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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에는 멀쩡한 곳이 단 하나도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국가 경쟁력이 그렇게 중요한 것일까요. 도대체 무엇을 누구를 위한 경쟁력인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한반도의 반쪽인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5,000만입니다. 노동자에게 최저임금이 최고의 임금으로 되었다면 농민들에게는 13년을 동결한 쌀 값이 있습니다. 즉 노동으로 돈을 벌거나 농사를 지어 돈을 벌고자 한다면 미친 짓이 되는 겁니다. 그야말로 입에 풀칠이나 할 수 있으면 다행인 것이지요. 가을걷이를 마치고는 지인이 말하더군요. 농사 짓는 거 이제 끝내야 할까 싶다고요.

  

 

정부가 지난 주 쌀시장 개방을 선언한 데 분노한 광주 전남 지역의 농민들이 논을 갈아 엎는 시위를 했습니다. 전국농민회 광주전남연맹이 광주역에서 쌀시장 개방 저지 투쟁 선포식을 가졌는데요, 당시 계획에 따라 오늘 영광군 농민회가 벼논을 트랙터로 갈아 엎으며 쌀시장 개방에 항의했습니다. 비슷한 시간 순천에서도 농민 100여명이 논을 갈아 엎었습니다. 농민들은 논을 갈아 엎는 심정에 대해 마치 죽은 자식을 가슴에 묻는 것같다면서, ‘박근혜 대통령은 더 이상 농민들의 대통령이 아니다라는 선언식을 가졌습니다. 농민들은 광주시와 전남도, 각 시, 군청 앞에 농기계를 반납 투쟁도 하고, 조만간 서울 상경 시위를 하겠다는 계획도 밝혔습니다.

 - 국민TV 뉴스K 7.24-

 

 

정부는 718일 쌀의 관세화 즉, 쌀시장 개방을 결정한 후, 두 달 만인 지난 918일 수입쌀의 관세율을 513%로 확정 발표했습니다. 관세율 그 자체는 결코 나쁘지 않다는게 전문가들의 평가랍니다. 513%가 적용되면 80kg 기준의 쌀 가격은 미국산의 경우 현재 63000원에서 388000, 중국산의 경우 85000원에서 522000원으로 오는 거죠. 이 경우 17만원 정도인 국내산 쌀이 가격경쟁력에서 수입쌀에 결코 밀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정부의 발표를 의심하고 있습니다. 특히 513%의 관세율을 법으로 명시하지 않아, 약속을 지키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정부의 지금까지 정책 진행 과정들을 되돌아 보면 이렇게 술수를 부려 결과적으로는 시늉만 내며 거의 뒷통수를 칩니다. 정부가 내놓은 특별긴급관세제도에 대해서도 전문가들은 사후 대책이기에 실효성이 없다고 평가했답니다. 십 사년 전으로 역사의 시간을 되돌려 봅니다. 강준만의 한국 현대사 산책 1990년대 2을 정리해 보면서 한국사회에 전방위적으로 퍼져있는 생존의 위기감은 다가올 겨울의 냉기로 미리부터 엄습하고 있습니다.

 

907월 초부터 우르과이라운드 (UR)가 사회 수면 위로 오르자 반대 시위가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농협이 911111일부터 1223일까지 전개한 쌀 수입 개방 반대 서명운동에는 1,300만 명의 국민이 참여했습니다. 한국농어촌문제연구소가 주관해 벌어진 반대서명엔 전국의 대학교수 및 강사, 연구소 박사 3,000여 명이 참가해 쌀 개방 반대의 수준을 넘어 UR 자체를 반대하는 운동을 전개했죠.

 

                  우르과이라운드 위협이 가시화되던 1991년 1월 경실련은 기자 회견을 열고 미국의 쌀 수입 개방 압력을 비판하였다. -한국현대사산책 1990년대편 /강준만-

 

김영삼은 대통령 선거 유세 때에 대통령직을 걸고 쌀 시장 개방을 막겠다고 큰 소리쳤지요. 하지만 1993122일 농림부장관 허신행은 쌀 수입 개방과 관련한 최후 협상을 위해 제네바로 출국하는 자리에서 기자 회견을 통해 쌀의 관세화는 물론 최소시장 접근도 허용아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출국 후 이틀 만인 124일 사실상 쌀 수입 개방 압력에 굴복했음을 시인했던 것입니다. 쌀의 역사는 1945년 일본 패망 이후 미군정 시기부터 그 시작을 알 수 있죠.

