 한 번도 사실을 기록할 수 없었다.

 

 100세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국가주도 경제 성장을 앞세우며 삶의 가치는 무엇이었나? 한국 사회에 철학이 존재하는가? 행복추구를 위해 한국사회는 무엇을 해 왔나? 끊임없이 되묻게 되는 질문들에 기성세대는 무슨 답을 낼 수 있을까? 채무의식은 쌓여만 간다. 성장만을 앞세워 행복한 삶을 돈으로 사는 것이 더 쉽고 빨랐던 세상에서 가 살아가는 이유를 스스로에게 묻는다.

 

 5월 대선으로 정권이 교체되었지만 국민을 대의하는 국회는 아수라장이다. 정당의 존재를 생각한다. 현재 국회 갈등은 민주주의에서 자연스레 일어나는 갈등이 아니기에 정기국회를 바라보는 시민으로 낯부끄럽다. 대의명분이 사익으로 사칭될 때 민주주의는 비틀거린다.

 

 정치가 제대로 작동할 한국사회는 국민들의 관심으로 가능하다. 국민의 알권리를 위한 노력, 공정 언론을 되찾는 일이기도 하다. 국가 정보가 투명하고 공정하게 전달될 수 있는 매스 미디어는 개인들의 안목을 필요로 한다. 내가 바로 세상을 볼 수 있어야 하기에 꿈틀거려야 한다. 내 삶을 향유할 수 있는 시대, 정치가 제대로 작동될 때이다.

 

 ‘18909월 탄광개발에 착수하여 1937년 중일전쟁을 기점으로 태평양 전쟁에 이르기까지 일본 군수 산업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군함도는 1970년에 일본의 새로운 에너지 정책으로 19741월 폐관된다. 2015년 군함도는 일본 메이지 산업혁명에 포함되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제되었다. 현재 일본 정부는 201712월까지 강제징용을 포함한 각 시설의 역사적 사실을 알려야 한다는 유네스코 권고사항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 영화 마지막 자막이다.

 

 이제 한국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 민간 연구소에만 맡길 것이 아니라 공적 자금을 투입하여 살아있는 역사를 후대에게 알릴 의무와 책임을 더 이상 미루어서는 안 된다. 엄청난 자금을 유네스코에 후원하고 있는 일본은 전범기업의 산업시설을 세계유산으로 지정하는 후안무치한 정치인들이 앞장서고 있다.

 

 현재까지 강제동원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유가 친미와 친일을 개인의 탐욕과 정치적으로 이용한 독재정권 1965한일협정이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특히 간과해서는 안 될 사실은 굴욕의 한일협정 뒤에는 미국이 있다는 점이다. 미국이 제 나라를 위해 한국의 운명을 농단하고 있다는 인식이 절실하다.

 

 인간이 얼마나 야만일 수 있는가. 기업이 전쟁을 이용하여 이익을 얻어 부를 축적하는 일. 국가가 내거는 애국이라는 이유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짓밟힐 수 있는가. 사회약자들이 만나는 공포는 도대체 누가 조장하는가를 생각한다. 생존본능만으로 인간은 살아갈 의미가 있는 걸까.

 

 영화에서 건네는 미래를 바꿀 힘은 촛불이다. 지난 겨울 광장을 밝히던 시민들의 촛불을 연상하게 하는 장면이 군함도를 탈출할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 영화 마저도 희망을 말할 수 없다면 대중영화는 관객을 잃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세상은 너무 고약하지 않다는 약간의 희망으로 그 다음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자리를 뜰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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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랏빛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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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기억의 숲

Overdye*~ 2016. 9. 12. 10:56

2015년 5월 15일로 세월호 참사는 365일에 29일째를 맞았다. 그리고 '세월호 기억의 숲'은 5월 16일까지 참여할 수 있다.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은 사람'을 떠올려 볼 수 있기를*~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입 안에서 사르르 녹아 들어가는 말이다. 프랑스어 특유의 맛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아마 이 말이 건네는 의미가 너무 달콤해서 일거다.

 

한국어 위키백과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란 프랑스어로 "귀족성은 의무를 갖는다"를 의미한다. 보통 부와 권력, 명성은 사회에 대한 책임과 함께 해야 한다는 의미로 쓰인다. ,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사회지도층에게 사회에 대한 책임이나 국민의 의무를 모범적으로 실천하는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는 단어이다.

 

초기 로마시대에 몇몇 왕과 귀족들이 투철한 도덕 의식과 솔선수범하는 공공정신을 보인 것에서 비롯된 말이다. 이를 귀족사회를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이해하는 입장도 있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그 의미가 사회지도층에게 주로 쓰이는 말이 되었다.

 

나는 반드시 이 말이 사회지도층에만 해당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 땅에서 평범하게 보통의 삶을 살아가면서도 자발적인 나눔은 흔하니까. 다만 굳이 사회지도층을 겨냥하는 것은 반어적인 의미가 강하다고 본다.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아주 드문 한국사회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지 않나.

 

 

 

 

'기억의 숲'은 세월호 참사 1년을 앞두고 오드리 햅번의 첫째 아들, '오드리 햅번 어린이 재단'의설립자인 션 햅번과 그의 가족들이 한국을 방문해서 제안한 프로젝트이다. 오드리 햅번 가족이 세월호 기억의 숲 조성에 나서는 이유는 가족 대 가족으로서 비극적인 사건을 접하고 마음을 같이 나누기 위해서라고 한다.

 

세월호 기억의 숲은 션 헵번이 숲을 통한 변화를 꿈꾸는 사회혁신기업 트리플래닛에 제안해 시작됐다. 나무를 심어 숲을 만듦으로써 희생자를 추모하고 유가족을 위로하고 프로젝트를 통해 이런 일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기를 바랐던 마음을 기록하기 위한 목적으로 진행된다고 한다.

 

세월호 기억의 숲은 팽목항 인근의 진도군 내 조성된다. 조성 기금은 오드리 헵번 가족이 기부한 기금에 크라우드 펀딩을 더해 마련된다. 이번 숲에는 세월호 희생자의 이름과 가족, 생존 아이들이 작성한 메시지가 각인된 세월호 기억의 방도 설립될 예정이라 한다.

 

이런 프로젝트가 외국의 한 사람에 의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로 가능해졌다는 현실에 생각 좀 해보자. 물론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많은 일들이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작든 크든 그것은 문제가 아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자연스럽게 작동되지 않는 한국사회의 거대한 집단의 문제만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오래동안 축적된 한국 사회가 잃어버린 '가치'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돌봄의 공동체를 향한 마음, 그 착한 마음은 지하 깊숙이 갇혀 있다. 진도 앞바다 그 깊은 바다의 세월호처럼. 기억의 숲으로 가 하늘과 땅, 그 사이에 '사람'이 있음을 다시 느껴보면 어떨까. 지난 겨울 그 팽목항의 바람이 심상치 않게 다시 불어온다.

 

 

 

세월호 참사 이후, 한번은 꼭 다녀와야만 했던 곳. 외부의 힘에 의지해서라도 다녀와야만 했던 그곳, 개인적인 숙제를 풀어내기 위해 청춘열차에 올랐다. 나의 자리가 뒤바뀐 시간대에 내가 있었다. 지난 124일 청춘열차에 몸을 담아야 했던 마지막 기행이 될지도 모를 어린 친구들과의 겨울여행은 내 그리움의 그 어느 날로 기억에 남게 되었다.

 

무박의 열차여행은 동행인들과 나눌 그리 많은 말들이 없어도 밤기운과 열차의 시끌벅적함으로 생기가 넘친다. 어린 친구들처럼 내 스물의 첫 열차여행도 이렇게 무박의 밤으로 지나는 시간이었다. 그 때는 홀로 시작하는 세상을 향한 '출발'의 마음이었다면 이제는 세상을 떠날 준비의 마음이라 해야 할까.

 

팽목항의 바람은 온통 얼룩져 있었다. 세월호 참사 285일째 되는 날, 어린 친구들의 넋으로 출렁였다. 그동안 눈으로 보고 온 마음으로 좇던 느낌들이 온 몸에 날선 기운으로 다가온 힘든 시간이었다. 설움과 흐느낌, 오열하며 쌓여진 분노들이 노란리본을 여전히 펄럭이게 하고 바람으로 소리 내는 풍경들은 아직도 멈추지 못하고 울고 있었다. 팽목항에 놓여진 구조물들은 유령처럼 나를 맞아주었다.

 

그렇게 밤을 보내고 이어진 열린 하늘, 더는 빛나지 않았다. 팽목항의 해는 다시 떠오르지 못할 것만 같다. 슬픈 넋으로 출렁이는 바람에 불을 당겨 떠나보내는 연등에 마음을 담지만 이런 일들이 도대체 무슨 소용이 있을까. 결국 스스로를 위한 '행위'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내 마음의 평안을 위한 몸짓으로 멈추어버린다면 이 모든 괴로움들은 다시, 다시 되풀이 되고 말텐데. 정지된 시간들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현재로 돌아올 시간은 또 다른 기억의 공간이 필요하다.

