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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행동

Overdye*~ 2015. 6. 27. 00:08

대한민국 헌법은 모든 국민이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보장하고 국가인권위원회법은 성적 지향으로 인한 차별을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성소수자들에게 차별받지 않을 권리란 먼 나라 얘기일 뿐이다. ‘헌법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인지, 헌법 따위는 필요 없다고 믿는 구석이 있는 것인지 법치국가는 누구를 위한 국가인지 나도 국가의 필요성에 의문이 생긴다.

 

성소수자 인권을 위한 비영리 단체가 법인 설립 신청 과정에서 번번이 퇴짜를 맞고 법무부는 한 쪽에 치우쳐진 인권을 다루는 법인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면서 정식 절차조차 진행하지 않았다. 결국 재단 허가여부 6개월 미루다 지난 5월 3일 국내 최초 성소수자 인권재단인 비온뒤무지개재단의 법인 설립을 불허했다.

 

청소년기의 자아 정체성, 흔하게 들어왔던 말이다. 하지만 청소년기의 성 정체성에 대해선 내가 아는 바에 의하면 없다. 아니 없었다. 12년의 기초 교육과정을 지나오면서 '성 정체성'에 대해 얼마나 들어본 적이 있던가를 생각해 보시라. 바꿔말하면 개개인을 위한 시스템으로 작동하는 교육이 절대 아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한 인간이 인생의 제3(생애 주기를 100세로 잡고 네 부분으로 나눈 것)에 들어서야 성 정체성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끼게 되었다는 것을 어찌 생각해야 할까.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모르겠지만 십 대에 그 여자를 만나지 않았다면 나의 인생관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갔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내겐 그 여자 '전혜린'이 있었고 너무 이른 죽음으로 몇 권의 책만을 남기고 떠났기에 박제된 의식이었을 수도 있다.

 

나에겐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일이다. 대상을 누구로 하느냐에 굳이 이거라 할 수 있는 것이라면 혼, , 통이다. 누군가의 책 제목 같지만 그 의미는 비교할 수가 없다. 나는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고, 그 책은 사회 전반적인 것을 향한 것이니 말이다. 내게 '()'은 당신의 정신이다. '()'은 당신만의 것인 무엇이다. 개성일 수도 당신다운 것일 수도, 암튼 그건 당신의 몫이다. '()'은 서로 나눌 수 있는 공감이다.

 

 

인간을 여러 이름으로 나누는 일에 그다지 집중하지 못한 탓도 있으리라. 'LGBT'가 무엇을 지칭하는지도, 정확한 뜻도 모르면서 그럭저럭 살아온 것은 맞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뒤통수를 치는 느낌, 마치 번갯불에 잠시 감전된 듯한 느낌을 만났을 때가 있다면 조금은 알 수 있으려나. 굳이 알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런 순간이 내 관심을 더 끌었던 것은 사실이니까.

 

3년 전 여름이었다. 초저녁무렵이었고 'PO PO'라는 이름의 그 곳에는 고양이가 무섭게 의자에 버티고 앉아 있었다. (고양이를 싫어 하는 것은 아니다) 아주 우연하게 '성 정체성'에 관한 궁금증을 찾아 가면서 나의 평소 습관이 나를 얼마나 안일하게 만들어 왔는가도 깨달았지. 내가 좀 더 활동적이고 폭 넓게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만 있었다면 인생 3기에 와서야 이 궁금증을 갖고 이리도 기웃기웃하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지.

 

지금까지야 성 소수자 인권을 위해 행동하는 단체에 후원하는 것에 머물러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간접적으로 열심히 알아가는 중이다. , 나에게 숨어있을지도 모르는 또 하나의 나를 마주할 기회를 단 한 번도 갖지 못한 채 청년기를 지나왔다는 그 사실에 화가 난다. 자아정체성을 위한 그만큼의 노력이 성 정체성을 위해서도 필요했다. 이런 생각들을 제대로 써보게 된 것은 지난 1월에 미국의 콜로라도에서 일어났던 한 사건이 계기가 되었다.

 

미국 콜로라도 덴버의 빵집에서 일어난 일인데 케이크를 주문한 사람이 빵집 주인에게 자신을 차별했다고 시작된 사건이다. 그가 원했던 케이크 위에 쓸 문구는 "Got hates gays"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자. 종교를 믿건 그렇지 않건 이 문구를 쓸 자유도 있지만, 그 문구를 거부할 자유도 있다. 그것을 '차별'의 의미로 다가선다면 이해할 수가 없지 않은가. 상식적으로 신(GOD)은 선(Good)이다. 그걸 거부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덴버의 한 베이커리는 LGBT 권리 논쟁의 중심에 서 있다. 빌 잭이라는 손님은 스스로가 아주카 베이커리에서 기독교라는 자신의 종교 때문에 차별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잭은 지난 3월 아주카 베이커리에서 성경 모양의 케익 두 개를 주문했다. 여기까지는 주인 마조리 실바에게 문제될 것이 없었다. 하지만 잭은 이 케익에 "신은 동성애자를 증오한다"라는 문구 등의 반 동성애 문구를 넣어달라고 요구했고, 두 남성이 손을 잡고 있는 그림 위에 크게 붉은 X자를 그려 달라고 요구했다. 실바는 KUSA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그의 차별적 행위를 거부했다고 해서, 나에게 오히려 차별이라고 말하는 것은 부당해요."라고 말했다. 결국 실바는 잭이 요구한 메시지를 케익에 새기는 것을 거절했다. "저는 그저 옳은 것을 위해 저항한 것 뿐이에요. 모든 차별과 증오가 사라진다면 세상은 얼마나 나은 곳이 될 지 상상해 보라구요! 저는 옳은 것을 위해서라면 계속해서 저항할 것이고, 저의 경험이 부당함을 마주한 다른 사람에게 자극이 되길 바랍니다. 왜냐하면, 신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니까요!"

