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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포터'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6.11.27 드디어...
  2. 2016.01.16 죽음

 

 

 

현재의 만족도에 따라 사람들은 과거를 바꿀 수만 있다면 바꾸고 싶어 할까... 조앤 롤링과 두 명의 작가들에 의하면 그런 것 같습니다. 현재가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말입니다. 혹은 누군가에게 자신이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모험을 하기도 하겠지요.

 

시간여행자인 나는 특히 그런 마음을 알 것 같습니다. 물리적인 이동을 원하는 것이 아닌 까닭에 다르긴 합니다만. 시간여행을 타임머신으로 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은 욕망이 꿈틀댈 것도 같습니다 

 

조앤 롤링의 해리포터 탄생부터 볼드모트의 죽음까지를 지켜본 독자들과 영화를 본 사람들의 아쉬움과 설렘은 나만큼이나 큼직했을 겁니다. 책의 시리즈 예약판매를 기다리면서 먼저 나온 외서들을 번역해서라도 빨리 읽고 싶었던 그 간절함이 다시 스륵 밀려듭니다.

 

이번 책 역시 그런 설렘으로 보내고 책이 도착하자마자 읽습니다. 이번 시리즈는 대본입니다. 이미 연극으로 상연까지 했다는데 과연 한국에서도 상연될 수 있을까? 아니면 영화 제작으로 이어지진 않을까? 주말 내내 그들의 이야기에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드디어, 무인카페에 함께 시간을 나눌 세 사람이 등장했습니다. 오랜 기다림이라 생각하지 않았는데 너무 이른 만남의 시간을 맞아 사실은 흥분이 되더군요. 거의 모든 일은 마음에 달린 것에서 시작된다는 믿음이 증명되었다고나 할까요. 늘 그랬습니다. 어떤 일을 상상하고 기획하고 실행하면서 기다리는 일만은 전문가가 되었답니다. 지극한 마음이면 이 일만큼 설레는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다음 주부터는 책 한 권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며 공부하기로 했죠. 시국이 시국인지라 박성호의 어쩌다 한국은으로 현재의 국정농단 사태가 일어날 수 있었는지를 알아가는 시간이 될 겁니다.

 

 

, 삶은 기다리는 시간 내내 설레면서 힘을 얻는 순간의 커피 향기 일지 모르겠습니다.

 

 

Posted by 보랏빛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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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앨버트 브룩스 감독의 영화 <영혼의 사랑 (Defending Your Life)>

 

죽음. 사후세계는 있을까? 다시 태어난다는 의미일까. 그동안 살아왔던 세계와 다른 차원의 세계에서 우린 다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일까. 사후 세계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없다고 정말 없는 것일까? 그렇다면 과학으로 인간의 모든 것을 증명해야 가능한 말이 아닌가? 삶과 죽음은 같은 선상에 있는 것이라 생각된다. 어쩌면 살면서 죽은 듯이 지날 수도 있겠고, 죽음을 연습하는 것일지도 모르지. 

죽음은 내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고 죽음이 나를 선택하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자연스런 나의 죽음이다. 모두의 죽음은 타자의 죽음으로 나에게는 아주 먼 듯한 느낌으로 바라보는 누군가의 죽음이다. 삶과 죽음 앞에서 내가 선택하는 것. 그것은 금지된 죽음’인 '자살'이 아닌가. 나는 평소에 내가 가진 죽음에 대한 생각을 제대로 정리하고 나름대로 타자의 끄덕임을 위해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아니, 나를 위해 공부를 했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죽음에 관한 책들을 읽어 보고 사상가들이 펼친 죽음에 관한 고찰들에서 공통점을 찾아 본다. 아무도 죽음을 겪어본 사람이 없기 때문에 살아있는 자가 죽은 자를 논한다는 것은 살아있는 자의 유희일수 있다는 점은 기억해 두고 싶다.  여기서 과거의 현자들을 소환해 그들이 남긴 말을 꺼내보자.