 

93128일 전국농민회총연맹은 농산물 수입 개방에 앞장선 혐의를 받은 정부관계 인사 5인에게 계유 5이라는 딱지를 붙였죠. 민자당 대표 김종필, 국무총리 황인성, 부총리 이경식, 농림수산부장관 허신행, 외무장관 한승주 등, 이들이 농업, 농민의 존립 기반을 붕괴시킨 것은 을사 5이 국권을 일본에 넘겨주었던 것과 마찬가지라는 의미였습니다. 하지만 김영삼은 담화를 통해 쌀 시장 개방을 공식 선언하며 국익을 위해 고립보다는 국제화를 선택했다는 논리를 폈습니다. 담화 직후 쌀 시장 개방 반대를 주장하는 시위가 전국적으로 확산되었죠.

 

          '우리농업지키기 범국민운동본부' 출범식 후 거리 행진을 하는 회원들.

-한국현대사산책 1990년대편 /강준만-

 

931215, 8년 가까이 끌어 오던 우르과이라운드 협상이 타결되었죠. 농민들이 쌀 시장 개방을 을사보호조약에 비유하자, 문민 정부는 반대자들을 구한말의 쇄국주의자에 비유하고 나섰습니다. 김영삼은 94년 연두기자회견 때 사회 전반의 국제화와 세계화를 위해 시책을 펴나가겠다고 말했는데 서울대 교수 김수행은 김영삼 정부가 갑자기 국제화, 개방화, 국가경쟁력의 제고를 강조하는 이유에 대해 당시 19945월호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204.11.19

첫째는 미국의 요구에 따라 농산물 시장 특히 쌀 시장을 개방할 수밖에 없는데, 쌀 시장의 개방이 미국의 압력이 아니라 시대의 대세라는 것을 선전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농산물도 다른 모든 상품과 마찬가지로 국제경쟁에서 이겨야 하며, 국제경쟁에서 이기지 못하는 것은 미국 탓이 아니라 우리 탓이라는 것을 인정하기위해서다. 참으로 끔찍한 사대주의적 발상이다. 둘째는 정부와 관변 연구단체들이 국제경쟁력이 없는 농업은 포기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한국의 역사는 참으로 비통합니다. 미래세대에게 이런 역사의 후유증을 계속 앓게 한다는 사실은 더욱 갑갑하기만 합니다. 세계화는 이해관계에 얽힌 몇 몇 나라를 위한 것이 아니지요. 더욱이 한국에서 세계화라는 명분은 여전히 완전한 독립을 하지 못한 국가의 국민에게는 족쇄일 뿐입니다. 일을 하고 그 대가를 제대로 받을 수 없는 현실에서 정부의 무능함은 역력합니다. 지난 우르과이라운드 이후 농업 정책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여 왔다면 설사 강대국에 의한 통상외교에 받아들일 개방이라 해도 큰 충격은 완화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협상조차 해 보려 노력하지 않는 정부의 외교 능력은 국민들을 이해시키려는 노력도 대책 마련도 지극히 형식적입니다. 농민단체들은 WTO 농업협정문 어디에도 ‘유예 기간이 끝나면 자동 관세화한다’는 조항이 없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부는 관세화를 선언해 버렸고, 관세율만 높게 책정하면 된다는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경상도 방언이 어째 더 마음에 와 닿는 순간입니다. 을 버리는 순간 죽음이 선고되듯이 ‘쌀을 버린 이 나라의 미래는 암담합니다.

 

견고하고 장기적인 농업인을 위한 대책마련과 식량주권을 위한 노력에 정부의 역할이 필요합니다.국민들의 식량주권을 지킨다는 의미를 빵을먹어도 밥을 먹어야 한 끼를 해결했다고 생각하는 내가 제대로 모른다면 한국사회의 미래는 없습니다. 천년 만년 살아지는 삶도 아니거늘 기성세대들이 저지르고 있는 일들에 겨악을 합니다. 노동자를 지키지못해 사람이 도구로 전락해 버린 한국사회에서 농민을 지키지 못하는 국가는 먹을거리를 외국에 의존해야만 하는 사망신고를 받은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이제 쌀을 사는 일이 금덩이를 사는 일만큼 어려워질 미래, 끔찍합니다. 

 

근 이십 년 전 제 집을 지으면서 미래에는 석유가 금붙이보다 더 귀해질 것이라며 재래식 아궁이를 별도로 만들던 이가 생각났습니다.그는 이제 생존의 의미를 다르게 받아들여 집없이 길을 따라 걷고 있는 이가 되었지요. 자신의 선택으로 길을 걷고 있는 이와 먹을 것을 찾아 길을 헤매야만 하는 이와 비교할 수도 없습니다. 먼 미래 어느 날, 이 땅 위의 모든 길에는 굶주림으로 걷는 이들이 즐비할 것이라고 하면 지나친 과대망상일까요. 사람의 미래는 사람에게 있습니다. 그것이 지구촌의 사람들에게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런지요. 지구의 절반이 굶주림으로 죽어가고 있는 이유, 시카고 곡물거래소에서 만들어지는 다국적기업들의 결과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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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랏빛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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