 

"GOD LOVES EVERYONE!"

빵집 주인이 그의 주문을 거부한 이유이다. 과연, 케이크 주문을 거부한 것이 차별인가? 한국사회에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이제 미국은

2015년 6월 26일로 세게사의 한 순간을 역사에 남기게 되었다.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은 오는 516일 오후 2~8시 서울역 광장에서 ‘2015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 공동행동’(아이다호 공동행동)을 개최한다. 전국 성소수자, 인권, 시민사회단체와 함께하는 공동행동은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 날(517)을 기념해 성소수자에 대한 폭력과 차별에 경종을 울리고 성소수자 인권 증진의 필요성을 알리는 캠페인과 문화제를 연다.

 

2004년부터 시작된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 날은 세계 보건기구(WHO)가 국제질병분류(ICD)에서 동성애를 삭제한 날(1990517)을 기념하는 뜻에서 매년 517일로 정하고, 현재 전 세계 130여 개국 주요 도시에서 아이다호를 기념한 다양한 캠페인과 액션을 펼치고 있다. 이제라도 당신 안에 숨어 있는 또 다른 내가 있는지 궁금하지 않으신가? 내가 왜 당신과 다른 성정체성을 가지면 안 되는 지를 말이다. 무지개 행동은 오로지 로서 살아가고 싶은 인간 본연의 모습이 아닌가. 나는 인간답게 살아가려는 인간이고 싶다.

 

 

 

 

2014년 이송희일 감독의 <야간비행>

 

 

 

 

2014년 이송희일 감독의 <야간비행> 아빠를 찾아 나서는 기웅.

 

서울대 진학을 목표로 성적 1등급의 우등생 용주와 학교 내 폭력서클의 우두머리가 된 일진짱 기웅이 선택한 방법은 다를 수 있었지만 그들이 바라는 것은 그저 "친구'였습니다. 중학교 시절부터 절친했던 두 친구는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서로 엇갈린 학창시절을 보내게 되지요. 함께 중학교를 다닌 기택이 친구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하자, 기택을 감싸고 여전히 가까이 지내는 용주와 달리 기웅은 이들을 지켜보기만 하죠. 허나 자신의 처지를 바꾸기 위해 선택한 기택의 제보로 용주는 학교에서 졸지에 추락하여 조롱거리가 됩니다.


홀로 아들을 키우며 자신만의 방법으로 힘든 삶을 살아가는 용주의 엄마는 비혼모로 당당합니다. 아들과 동등한 인격체로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기웅은 엄마와는 단절된 채 직장에서 해고되고 복직을 위해 싸우다 감옥에 갔다 와 숨어 살고 있는 아빠를 찾아 다니죠. 기웅의 모습과 다를 수 잇었던 용주의 내면에 쌓인 힘은 가정환경에서 가능했던 것은 아닐지요. 학교에서 공부를 못한다면 성정체성이 다르다는 이유로 따돌림을 당하거나 강제 전학을 시킵니다. 그러나 공부를 잘 한다면 상관없는 일이 되기도 하죠. 학교는 학생이 아니라 '서울대'가 중요하거든요. 그래서 용주의 성정체성의 다름을 무시해 버리죠. 아주 쉽게.

 

"그런 거 다 상관없어. 서울대만 가!"

 

2014년 이송희일 감독의 <야간비행> 학교 벽에 자신을 남기고 떠난 용주.

 

학교폭력이 왜 발생하게 되는 지, 아이들은 왜 서로를 깔아 뭉개며 싸워야 하는 지 이 영화를 보는 동안에 문제를 의식하게 됩니다.

친구가 성적보다 중요하냐며 다그치는 학교 선생님까지 세상의 비틀어진 잣대와 어른들의 왜곡된 시선을 십대들은 자신들의 생활에서 몸으로 은밀하게 제보를 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들의 몸짓을 사회는 알아차릴 수가 없는 거죠. 준비가 안 된 사회, 개인의 삶이 자유의지로 발휘되기 어려운 한국사회에서는 너무도 당연한 현실인 것일까요. 부디 많은 어른들이 이 영화를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 영화가 19금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그들의 문제가 바로 어른들이 만들어낸 원인에 의해 나타나는 어두운 현상들이기 때문일 겁니다. 굳이 들춰내고 싶지 않았던 것이겠죠. 기성세대의 은폐하고 싶은 욕구를 대변하는 것이라 여겨지더군요. 그들의 이야기를 언급하지 않고 교묘하게 금지하는 나라, 그래서 더욱 어둡기만 합니다. 이런 세상에서 제보자들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회를 향해 말을 겁니다. 그들의 말에, 행동에 귀 기울이고 어울릴 수 있는 이 사회의 성찰과 격려, 응원까지 너무도 간절합니다. 한국사회의 문제점들을 그들 스스로의 몸짓으로 제보하고 있습니다.

 

 

Posted by 보랏빛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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