 

'세월호 참사, 그 기억의 숲'을 위한 마음이 움직이시면 이곳으로 가면 자세한 이야기를 마음껏 공유할 수 있다.

 

 

참여는 이리로 : 사이트 : http://treepla.net/sewol_forest.html

 

 

2015.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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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에는 멀쩡한 곳이 단 하나도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국가 경쟁력이 그렇게 중요한 것일까요. 도대체 무엇을 누구를 위한 경쟁력인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한반도의 반쪽인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5,000만입니다. 노동자에게 최저임금이 최고의 임금으로 되었다면 농민들에게는 13년을 동결한 쌀 값이 있습니다. 즉 노동으로 돈을 벌거나 농사를 지어 돈을 벌고자 한다면 미친 짓이 되는 겁니다. 그야말로 입에 풀칠이나 할 수 있으면 다행인 것이지요. 가을걷이를 마치고는 지인이 말하더군요. 농사 짓는 거 이제 끝내야 할까 싶다고요.

  

 

정부가 지난 주 쌀시장 개방을 선언한 데 분노한 광주 전남 지역의 농민들이 논을 갈아 엎는 시위를 했습니다. 전국농민회 광주전남연맹이 광주역에서 쌀시장 개방 저지 투쟁 선포식을 가졌는데요, 당시 계획에 따라 오늘 영광군 농민회가 벼논을 트랙터로 갈아 엎으며 쌀시장 개방에 항의했습니다. 비슷한 시간 순천에서도 농민 100여명이 논을 갈아 엎었습니다. 농민들은 논을 갈아 엎는 심정에 대해 마치 죽은 자식을 가슴에 묻는 것같다면서, ‘박근혜 대통령은 더 이상 농민들의 대통령이 아니다라는 선언식을 가졌습니다. 농민들은 광주시와 전남도, 각 시, 군청 앞에 농기계를 반납 투쟁도 하고, 조만간 서울 상경 시위를 하겠다는 계획도 밝혔습니다.

 - 국민TV 뉴스K 7.24-

 

 

정부는 718일 쌀의 관세화 즉, 쌀시장 개방을 결정한 후, 두 달 만인 지난 918일 수입쌀의 관세율을 513%로 확정 발표했습니다. 관세율 그 자체는 결코 나쁘지 않다는게 전문가들의 평가랍니다. 513%가 적용되면 80kg 기준의 쌀 가격은 미국산의 경우 현재 63000원에서 388000, 중국산의 경우 85000원에서 522000원으로 오는 거죠. 이 경우 17만원 정도인 국내산 쌀이 가격경쟁력에서 수입쌀에 결코 밀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정부의 발표를 의심하고 있습니다. 특히 513%의 관세율을 법으로 명시하지 않아, 약속을 지키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정부의 지금까지 정책 진행 과정들을 되돌아 보면 이렇게 술수를 부려 결과적으로는 시늉만 내며 거의 뒷통수를 칩니다. 정부가 내놓은 특별긴급관세제도에 대해서도 전문가들은 사후 대책이기에 실효성이 없다고 평가했답니다. 십 사년 전으로 역사의 시간을 되돌려 봅니다. 강준만의 한국 현대사 산책 1990년대 2을 정리해 보면서 한국사회에 전방위적으로 퍼져있는 생존의 위기감은 다가올 겨울의 냉기로 미리부터 엄습하고 있습니다.

 

907월 초부터 우르과이라운드 (UR)가 사회 수면 위로 오르자 반대 시위가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농협이 911111일부터 1223일까지 전개한 쌀 수입 개방 반대 서명운동에는 1,300만 명의 국민이 참여했습니다. 한국농어촌문제연구소가 주관해 벌어진 반대서명엔 전국의 대학교수 및 강사, 연구소 박사 3,000여 명이 참가해 쌀 개방 반대의 수준을 넘어 UR 자체를 반대하는 운동을 전개했죠.

 

                  우르과이라운드 위협이 가시화되던 1991년 1월 경실련은 기자 회견을 열고 미국의 쌀 수입 개방 압력을 비판하였다. -한국현대사산책 1990년대편 /강준만-

 

김영삼은 대통령 선거 유세 때에 대통령직을 걸고 쌀 시장 개방을 막겠다고 큰 소리쳤지요. 하지만 1993122일 농림부장관 허신행은 쌀 수입 개방과 관련한 최후 협상을 위해 제네바로 출국하는 자리에서 기자 회견을 통해 쌀의 관세화는 물론 최소시장 접근도 허용아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출국 후 이틀 만인 124일 사실상 쌀 수입 개방 압력에 굴복했음을 시인했던 것입니다. 쌀의 역사는 1945년 일본 패망 이후 미군정 시기부터 그 시작을 알 수 있죠.

 

93128일 전국농민회총연맹은 농산물 수입 개방에 앞장선 혐의를 받은 정부관계 인사 5인에게 계유 5이라는 딱지를 붙였죠. 민자당 대표 김종필, 국무총리 황인성, 부총리 이경식, 농림수산부장관 허신행, 외무장관 한승주 등, 이들이 농업, 농민의 존립 기반을 붕괴시킨 것은 을사 5이 국권을 일본에 넘겨주었던 것과 마찬가지라는 의미였습니다. 하지만 김영삼은 담화를 통해 쌀 시장 개방을 공식 선언하며 국익을 위해 고립보다는 국제화를 선택했다는 논리를 폈습니다. 담화 직후 쌀 시장 개방 반대를 주장하는 시위가 전국적으로 확산되었죠.

 

          '우리농업지키기 범국민운동본부' 출범식 후 거리 행진을 하는 회원들.

-한국현대사산책 1990년대편 /강준만-

 

931215, 8년 가까이 끌어 오던 우르과이라운드 협상이 타결되었죠. 농민들이 쌀 시장 개방을 을사보호조약에 비유하자, 문민 정부는 반대자들을 구한말의 쇄국주의자에 비유하고 나섰습니다. 김영삼은 94년 연두기자회견 때 사회 전반의 국제화와 세계화를 위해 시책을 펴나가겠다고 말했는데 서울대 교수 김수행은 김영삼 정부가 갑자기 국제화, 개방화, 국가경쟁력의 제고를 강조하는 이유에 대해 당시 19945월호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204.11.19

첫째는 미국의 요구에 따라 농산물 시장 특히 쌀 시장을 개방할 수밖에 없는데, 쌀 시장의 개방이 미국의 압력이 아니라 시대의 대세라는 것을 선전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농산물도 다른 모든 상품과 마찬가지로 국제경쟁에서 이겨야 하며, 국제경쟁에서 이기지 못하는 것은 미국 탓이 아니라 우리 탓이라는 것을 인정하기위해서다. 참으로 끔찍한 사대주의적 발상이다. 둘째는 정부와 관변 연구단체들이 국제경쟁력이 없는 농업은 포기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한국의 역사는 참으로 비통합니다. 미래세대에게 이런 역사의 후유증을 계속 앓게 한다는 사실은 더욱 갑갑하기만 합니다. 세계화는 이해관계에 얽힌 몇 몇 나라를 위한 것이 아니지요. 더욱이 한국에서 세계화라는 명분은 여전히 완전한 독립을 하지 못한 국가의 국민에게는 족쇄일 뿐입니다. 일을 하고 그 대가를 제대로 받을 수 없는 현실에서 정부의 무능함은 역력합니다. 지난 우르과이라운드 이후 농업 정책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여 왔다면 설사 강대국에 의한 통상외교에 받아들일 개방이라 해도 큰 충격은 완화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협상조차 해 보려 노력하지 않는 정부의 외교 능력은 국민들을 이해시키려는 노력도 대책 마련도 지극히 형식적입니다. 농민단체들은 WTO 농업협정문 어디에도 ‘유예 기간이 끝나면 자동 관세화한다’는 조항이 없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부는 관세화를 선언해 버렸고, 관세율만 높게 책정하면 된다는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경상도 방언이 어째 더 마음에 와 닿는 순간입니다. 을 버리는 순간 죽음이 선고되듯이 ‘쌀을 버린 이 나라의 미래는 암담합니다.

 

견고하고 장기적인 농업인을 위한 대책마련과 식량주권을 위한 노력에 정부의 역할이 필요합니다.국민들의 식량주권을 지킨다는 의미를 빵을먹어도 밥을 먹어야 한 끼를 해결했다고 생각하는 내가 제대로 모른다면 한국사회의 미래는 없습니다. 천년 만년 살아지는 삶도 아니거늘 기성세대들이 저지르고 있는 일들에 겨악을 합니다. 노동자를 지키지못해 사람이 도구로 전락해 버린 한국사회에서 농민을 지키지 못하는 국가는 먹을거리를 외국에 의존해야만 하는 사망신고를 받은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이제 쌀을 사는 일이 금덩이를 사는 일만큼 어려워질 미래, 끔찍합니다. 