                                                                                    

                                                                    공자 : '삶을 제대로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알 수 있겠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 : '충만한 낮의 생활도 수면의 기쁨을 주지만 인생은 죽음의 기쁨을 준다.'

 

 

 

소크라테스 :

나는 큰 기쁨을 가지고 내 갈 길을 가는 걸세. 나뿐만 아니라 마음에 각오가 되어 있고 마음이 정화되었다고 믿는 사람이면 누구나 기쁜 마음으로 이 길을 갈 걸세.'

 

 

                                                                                        

장자 :

생사라는 자연의 도리에서 벗어나 진실을 거역하고 하늘로부터 받은 본분을 잊음이야. 옛날 사람들은 이것을 '하늘을 도피한 벌'이라고 했다. 죽음은 그 때를 편안히 여기고 자연의 도리를 따라간다면 기쁨이나 슬픔 따위 감정이 끼어들 여지가 없을 걸세. 이런 경지를 옛날 사람들은 '하늘의 속박에서 벗어남'이라고 불렀네 

 

죽음과 함께 거론되는 것은 사후 세계에 관한 궁금증일 것이다. 종교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그만 두자. 어차피 종교는 내 삶이 고단할 때 약간의 위안을 주는 것이라는 생각이기에 단 한 번의 죽음을 종교적으로 해석한다는 엉뚱한 짓을 하고 싶지는 않다. 이 우주에 신()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기에 그만큼으로 거리를 유지하고 싶다. 

최근에 영화를 한 편 보면서 생각이 미친 것이 있는데 사후 세계는 있다 해도 살아있는 자들과는 완전히 분리되어 있기에 우리의 의식으로는 판단할 수 없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나는 '죽음이 삶의 또 다른 방식'일 것이라는 생각에 머물기로 했다. ‘생과 사의 문제는 철저히 자신의 문제가 아닌가하는 관점에서 이 글도 내 공부의 연장선에서 나오는 글일 뿐이다 

영화를 잠깐 소개해 보면 죽음은 나에게도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올 수 있다는 점을 다시 일깨워 주기도 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죽음이 결코 두렵거나 불안하다는 미혹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앨버트 브룩스 감독의 ‘Defending Your Life(1991)’는 판타지이다. 어차피 우리가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은 이럴 수밖에 없지 않은가. 현재 살아있다면 오늘, 잘 살아가는 게 중요한 것이니까. 내일은 죽은 자의 위치에 있을지 모르니. 

또 누군가는 나의 이런 말에 '자기만의 언어'로 떠드시는군, 하겠지. 그래, 죽음이건 삶이건 어차피 당신의 선택이고 나의 선택이었던 것 아니던가. '인간'임을 마지막 순간까지 놓아버리지 않는 노력을 할 수 있다면 현재 누리는 삶이 허무하지는 않을 테지. 당장 내 앞에 펼쳐질 좋은 세상은 아니더라도 그 언젠가는 조금 나아질 세상이라는 믿음은 갖고 살아도 되는 것 아닌가.

 

 

 

2016년이 되면서 내게 익숙한 얼굴이 다른 세계로 떠났다. 해리포터 시리즈에서 혼혈왕자인 스네이프 교수. 해리포터 시리즈가 끝나갈 때까지 가장 끌렸던 스네이프 교수가 내게는 이미 영화 배우 알란 릭맨의 죽음이 아닌 혼혈왕자의 죽음에 모든 퍼즐이 맞추어 있다. 현실 세계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죽음과는 무척 다르다. 영화에서 만나는 캐릭터의 죽음은 그 영화가 내 삶에 남아 그리움으로 느껴질 때까지 가능했다.     

 

[굳이 죽음을 염두에 두고 읽은 책]

필리프 아리에스의 죽음의 역사셀리 케이컨의 죽음이란 무엇인가시니 & 허노의 죽음에 관하여』파드마삼바바 『티베트 사자의 서

 

 

 

 

 

Posted by 보랏빛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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