 

근 이십 년 전 제 집을 지으면서 미래에는 석유가 금붙이보다 더 귀해질 것이라며 재래식 아궁이를 별도로 만들던 이가 생각났습니다.그는 이제 생존의 의미를 다르게 받아들여 집없이 길을 따라 걷고 있는 이가 되었지요. 자신의 선택으로 길을 걷고 있는 이와 먹을 것을 찾아 길을 헤매야만 하는 이와 비교할 수도 없습니다. 먼 미래 어느 날, 이 땅 위의 모든 길에는 굶주림으로 걷는 이들이 즐비할 것이라고 하면 지나친 과대망상일까요. 사람의 미래는 사람에게 있습니다. 그것이 지구촌의 사람들에게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런지요. 지구의 절반이 굶주림으로 죽어가고 있는 이유, 시카고 곡물거래소에서 만들어지는 다국적기업들의 결과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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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과 연애를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지금 내가 쏟아놓는 이야기도 엉뚱한 방향으로 쏠릴지도 모르겠다. 연애라는 말만 나오면 섹스만을 연상하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 유명세를 치르지 않는 대중에 속하는 나는 이 또한 조용히 지나가 주겠지 하며 글을 쓴다. 제제를 당신만큼이나 아끼는 독자로 밍기뉴를 갖고 싶어 앞마당에 이름을 달아 나의 나무야하던 아이들과의 식목일 추억도 생각하면서 말이지.

 

 

 

브라질 작가 J.M. 바스콘셀로스의 원작을 마르코스 번스테인 감독이 만든 영화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20145월에 개봉했다. 개봉하자마자 달려가서 본 이 영화는 내 생각만큼 많은 사람이 보지 않은 것 같다. 어쩌면 세계 최고의 베스트셀러이면서 스테디셀러이기도 하기에 원작에 대한 보전심리로 관객이 별로인가 했다. 내 주변에 이 영화를 봤다는 이가 아직 없었거든.

 

아직도 나의 나무를 그리워하고 그 나무를 바라보며 건넨 말들과 그 스침과 그리움에 젖는다. 그리고 여전히 나의 제제를 꿈꾸는 나도 소아 성애자가 되고 롤리타 콤플렉스에 빠진 이가 되는 건가? 최근에 영화가 개봉되면서 다시 이 책을 샀는데 그 책 표지를 쓰다듬으며 웃음 짓던 것처럼 문학이 주는 의미는 개인마다 다양하게 받아들이고 느끼게 한다.

 

네가 잘 보살펴주면 쑥쑥 잘 자랄 거야.”

큰 나무가 좋은데 이건 너무 약하잖아.”

너 같은 밍기뉴네. 쑥쑥 자랄 거야.”

 

 

 

밍기뉴는 어린 라임 오렌지 나무이다. 제제만큼 어린나무로 제제의 상상력으로 밍기뉴는 말을 할 수 있게 된다.

 

네 누나 말이 맞아

다들 늘 자기가 맞지!”

더 자세히 보면 누나 말을 믿게 될 거야

난 새가 아니야, 밍기뉴야. 네 오렌지 나무야

어디로 말해?”

몸 전체로

머리를 기대봐, 내 심장 소리가 들릴 거야. 올라와. 재미난 것을 보여줄게

가지가 너무 얇잖아. 안 부러질까?”

조심하면 괜찮아

누나, 밍기뉴가 뭐야?”

새끼손가락

 

밍기뉴는 숲길을 달려가는 백마가 되기도 한다.

 

아이유의 앨범 수록곡 중 제제가 내 주변의 십 대들에게 주요 화젯거리더라. 제제 타령을 꽤 하던 나에게 아이유의 곡에 대한 물음이었다. 아이유의 리메이크앨범 외에는 딱히 친근하지 않았기에 제제를 함께 들어 보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나는 근래에 아이유의 연애 이야기부터 검색어 상위를 차지하기에 대중에게 관심받는다는 징후 정도로만 생각했거든.

 

대중문화의 위력이 엄청난 현대 사회의 한 증상이기도 하지만 이런 문화 환경에서 대중문화의 이윤추구가 상품으로 전락을 의미하게 되었지만, 소비자인 대중은 어쨌거나 그 상품에서 다양한 감정을 만나질 않던가.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이 이입되어 음원을 만든 이의 의도나 취향으로 곡을 선택하는 것은 아니니까. 예술에 도덕적 잣대를 들이미는 것이라면 개인적 심미안의 작동으로 스스로 해결할 문제 아닌가 싶은 거지.

 

이와 관련된 기사를 찾아서 읽어 보면서 대중음악에 부여하는 시선이 참으로 다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곡에 대한 해석도 각양각색일 수 있는데 아이유에게 쏟아지는 비난부터 음원 폐기까지 다양하더라고. 이 영화를 보면 제제와 밍기뉴의 관계나 제제와 뽀루뚜가의 관계가 비슷한 감정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랑의 범주에 속하는 우정이라는 것을.

 

 

 

 

 

책이 출판되자 어른이 된 제제는 그의 원고를 가지고 망가라치바에 부딪쳐 세상을 떠났던 뽀루뚜가를 만나러 간다. 제제와 같이 보낸 뽀루뚜가와의 시간이 그의 성장기에 많은 그리움을 남겼으니 둘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쓸 수 있었겠지. 어떤 사물이든 인간이든 그들과 나누는 시간이 그리움으로 남으면 그때는 모르던 느낌들이 얼마나 귀한 마음이었나를 느낄 수도 있는 거 아닐까. 작은 웃음 지을 수 있는 그 시간은 나를 기운 나게 해 주기도 하거든.

 

사랑이 인간에게만 허용되는 것으로도 받아들이지 못한 채 반드시 이성 간에만 존재하는 것으로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나무도 구름도 흐르는 강물도 사랑한다면 어떤 수식어를 가져다 붙일까. 밍기뉴를 듬직한 친구처럼 여기며 올라타기도 하고 끌어안기도 하며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어린아이 제제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신날까. 철들지 않을 수야 없겠지만, 제제를 기억하며 가끔은 철들지 않는 시간을 꿈꾸게 되잖아.

 

이 책은 이런 거란다. 마치 어떤 대통령이 자기나라 역사 모르면 혼 없는 인간이라는 말과 다를 게 뭐 있어. 이 책을 펴낸 출판사 동녘의 장엄한 메시지가 독자였던 아이유라는 가수에게 그럴싸하게 타이르는 것은 그야말로 헤프닝이었다. 10일에는 출판사가 공식 사과를 했다고는 하더라. 감히 독자의 고유한 영역인 감상의 범주를 침해하다니. 나는 오히려 아이유가 출판사를 상대로 한마디 던졌다면 싶은 심정이더구먼.

 

그래, 아이유의 노래 제제는 내 취향은 아니더라. 그녀의 담백한 목소리로 들려오던 리메이크된 김창완의 너의 의미같은 느낌이었다면 좋았을 텐데 싶은 정도이지. 노랫말을 만들고 곡에 담아 부르는 가수의 마음마저 대중이 알고 있는 이미지를 들이밀어 재단할 이유가 뭔지 이해가 안 가더라. 한편으로는 역사 교과서 하나 제대로 못 해석해서 헛소리 해대는 혼 없는 인간의 물타기 작전에 아이유의 음반이 휘말린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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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중구 필동 동국대학교 이해랑예술극장 앞에서 열린 '안녕하지 못한 동국인들의 안녕들하십니까 성토대회'에서 한 참가자가 발언하고 있다. 2013.12.17/뉴스1

 

 

 

편지글은 약간의 형식이 필요하지요. 글의 시작은 읽을 대상을 불러 내고, 그간의 안부와 함께 글을 쓰는 이의 일상도 알려 주어야지요. 그리고 편지를 쓰는 까닭을 말하는 것이 형식일 겁니다. 하지만 나는 이 모든 형식을 거부하고 굳이 '편지'라는 제목으로 글을 씁니다. 늘 오르내리는 대통령의 이름 석 자가 주는 스트래스로  나의 안부는 안녕할 수 없기에 격식을 차려 잘 지내고 있다는 식으로 쓰고 싶지 않아서 입니다.

 

2012년 12월 19일 당선확정 소식에 2박 3일을 평소처럼 일을 할 수가 없었지요. 당일날은 밤새 막걸리 타령을 해야 했고, 이틑날은 하얗게 된 내 머리 속에서 헤메는 시간들이었습니다. 주말내내 스스로를 다독이며 월요일부턴 평상심을 발휘해야 한다고 다독거려야 햇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될 수 없는 현실의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요, 그런 날들이 오늘까지 사그라들기는 커녕

대통령이 최근에 띄워놓은 한 단어가 짓누릅니다. 암덩어리.

 

언론에 보도되는 극히 일부분의 알려지고 있는 죽음들에 대해서 알고 있나요. 그 죽음들이 말하고자 하는 것들을 알아차릴 수 없나요. 광장에서끊이지 않는 시민들의 소리는 들리지 않나요. 대통령이 왜 그렇게 되고 싶었나요. 국민들 앞에서 내건 공약들을 너무 쉽게 외면할 수 있는 강심장, 나와 같은 시민들에게도 그 비법을 알려주세요. 내 어머님이 어린 동생과 다툴때면 이런 말씀을 하셨죠. 어린 시절, 무척이나 기분이 상하는 말씀이셨어요.

 

"나이 값 좀 해라, 더 배웠다는 애가 부끄럽지 않니?"

 

한 개인이 들어도 맘 상하는 말인데 일국의 대통령을 떠올리며 팔십을 넘기신 어머님의 얼굴이 겹쳐집니다. 이제 세 아이의 엄마가 되어 내가 듣기 싫었던 말을 내 아이들에게 하지 않으며 살려고 많이 노력하며 살아왔습니다.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설명될 수 없는 이 사회의 일들에 대해서 무엇이라 설명을 해 주어야 할까요? 딴에는 道를 닦듯이 살아온 자부심 있는 내가 말에 앞서는 격분함을 누르기가 참으로 고역스럽습니다. 비결이 무엇이신지요.

 

대통령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무엇이 부족하신가요. 물론 세상에 알려진 것이 전부는 아니겠지만 말입니다. 밖으로 드러난 대통령의 삶은 부족한 것은 없어 보입니다. 내면에서 갈구하는 무엇인가가 있다면 그것들 중에서 스스로를 위한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드리고 싶습니다. 대한민국을 위하는 충심, 부모를 위한 경애, 그리고 개인적 성취감인가요. 이 모든 것들의 바탕에 부디 친애의 감정을 담아 구국의 결단을 하세요. 너무 추상적인지요.

 

일국의 대통령이 지닐 덕은 '측은지심'에서 발휘됩니다. 민주공화국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헌법을 수호하고 이 나라의 국민들의 삶이 어떻게 하면 나아질 수 있는 지를 광장을 통해 들으세요. 눈을 감고, 귀를 막은 채 있어도 세상의 소리는 빛보다 멀리 갑니다. 21세기에 선동정치는 너무 진부하지 않나요. 주변의 아부꾼들과 부역자들이 대통령을 지켜주지는 못합니다. 국민은 우둔하지 않습니다. 인간적 존재감에 위협이 느껴지면 오히려 냉정하지요.          

 

 

 

 

 

7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에서 故 이한열 열사 26주기 추모제가 열린 가운데 학생들이 흰 국화를 들고 있다. 이한열 열사는 연세대학교 재학중이던 1987년, 시위 중 전경이 쏜 최루탄을 맞고 22살의 나이에 사망해 6월 항쟁과 6·29 선언의 도화선이 되었다. 2013.6.7/뉴스1 © News1 박철중 기자

 

 

개인이 행할 수 있는 작은 선함이 공공의 선으로 향해 따뜻한 세상이 될 수 있다는 상상력을 발휘하며 살아갑니다. 그런 황홀한 나비효과를 생각하며 마음이 설렙니다. 한 국가의 행정부 수반으로서 '위대한 선택'을 하실 수는 없나요. 그런 엄청난 행운을 잡았는데, 그동안의 지난 역사에 기록된 과오들을 더 연장시킬 기록을 남기시려나요. 한 가문의 장녀가 아니라 한 국가의 대통령으로 잘못된 과정들을 바로 잡고 전환의 시대를 열어 주어야 합니다.

 

16세기에 <유토피아>를 발표한 토머스 모어를 이번 주말에 다시 만났답니다. 아이들이 묻지요. 고전을 왜 읽어야 하냐고, 늘 신간들이 눈길을 끌고 베스트셀러를 읽기에도 부족한데 말이지요. 함부로 말에 확신을 담아 하는 것은 부담스럽습니다. 그러나 이 점에서만큼은 단언하고 싶습니다. 인간의 삶과 세상에 대한 영원한 물음이 있기에, 우리에게 필요한 물음과 답을 찾아갈 수 있기에 고전을 읽어야 한다고 그 의미가 현재에도 유효하다고 말입니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세계화 시대는 여전히, 우리에게 고전을 시대와 상관없이 손에 들어야 할 이유를 확실히 보여주죠. 현재의 문제들은 안타깝게도 몇 세기를 지나며 이름만을 달리한 채 여전히 진행되고 있는 불편한 진실로 있습니다. 모어의 작품을 읽으면, 방향을 잃고 <디스토피아>로 나아가는 그 선두에 대통령이 지휘를 하고 있다는사실을 만나죠. 역사는 현재 일어나는 일들을 결코 잊지 않을 겁니다. 기성세대로서 신세대들에게 부끄러움보다 더한 것은 없지 싶습니다.

 

최근에 IOC의 정기심사에서 판정 등급 오류는 우리나라의 처지를 보여주고 있잖아요. 얼만큼 더 추락해야 하는 걸까요. 대통령 주변의 전방위적인 굴종들이 보여주는 작태들은 가관이 아닌지요. 인권이 사라진 사회, 사회와 개인의 조화를 방해하고, 오히려 고립을 조장하는 인물로 역사에 기록될 생각이신지요. 감히 난 이 모든 것을 대통령이 모르는 것은 아니겠지, 합니다. 우습지요. 나와 같은 평범한 개인들이 인식하는 상황을 대통령이 모를 수는 없겠지요.

 

대통령의 우아한 거짓말, 이땅에서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끊어야 하는 것인가요. 1년 2개월이 지나면서 기가막힌 일들은 너무 많더이다. 대통령을 감동시킬 생각은 없답니다. 그런 감동을 원했다면 일일이 구체적으로 나열하며 눈 앞에 펼쳐질 수 있는 표현이 필요하겠지요. 하지만 그렇게 쓰여질 편지는 아마도 끝을 낼 수 없게 될 겁니다. 기성세대는 남은 시간동안은 부족했던 지난 삶을 메우며 온전하게 마무리해야 하지 않을지요. 허공에 부숴질 말들의 풍경,하소연이겠지요.

 

 

 

누군가의 금전의 손실때문에 한 사람의 목숨을 앗아 간다는 것은 전적으로 옳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서 돈으로 얻을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사람의 목숨만한 가치를 지닌 것은 결코 없습니다.

 

- 토머스 모어 <유토피아>/열린책들 -

 

    

2014.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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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와 아바타

Overdye*~ 2015. 10. 13. 12:13

책 한 권과 영화 한 편, 그리고 국정화. 이 세 가지가 연상되는 가운데 먼저 양해를 구해야겠다는 마음이다. 책은 사실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이니 그렇다 치고 감히 이 영화에 유신 시대 아바타를 엮어 말하는 것이 솔직히 너무 화가 나는 것은 맞다. 하지만 한 번 생각해 보자. 이 아름다운 영화를 이렇게 꺼내 드는 것은 영화 아바타에 심취한 나와 당신에게 다시 현실을 곱씹어 보자는 거니 심하게 생각하지는 마시기를.

 

먼저 책을 정리해 본다. 8인의 학자가 『박정희의 맨얼굴』을 엮으며 ‘객관적이고 엄정하고자 했다’는 유종일의 서문은 태극기 게양식을 대대적으로 벌이고 있는 현 정권하에서 되새김해야 할 필요가 더 절박해 보인다. 이명박 정부가 박정희의 경제철학을 상당 부분 계승해 시행하고 있는 가운데 ‘박정희 향수’가 유령처럼 떠돌던 차에 이 책이 기획되었다고 한다. 시의성으로 말하자면 오늘이 더 적절하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결정하고 박정희의 유신 아바타가 여기까지 왔다.

 

박정희 시대 경제 신화는 뛰어난 지도력에 의한 고도성장인 양 평가를 하지만 현실에선 왜 실감할 수 없는지를 해부하면서 경제 전략과 정책의 선택에 미국의 영향을 짚어 준다. 18년간 내 젊은 시절을 대통령으로 있었던 그에 대한 추억은 억울함과 분노이다. 학창시절 역사 교과서에서 배워온 사실이 왜곡이었음을 뒤늦게 깨닫게 되며 느낀 감정은 국가에 대한 배신감이었다. 유신 시대 아바타들이 2017년부터 국정화 교과서를 사용하려 한다. 이 상황을 역사는 무엇으로 기록할까.

 

내가 과거 역사에서 교훈을 얻은 것이 있다면 적어도 현재 정권이 내건 단 하나의 교과서를 만드는 일을 막아야 한다는 거다. 국가를 적으로 삼아야 하는 현실, 왜곡과 미화의 역사를 되풀이 하려는 권력을 바꿀 힘이 필요하다. 역사에서 일어난 사실을 기술하는 역사를 판단하는 일은 개인의 몫이다. 하지만 사실을 왜곡하면 바른 판단은 불가능하다. 미래 세대에게 하나의 역사 교과서 교육과 입시체제에서 이 사회는 그들의 바른 판단을 어떻게 요구할 수 있는가.

 

 

 

『박정희의 맨얼굴』에서 이정우는 정치적 독재자들이 경제운용에서 눈앞의 실적에 급급하여 국가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지가와 물가를 상승시키면서 무리하고 조급하게 성장에만 치우쳤기에 지도력을 내걸어 그를 평가할 수는 없다는 점을 말한다. 1953년에서 2007년까지 한국의 지가는 1만 배 폭등해서 세계 최고, 물가 역시 소득 수준에 걸맞지 않게 거의 최고 수준이다. 현재는 더 심화하였다. 합법을 가장한 노조탄압과 해고는 비정규직의 불안정한 고용 상태에서 노동자들의 존재를 알리는 절규로 나타난다.

 

청년들의 활기찬 목소리는 사라졌고, ‘3포 시대’라는 자조적 유행어를 좇는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사라진 여기, 노동자들의 고난의 시간은 오늘도 투쟁 중이다. 굴뚝 위에서, 거리와 빌딩 위에서 배제된 노동자와 광장에서 밤을 지내며 정부의 옳지 못한 일에 소리를 질러야 한다. 이념적 편향을 말하는 그들이 내거는 균형 잡힌 역사관이란 다름 아닌 획일화와 주입식으로 단 하나의 역사 교과서에 의한 독재의 시도이다. 너무 노골적이지 않은가. 평화와 공존의 시대에 색깔로 편 가르기를 내세우는 유신 아바타는 집권 내내 참사를 부른다.

 

정치경제학의 시각에서 박정희 시대의 통제경제체제를 분석한 박헌주는 정치적 권력을 이용해 소수의 선택된 집단이 국가가 제시한 발전 방향에 따라 대규모의 사업을 추진했다고 말한다. 이를 통해 증가한 물질적 이익의 대부분을 획득하게 함으로써 부의 편중화는 심화하였고, 고도성장뿐 아니라 분배의 불평등, 사회 통합 저해 등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했다고 주장한다.

 

김상조는 박정희 체제가 가져온 후유증의 또 다른 측면인 정부 정책의 왜곡이 1997년의 외환위기로 귀결되었는지 논증한다. 개발금융과 재벌이 낳은 모순은 지속 불가능한 체제였으며 재벌 스스로 박정희의 신화에서 재벌의 신화로 변했을 뿐인 한국 경제의 현실은 결국 재벌 신화를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재벌에게 국가는 없다. 저들의 이해관계만이 있을 뿐이다.

 

박 섭은 수출산업 육성과 중화학 공업화 등 박정희 시대의 산업정책을 투자 주체의 발견과 육성, 투자 자금 조달, 투자 전략 수립 등 세 부분으로 나눈다. 비록 산업정책이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지만, 박정희 정권 말기에 이르면 그러한 방법이 더는 유효하지 않게 되었을 때 역량과 조건이 부족했음을 말한다. 그렇다면 정책 기조를 바꾸지 않은 것이 누구를 위한 것일까.

 

노동 정책과 노동운동의 성장을 조망한 윤진호는 박정희 시대의 발전이 단순한 자본의 양적 축적과 경제지표의 양적 성장만이 아니라 그에 수반한 노동자계급의 양적, 질적 성장과 이에 따른 역사 주체로서의 등장이 포함된 발전이었다는 점을 주장한다. 나와 당신은 저임금정책의 실태와 장시간 노동 및 산업재해 등 열악한 노동조건이 현재까지 부정적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기억해야만 한다.

 

박정희의 지도력은 초기에는 농어촌고리채 정리사업이나 농업구조 개선 심의 등에서는 중농주의로 보인다. 하지만 농업구조 개선방안 마련 실패와 외향적 성장전략의 선택에 따라 농업의 성장을 통한 국민경제의 균형성장을 포기하게 되었다고 조석곤은 말한다. 생산력 증대의 길을 포기한 후 증산과 가격지지를 통한 소득증대책에 집중해 농가수지가 악화하였다. 지금의 농촌은 쌀 개방화로 살이 썩을 지경이다. 땅에서 사람이 떠나고 있다.

 

결코, 사회복지와 노동은 박정희 정권에서 정책 의제로 채택될 수 없었다. 권위주의적 발전 국가였던 정권에서 경제성장에 종속되어 ‘복지 없는 성장’ ‘노동 없는 성장’ ‘불균형한 성장’을 초래했을 뿐이다. 이에 신동면은 국가와 기업 간 연합이 주된 정책 망을 형성하고 있었기 때문에 정책 결정 과정에서 기업의 이해관계가 과도하게 반영되고 노동의 이해관계는 배제되었다고 한다.

 

 

 

 

‘아바타(avatar)’는 힌두어로 강림 또는 화신의 개념인 ‘아바타라(avatara)’에서 나온 말로, 사이버 공간에서 자기 자신을 대변하는 대리 물을 가리키는 개념이다. 아바타는 현실 속의 자아가 아니라 자아가 욕망하는 바를 투영한 것이었고, 사이버 공간이라는 가상의 세계에서 아바타들은 서로 만나고 교류하고 헤어지면서 관계를 맺어 나갔다.

 

2000년대 초 우리 사회에서도 사이버 공간에서 크게 유행해 크고 작은 문제들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 아바타가 경이와 환상으로 다가온 것은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영화, ‘아바타’덕분이었다. 영상에서 건네주는 3D의 충격과 영화로 불어넣어 주는 모두의 ‘선’을 향한 기운들에서 공간에 대한 판타지로 시간을 되돌아보며 한참을 영화 ‘아바타’에 몰두했다.

 

영화 ‘아바타’가 보여주는 인류 역사에 대한 성찰의 중심에는 침략의 역사가 있다. 영화 속에서 지구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는 우주 기지는 인간 대 자연이라는 이분법 속에서 자연을 정복하고 착취의 대상으로 여기던 인간들이 만든 현실이다. 반면 판도라는 지구인들의 이성과 합리성으로 만든 세계가 아니라 새로운 차원의 우주이다.

 

판도라는 ‘나비’라고 하는 전혀 다른 윤리 기준과 심성을 가진 존재들의 공간이다. 나비와 판도라의 자연은 신경과 신경이 접합되는 시냅스처럼 서로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영화의 주인공이 인간의 몸을 버리고 아바타로 사는 삶을 선택하여 진실로 나비가 됨으로써 바로 참된 인간성에 도달한다. 지금 유신 시대 아바타들의 등장을 보며, 문득 인간성이 사라진 이 공간이 가상세계는 아닌가 싶어졌다.

 

박정희의 조국 근대화론의 성과로 20여 년간 고도 경제 성장의 결과, 대부분 국민은 빈곤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외형적으로는 성장 가도를 달리는 듯했지만 ‘선 성장 후 분배’는 부의 불균형을 확대했고, 정권 후기로 갈수록 경제 안정을 위협했다. ‘선 경제 발전 후 민주주의’는 유신 체제의 이념을 뒷받침하고 결국 정치적 독재, 경제적 재벌 체제 등 경제 제일주의와 사유재산 절대주의를 극한적으로 관철해 왔다. 현재가 중요한 이유, 내일은 오늘을 지나야 가능하니까.

 

영화 아바타에서 보여주는 것은 약자가 강자에 승리하는 판타지, 신화와 상상력이 합리성과 이성으로 무장한 기술문명에 승리를 거두는 판타지이다. 생태주의 철학이 발전주의 철학에 승리를 거두고 수평적 네트워크의 힘이 수직적인 조직의 힘에 승리하는 판타지이다. 과연 촛불에 휩싸인 군중과 함께 모두의 ‘선’으로 향하는 신경과 신경이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소통하는 새로운 시간을 만나는 나의 조국에 대한 판타지는 가능한 것인가. 유신 시대 아바타가 하는 일이라고는 권력으로 국민을 우롱하고 국가의 폭력성을 휘두를 뿐이니.

 

박정희는 재벌체제와 비대한 토건 부문을 특징으로 하는 산업구조와 정부의 통제 아래 이들 부문에 자금을 지원하는 관치금융이라는 왜곡된 경제구조를 만들어냈다. 재벌과 토건, 경제 관료들의 3각 특권 성장 동맹을 낳았고 그들의 영향력은 성장 지상주의로 오늘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 거시경제에서는 적대적 노사관계를 유산으로 남겼다는 것을 기억해야만 한다. 노동개악을 노동개혁이라 말할 수 있는 그들의 뇌 구조를 이해할 수 없다. 결국, 저들의 이해관계로 국가를 통째로 말아먹으려는 박정희의 아바타, 유신 시대의 아바타에 불과하다.

 

아바타는 허상이다. 역사는 한 개인의 사적인 이유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결코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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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프랑스 철학자 알랭 바디우(오른쪽) 파리고등사범학교 명예교수와 홍세화 <말과 활> /한겨레

 

2년 전 가을, 프랑스 철학자 알랭 바디우는 경희대와 '지젝 바디우 네트워크'의 주최로 열리는 '멈춰라 생각하라-공통적인 것과 무위의 공동체를 위한 철학축제' 참석을 위해 한국을 첫 방문 했다. 지금 내 나라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이 물음 끝에 바디우는 보다 근원적인 곳으로 시선 돌리기를 말해 주고 있다. 이제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까지 내 나라가 치닫고 있는 현실, 현 정부의 행태는 과거 독재에 저항하여 스러져간 목숨을 다시 요구하려는가 싶다

 

바디우가 그의 저서 투사를 위한 철학에서 말하는 것은 실제 아주 간단하다. 자기 자신의 삶을 살아가라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반복적인 자동성에 맡김으로써 스스로를 방치하지 말고, 진리를 확신하는 주체의 삶, 이념을 지닌 삶을 살아나가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대단히 피곤한 삶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러한 삶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머리 아프다. 그런데 그 피곤함을 감내하고, 끊임없이 생각하라고 말한다. 그것만이 인간이 인간으로 남는 길이란다. 그 길을 포기하면, 그저 우리는 '먹고사는' 데만 신경 쓰는 '인간-동물'에 머물 뿐이라고 말한다.

 

현대를 '이념'이 사라진 시대라고들 한다.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라는 극단적인 역사의 장을 넘기며 인류는 21세기로 접어들면서 '지구촌'이라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허나 이 지구촌이라는 말은 교과서적인 말로 사용될 뿐이다. 다시 말해 대한민국은 여전히 동과 서, 남과 북이라는 긴장감을 떼어내지 못하고 있다 하겠다. 아니다. 정부는 오히려 이념을 들먹이며 래드 콤플렉스를 조장하고 있다. 국민을 마음놓고 우롱하는 5년짜리 정부를 보라.

 

남쪽에서는 '세계화'에 북쪽에서는 '주체화'에 갇혀 서로 평행선 위를 달리고 있는 중이다. 한반도 이 공간에 두 원칙이 첨예하게 대립각을 세우며, 과연 미래를 낙관할 수 있을까? 아니다, 그렇다. 극단적인 두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 보기는 쉽다. 상생을 위한 길을 모색해 내기가, 새로운 이념(사상)을 만들어 내기가 벅찰 뿐이다. 달콤한 자본주의의 또 다른 이름인 신자유주의에 심하게 매료되어 온 이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분명히 '세계화'의 철학인 '신자유주의'는 부자들에게는 조세 감면, 환경 보호 정책의 후퇴, 교육과 복지 정책의 포기를, 세계적 차원에서는 '부익부 빈익빈'만을 낳은, 인간적 모습마저 잃은 이 세계의 야만을 통렬히 비판하면서 새로운 실천을 요구할 철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내게 바디우의 '투사(鬪士)'는 자본주의의 어두움이 지속되는 가운데 '정치의 조건들'을 사유하는 주체의 개인을 위한 의미로 다가왔다. 

 

민주주의, 정치, 철학이라는 세 항 사이에는 무언가 역설적인 관계가 있는데 바디우는 민주주의에서 철학으로 넘어가야 한다고 말한다. 철학은 누구에게나 '주장'에 대해서 찬성과 반대를 미리 선택해 놓지 않는다. 한 사안에 대해 말하거나 사유하는 사람의 사회적, 문화적 또는 정치적 지위에 완전히 무관심하기에 철학은 민주주의의가 작동되는 다수에 의한 결정 방식이라 할 수가 없다. 철학이 추구하는 진리는 다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니까 말이다.

 

팟캐스트 <그것은 알기싫다>에서 만화계의 계약서 이야기를 풀어가는 중, 머리가 없고 가슴만 있는 사람들을 가리켜 너님, 후대에겐 병신인 거에요!” 격한 말이 두 해가 지났음에도 생생하다. 그와 반대로 머리만 있는 이들이 만든 사회구조를 면밀히 생각해 보았다면? 가슴은 쓰레기통에 처박고 머리만 있는 인간들이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이용하여 '자유''평등'을 내걸며 저들에게로 치우친 사회제도를 만들고 있다. 그들은 자유를 스스로 반납하게 하고 평등은 원래 그런 거거든 하며, 우민화 시켜왔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것이 우선이라는 이야기이다.

 

철학은 머리와 가슴이 함께 움직일 수 있는 데 필요한 사유이다. 이제 본질적인 구조의 변화를 위한 투쟁은 연대의 행동만으로는 역부족하다는 것을 이미 우린 알고 있다. 인류의 역사가 진행되는 시간에서 바라보자면 '혁명'또한 현재를 변화하게 하려는 데 급급한 조급증의 결과라고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역사에도 혁명으로 피어난 4.196월의 민주항쟁이 있었다. 그런데도 우리의 현재는 쓰레기 같은 권력이 낯뜨겁게 날뛰고 있지 않은가.

 

민주주의의 가치를 위해 신자유주의가 더 이상 그 힘을 발휘할 수 없게 하기 위함은 ''로 부터 시작된다. 현실의 움직임을 알아가고, 온전하게 삶을 향유한다는 것에 대해서. 비주체로서 허위욕망과 그로인해 발생되는 내 안의 탐욕을 부추기는 이기주의를 털어낼 새로운 가치 지향이 필요한 거다. 한 철학자가 건네는 인간을 위한 정치가 되기 위한 투사가 되기 위한 철학이라는 선물을 함께 나누었으면 한다. 다른 가능성, 다른 세상을 모색하는 ‘투사(鬪士)’가 필요하다

 

분명, 바로 일어날 수 있는 변화는 아니다. 하지만 굳이 후세대를 위한 것이라는 명분을 내걸자면 세대를 몇 번은 지나야 한다 해도 이제는 본질에 시선을 돌려야 할 것이다. 내가 '투사'가 되어야 하는 것은 이 시대의 '혁명'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와 같은 종()의 공멸을 막기 위한 한걸음의 의미가 될 것 같다. 바디우가 말하듯 자기 자신을 반복적인 자동성에 맡김으로써 스스로를 방치하지 말고, 진리를 확신하는 주체의 삶, 이념(사상)을 지닌 삶을 살아나야 한다. 전 인류를 위한 '새로운 사상''새로운 철학', 나와 당신에게서부터 마련되어야 한다.

 

비인간적인 것으로 얻어지는 풍요로운 요소 안에서 인간의 상징성을 찾아내야 한다는 것이 이상주의라고 할 수 있다면 우리는 그 이상을 향해 기꺼이 투사가 되어야 한다. 자본주의의 노예성에서 벗어나 보다 인간적인 형상을 지켜내기 위한 철학이 민주주의, 정치와 공존하게 될 때, 민주주의는 그 가치를 실현하게 될 것이고, 정치는 비로소 권력이 아니라 국가를 위한 장()이 될 수 있다. 니체가 '최후의 인간'이라 불렀던 비극의 모습, 모든 형상을 잃은 창백한 형상으로 남은 인간이기를 결코 허용할 마음이 내게는 없는데 당신은 어떠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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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호영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왼쪽)이 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당대표실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지난 6·4지방선거 교육감 선거가 깜깜이 선거, 로또 선거 였다"며

         임명제로의 전환 취지발언을 하고 있다. 2014.6.9/뉴스1

 

 

로이스 로리의 ‘파랑 채집가’에 우리들의 모습이 담겨있습니다. 이 소설은 핵 전쟁 이후에 펼쳐진 미래 사회를 보여줍니다. 수호자 집단이 이끌어가는 그 곳의 아이들 '맷'과 '키라'는 먼 훗날 펼쳐질 수도 있을 법한 우리 사회에서 성장할 아이들의 모습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간들이 결국 미래의 그 시간들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생각을 이 책에서도 무겁게 만날 수 있답니다.

 

강한 자들, 가진 자들이 쥐고 있는 권력의 힘을 남용하면 사람들에게서 '희망'을 빼앗아 자신들만의 세상 안에 가두게 됩니다. 지금 이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 살을 파고드는 파편들이 결국은 맷과 키라의 사회를 낳게 될 것은 자명합니다. 우리의 미래가 아니라 바로 현재가 이 책의 흐름에 맞춰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는 건 지나친 망상일까요. 아이들은 느낄 수 있답니다.

 

5년 전, '파랑채집가'를 읽고 섬뜩한 새벽을 만나면서 내 주변인들을 떠올렸던 시간은 지금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십대들과 시간들을 함께 하고 있는 내게는 나름 확신을 가져다 주기도 했지요. 하지만 십대들과 나누는 이야기의 중심에서 '두려움의 숲을 건너면 진정한 자유 속에서 만나지는 희망'이 있음을 만납니다. ‘파랑’이 구할 수 없는 아주 귀한 색이 된 그곳에서 파랑채집가, 그들이 ‘희망’이었지요.

이번 6.4지방선거는 13군데에서 진보교육감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우리 사회가 앞으로 교육의 혁신을 가능하게 만들어 갈 것이라는 사실로 위안을 삼았습니다. 세월호참사라는 외적인 요인만으로 진보교육감의 진출이 가능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내부적으로 현재 교육의 방향이 얼마나 잘못되었는가를 많은 이들이 절감했기 때문이겠지요. 그런 의식적인 투표의 결과였습니다.

 

공교육의 위기는 공동체를 교묘하게 해체하는 결과를 빚어내어 왔다고 하면 지나친 우려일까요. 우리의 교육은 없었습니다. 개인의 성공과 이해관계로 개인의 잠재력이나 상상력은 발휘될 가능성이 없었으니까요. 청소년들은 미래가 암울하게 느껴져 자신의 몸 사리기에 급급하고, 수동적으로 사회적 성공이란 허울 좋은 허위욕망으로 허덕거려야만 했습니다. 비주체로 사는 것이 덜 두렵게 다가왔겠지요.

 

우리 사회는 이미 교육이 아닌 사육을 통해 로리스 로이가 문학 내에서 ‘파랑’으로 설정된 ‘희망’을 빼앗아 왔던 것입니다. 아이들은 이미 사육당하는 교육 환경에서 주체로서 철저히 배제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런 결과로 발생하는 일들이 사회에 넘쳐나고 있었지만 표면적으로 감추는데 급급했습니다. 청소년의 자살과 학교 폭력, 인권의 부재에서 보여지는 권위의 추락은 교육의 주체를 일깨우게 합니다.

 

 

 

 

          ▲ 서울 조희연 등 진보성향 교육감 후보들이 지난달 19일 기자회견을 통해

            3대 공동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News1 김재식 기자

 

 

교육에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는 이번 진보적인 교육감의 역할은 건강한 미래 사회를 위한 초석이 될 것입니다. 그동안의 병든 교육에 대한 반성과 성찰로 사람을 살리는 교육을 위한 혁신을 통한 진보적인 정책들이 지속적으로 만들어져야만 합니다. 자신으로부터 시작된, 주체적인 한 개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것이 교육의 역할입니다. 그 역할은 기성세대의 사회적 책임감이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이번 6.4지방선거의 결과에 보여준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의 행동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교육감 직선제 폐지를 위한 헌법소원 추진을 공언한다는 것은 우리 사회에 교육의 주체를 외면하는 현실을 공고하게 알려준 일이지요. 또한 주호영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은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현행 교육감 직선제는 과도한 선거비용 문제가 있다"라며 '교육감 임명제 부활'을 주장했다고 합니다.

 

그는 "2010년 교육감 1인 당 38억5800만 원의 선거비를 썼는데 이처럼 막대한 비용을 쏟아붓고 선거에서 지면 패가망신한다"라며 "교육감 비리가 빈번한 이유는 선거비용 조달 문제 때문"이라며 또 돈타령을 합니다. 지금보다 더 많은 선거비용이 들어도 교육감 직선제는 필요한 일이며 당연히 지켜야할 제도 입니다. 오히려 교육의 주체가 구경꾼으로 놓인 현재 상황을 바꿀 의지가 더 발휘되어야할 때라고 봅니다.

 

나 하나만이 아니라 너와 내가 만나 하나가 되는 것은 동양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했던 마음이었습니다. 이것이 서구와 다른 점이죠. 로빈슨 크루소처럼 무인도에서 혼자 떨어져서도 잘 버티어나가는 사람보다는 함께 하려는 우리의 공동체 정서입니다. ‘내 엄마’가 아니라 ‘우리 엄마’인 거죠. 강한 내가 약자인 너를 어깨동무하여 나아가는 것이 교육의 힘입니다. 공교육의 혁신으로 그 힘을 키워야 합니다.

 

2014. 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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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티 인사이드

Overdye*~ 2015. 10. 1. 15:19

 

 

리메이크된 <뷰티 인사이드>의 원작은 도시바와 인텔의 후원으로 노트북 홍보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지극히 상업적인 영화란다. 2012년 인텔 & 도시바 합작 소셜 필름인 ‘The Beauty inside'인데 이 작품은 칸 국제광고제 그랑프리 클리오 국제광고에서 금상을 차지하기도 했다더라.

 

상업성을 등에 업고 "누구나 남자 주인공을 연기할 수 있는 영화"라는 슬로건으로 영화의 주인공인 알렉스의 페이스북을 통해 하나의 에피소드가 공개되면, 1주일 동안 그 이후로 어떻게 진행될지를 관객들로부터 비디오로 직접 받아 다음 편 에피소드가 만들어지는 방식이었단다. 생각하지 못했던 일상성이 오히려 특별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그래, 어쩌면 나의 일상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특별할 수 있으니까. 제작 의도와 발상이 전혀 다른 효과를 주는 것이 원작과는 다른 감동을 준 것 같다. 백감독의 <뷰티 인사이드>는 느리게 마음을 적시더라. 영화 역시 내면을 들춰내어 질문을 던지고 나를 닮은 수많은 사람을 통해 나를 다시 만나게 하기도 하고.

 

 

 

나의 수많은 모습의 순간들이 다른 인물의 이미지로 이어진다는 느낌에 어느 순간 뜻밖의 나를 만날 때처럼 친근하기도 하더군. 영화의 리뷰를 쓰는 것이 목적은 아니기에 나의 영화 이야기는 늘 나의 주변과 인물, 내 공간, 내 주변에서 느끼는 감성들로 이어지고는 한다. 나와 당신을 이어주는 것은 무엇일지 생각해 본다. 당신의 눈에 비치는 나의 사회적 지위인가 아니면 나의 경제적인 면인가 출중하다 할 나의 외모인가(?) 아니면 영화 속의 그녀가 잡은 '그런 마음'인가를.

 

이 영화는 어느 날은 친근하게 또 다른 날은 낯설게 수많은 느낌으로 나를 스쳐 갔던 사람의 희미한 표정들과 닮았다. 마음 타령으로 스스로 위안으로 삼았던 내가 영화의 주인공으로 분하는 순간 세계는 작은 점들로 이어진 직선을 보여준다. 끝이 없다. 끝나지 않을 선이다. 내 안에 있는 수많은 나의 모습에 보이지 않았던 마음은 이성의 힘으론 설명 불가능하다는 것을 조금 빨리 알아차린 덕분에 이 영화가 주는 판타지가 계속 이어지길 바라게 되어 버렸거든.

 

형식과 내용. 외면과 내면. 두 가지에서 늘 허덕거려야 하는 현대사회에서 내가 주인공으로 살아갈 수 있으려면 꽤 용기가 필요했던 것 같다. 그때는 잘 모르고 지나왔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분명하게 드러나는 모습은 어쩔 수가 없지. 이방인이 되어 먼 길을 돌아가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시간이 지금은 세상이 나를 자꾸 불러낸다는 생각도 들거든. 내가 세상을 향해 소리 낼 수 있을 때 세상은 지금보다는 나아질 수 있었다고 말하는 나도 있긴 해.

 

어느 날 갑자기 내가 다른 모습으로 잠에서 깨어나는 설정은 문학 작품에서도 새로운 것은 아니지. 카프카의 <변신>은 널리 읽는 고전의 대열에 있는 작품이니까. 다만 내용에서 집중했던 것은 역시 현대인의 소외였어. 개인 간에 일어나는 소외의 일상은 어쩌면 이 사회에서 조장하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라는 생각에 머물게 되더군. 사회를 움직이는 테크노크라시로 만들어낸 소외. 국가가 개인을 교묘하게 소외시키고 있다는 거지.

 

이 영화는 소외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을 외부에서 찾지 않는다. 주인공의 삶은 매일 매일을 다른 얼굴로 살아간다는 게 드러나지 않을 뿐 현대인으로 반복되는 일이기도 하지. 보이는 것 말고 느끼는 것으로 살아질 수 없는 삶. 나는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집 앞으로 난 밤길을 걸으며 가을의 깊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내 삶과 함께 수많은 얼굴이 지나간다. 결국, 개인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의 기능에 주목하게 된다.

 

인간에게도 유통기한이란 것이 있을까. 5년짜리 정부의 유통기한 중 벌어진 일들을 생각해 보자. 아직도 가슴을 쿵쾅거리게 하는 참사 이후 과연 변한 것이 있을까. 정부의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애프터 립 서비스는 최고이다. 입으로는 삼권분립을 외치는 대통령만큼이나 공공연하게 드러나지 않는 우리 사회, 악의 유혹은 고용소비그 달콤함으로 개인들의 의식을 마비시키는 데 힘을 보태 왔다.

 

경제 성장을 위한 국가의 도그마에서 국민은 권리의 유통기한에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다는 불편한 진실을 언제까지나 외면할 수는 없지 않은가. 사회에서 상품의 유통기한이 지나면 폐기 처분된다. 그 기한을 만든 이는 생산자이고 수요자의 입장에선 생산자에 대한 믿음이 전제된 가운데 그 기간 안에 상품을 소비하려고 애를 쓴다. 하지만 그 상품이 변질하면 내 건강을 위해서라도 쓰레기통에 버린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고 그와 같은 사회적 조건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것이 상호 신뢰이다. 역사는 훌륭한 개인이 아니라 다수 인간이 생활해 온 모습이고, 그들의 경제적 욕구와 공공선을 향한 존엄이 반영되어 온 과정이기도 하다. 한쪽으로만 치달은 급성장의 역사를 성찰할 기회는 늘 마련되어 왔고, 그것을 향한 지속하는 저항에는 유통기한이 없다. 정부가 겉으로 추진하는 정책에 담긴 의미를 알아차려야 한다는 거겠지.

 

역사의 진보는 한 시대, 또 한 세대를 좀 더 나은 세상을 향해 나아가도록 이끄는 나침반 역할을 해 왔다. 한 개인이 몸담은 그 사회에 자유와 평등의 가치가 구성원 모두에게 상식적으로 통하기 위해 그 사회의 역사적 기록과 그 이미지는 역사의 발전을 향해 발걸음을 내디뎌 오지 않았던가. 지나온 역사에서 반복되곤 하던 공안 정국을 내세우는 국가의 정치는 이미 유통기한을 넘긴 지 오래다.

 

그런데도 정치·경제, 사회 각 분야를 부패의 냄새로 전염시키며 휩쓸고 있다. 눈 가리고, 귀 막고, 입 막고 이제는 코를 막아야 할 때이다. 결국, 썩은 냄새가 싫으면 알아서 기어 그들의 품에 안기거나, 숨통이 끊어지지 않을 만큼 틀어막고 연명하라는 말이다. 정치를 바라보는 피로도가 급격하게 몰려오는 현실감은 방향을 잃기에 십상이다. 국민을 상품화하여 유통기한에만 사용하는 국가는 정치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이라는 이름으로 장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선거 기간이라는 유통기한이 상실되면 국민을 폐기 처분하듯 버린다.

 

영화 <뷰티 인사이드>에서 'Inside'라는 단어는 선물처럼 포장된 '내용물'이나, 사람의 '내면'의 이중적인 의미가 있다. 한 개인의 마음이 한결같을 수는 없었지. 늘 뜻밖의 작은 일로 그동안의 마음에 상처를 받기도 하고 그 마음을 애써 버리려고도 하지. 하지만 완벽한 사람이 없듯이 내 눈에 보이는 것이 달라도 그 안에 담긴 진정성을 판단하고 느낄 수 있다면 내 마음을 한결같이 이끌어갈 수는 있었던 것 같다. 하물며 5년짜리에 불과한 나쁜 정부에 동참하고 있는 조력자들과 정치인(政治人)에게 기회를 주어서는 안 되겠지. 겉으로 보이는 이 사회의 풍요와 그 이면에 드리운 암울함을 바라보게 된다면.

 

내면의 아름다움이 나를 감동하게 할 그 어느 날, 광장의 유쾌함을 위하여 오늘은 빗소리와 바람소리에 귀 기울여 보면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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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주 상산고는 왜? 

 

오늘은 그동안 밝혀지지 않은 교학사 역사교과서를 선택한 학교들의 명단이 보도될 것이다. 이 글을 쓰는 현재까지는 유일무이하게도 전주 상산고가 철회의 소식을 주지 않은 채 학교 교감선생님의 바람대로 주목을 받고 있다.

지금부터 소설을 써 보려고 한다. 열여덟들이 벌인 숨막히는 서스펜스!!

  

   

▲ 1월 1일 밤, 익명의 학생이 대자보를 붙였다. “안녕들하십니까?”의 형식을 빌려 만든 이 대자보는 1월 1일 밤에 급식실 앞 게시판, 매점 앞, 학교 중앙 현관에 총 3부가 붙었다. A4용지 4개를 붙여 프린트한 대자보 전문 중 일부 내용이다.

 슬퍼2실종 중!!

 

 

   
 

먼저 첫 번째로 붙여진 대자보 옆으로 3일 저녁 9시께 '존경하는 교장선생님께 드리는 말씀'이라는 대자보를 상산고 2학년 학생이 역시 본관 입구에 게시했지만, 4일 오전 8시께 학교에 의해 철거됐다.  

  

슬퍼2이 역시 실종 중!!

 

 

소설쓰기.

첫 번째 '안녕들하십니까'를 어둠을 이용해 남의 눈에 띄지 않게 철저히 익명으로 붙여야만 할 한 소년이 보인다. 그 소년은 치밀하게 낮에 A4 네 장의 글을 붙일 적절한 장소를 물색했다. 또한 CCTV의 위치도 꼼꼼하게 위치 파악을 했을 것이다. 주머니에는 스카치테이프를 단단히 챙겼을 것이고, 기숙사를 나오는데 최대한 자연스레 나오기 위해 들고 나올 종이들을 재주껏 위장해야 했다.

자, 이쯤이면 그 당시의 상황에 뛰어들어가 봄직하다. 심장은 팔딱거릴 것이고, 생전 해 보지 않았을 일을(소년에겐 거사가 아니었을가 싶은데) 하는 거다.

만약에 문제가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도 적잖이 있을 것이고, 떠오르는 얼굴들도 있었을 거다. 부모님, 주변인들, 영화 속의 한 장면들이 스치고 지나갔을 수도 있겠지. 깊은 밤에 교내를 돌아다니며 다른 친구들의 눈을 피해 움직이며 그 소년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어쩌다가 이놈의 나라가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는 일에 무슨 레지스탕스처럼 행동을 해야 하는 것일까. 그래, 우리는 알고는 있다. 그 소년도 알고 있기에 그렇게 하는 자신을 격려하고 지금까지도 학교의 철회 발표를 기다리며 그 다음의 상황을 애써 상상하지 않으려고 할 지도 모른다. 똥고집을 피우는 상산고 측의 선생들이 애들을 아주 초죽음으로 만들고 있다는 생각을 하기는 할까.

학교 측이 대자보를 뗀 황당 이유는 "편지글이어서 교장에게 전달하려고…" 라는 말. 말한 것은 있으니까 일요일 오전 10시에 상산회관에서는 약 30명의 개인들이 참가했고 교장에게 전달하기 위해 나온 교감선생님 한 분과(그 유명한 역설의 달인) 또 한 분의 교감 선생님과 토론을 벌였다고 전해진다. 기자가 찾아와서 도중에 한 분 교감선생은 나갔다나. 뭐, 별 성과없는 형식적인 것에 불과했고 양측 모두 제 소리들만 내다가 약속있으신 교감선생님 덕분에 한시간여에 끝이 났다고 하더라. 
 

   

▲상산고 재학생들이 돌린 '교학사 역사교과서 채택 반대 서명용지'. 모두 280여 명의 학생들이 서명했다. 이 서명에는 역사 교육을 받게 될 신입생들도 참여했다.

  

슬퍼2이 역시 실종되면 안 돼!!

 

 2014.01.04. 제목: 상산고 학생입니다,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최대한 퍼트려 주세요

 

짧게 쓰겠습니다.
서명운동을 시작했습니다. 과반수는 여유있게 넘길 것 같습니다.
채택 교과서를 수정할 수 있는 기간은 1월 6일까지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학교 측에선 책임 회피를 하며 시간을 끌어보겠다는 것 같습니다.
오늘 아침에 이사회가 소집되어 이 문제에 대해 의논해 보겠다고 했는데, 
결국 소집되지 않았습니다. 
학교 측에서는 교학사 교과서에 대해 찬성하는 입장이라서, 학생회 간부들은
이 일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저와 생각이 같은 친구들 몇 명이 모여서 진행중이고요.
현재 졸업생들과 언론, 시민 단체에 도움을 요청하고 있지만
.............................
이하 생략

  

위의 글은 [오늘의 유머]에 올라온 상산고 학생의 호소였다. 

   
 

 

상산 홈페이지에는 "상산에 가면 꿈을 이룰 수 있다!"는 사진이 게시되어 있다. 어느 곳이나 학교의 교육 목표는 그럴 듯하다. 멀쩡한 애들 데려다  졸지에 "친일파..."로 싸잡아 몰아 가는 사회이다. 지학사 역사교과서의 보충을 위해 나라를 말아먹는 데 앞장 선 이들을 칭송하는 교학사, 2종을 선택했다는 게 더 괘씸하다. 피할 구멍을 만들어 놓고 실시하지도 않는 토론 교육을 떠벌이는 학교측의 말에서 우리 교육의 환경을 제대로 보는 것같아 실소를 하고 말았다.

 

왜, 학생이 부끄러워해야 하지? 기가막힌 교육현실이다.

 

 

                                 

학교 안에서 밖에서 동문들도 학교측의 잘못된 선택을 지적하고 바로 잡아줄 것을 알리고 있었다.

전북지역 30여 개 시민사회·교육단체로 이뤄진 ‘전북교육혁신네트워크'는 6일 오후 상산고 앞에서 교학사 교과서 철회 촉구 기자 회견과 학교 항의방문 등에 나설 예정이란다. 전북교육청도 최근 상산고 홈페이지 게시판 글 무단삭제와 재학생들의 대자보 철거 건과 관련해 전북학생인권조례에 명시된 ‘표현의 자유’를 침해했는지 파악하기 위한 실태조사를 실시할 방침이기도 하다고 전해진다.  

 

아래 글은 <서프라이즈>에 올라온 글이다. 

   

 

상산고, 역설의 달인 교감과 바쁘신 교장선생님,

자, 이제 어떻게 하시렵니까?

상산고 정문 앞에서 일요일 번개모임으로 동문들이 급하게 모여 이틀 전부터 1인 시위 자들과 함께 했다. 아이들은 1인 시위자들의 주머니에 따듯한 음료수를 찔러 넣어주고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총총히 학교로 들어가기도 했다. 부디 아이들의 애를 그만 태우고 학교 측의 올바른 결정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평소에는 공부들 좀 하라고 어지간히들 볶아대면서 이런 상황에서 애들이 참, 공부할 수는 있겠나.

역설 좋아하시는 교감선생, 혹시 방학도 실종 중인 대한민국 학생들에게 스릴 넘치는 방학을 즐기라는 것인가? 아이들이 선택한 자신의 학교에 자긍심을 찾아줄 상산고의 교학사 교과서 철회를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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