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42024  이전 다음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나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영화를 세상 밖으로'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9.04.28 자신을 드러내는 일이 용기로 불리는 세상에서...
  2. 2019.04.08 가라앉은 자와 남아있는 자
  3. 2016.11.06 당신의 우주는 무사하신가요?

 

 

영화 콜레트2018년 개봉한 영국, 미국의 전기 영화로 한국에서는 20193월 개봉작이다. 워시 웨스트모얼랜드 감독이 프랑스의 소설가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의 생애를 다룬 작품이다.

 

영화는 시대 배경에서 오는 큰 차이를 빼면 현대 사회에서 여전히 콜레트이기를 원하는 사람 이야기로 다가온다. 어떤 형태이건 스스로를 드러내는 일은 언제나 쉽지 않은 일이고 여전히 용기라는 말로 옷을 입힌다.

 

남편 뒤에 숨지 않아도 되는 시대라 해도 남편이라는 존재가 필요한 시대로 생각하는 게 더 자연스러운 일로 여기는 사회이니까. 인플루언서가 되는 일이 사회적으로 성공이라는 의미로 포장되어 개인에게 다가오는 자존감과 충돌하기도 한다.

 

개인보다는 집단이 우선이던 시대는 과거 세기로 밀려나갔지만 여전히 과거는 지독한 끈으로 이어져 온다. 한 개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평생이라면 결국, 죽음이 임박할 때 마주할 순간에야 오롯이 일 수 있다.

 

 

 

영화에서 콜레트는 자신이 꿈꾸던 결혼 생활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눈다.

 

어떤 역할을 연기한다는 기분이 든 적은 없나요?”
무슨 소리냐?”
아내나 엄마의 역할을 잠시 맡고 있는 것 같은...”
아내로서는 그럴 때가 있지만 엄마로서는 없어.”

 

결혼 생활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어머니의 말에서 결혼의 의미는 어떻게 개인에게 영향력을 발휘해 왔는지. 내 어머니도 모두가 따른 그 길을 걸으며 전해준 여성의 역할. 과연 내 의지로 결혼을 선택하긴 했던가.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은 행복하다. 그리고 그 사랑의 힘으로 모여진 작은 공동체는 세계의 야만과 탐욕에서 비껴 나 함께 행복할 수 있는 일을 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위대한 진리의 시작이 나에게서 시작될 수 있다는 진실을 외면하고 있기에 끊임없는 불안과 자기기만, 불신의 늪에서 분노와 절망으로 허덕거리는 것은 아닐지.

 

 

스스로를 파괴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자기'임을 인식할 수만 있다면 내 곁의 그대를 충분히 사랑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세상을 변화시켜 나가는 그 한 걸음을 떼는 것이 아니겠나. ''를 드러내는 일이 자연스러운 일이기를...

 

러시아의 문호 체르니셰프스끼는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결혼을 이렇게 말한다.

 

굳이 말한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분명 그것은 위대한 비밀이며 다만,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라고. 그리고 거기에는 어떤 기술도 필요 없으며 오로지 순수한 마음과 정신, 그리고 인간에 대한 존엄성과 자유에 대한 의식만 있으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그 이상의 비밀은 없다."

 

콜레트가 선택한 것은 현대에서는 너무도 잘 알려진 말이지만, 에리히 프롬의 저서『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찾아볼  있다. 자유로울  없는 시대에서 자유롭기 위해 견디기 힘든 고독과 통렬한 책임을 받아들인 것일 뿐이라고.  

 

 

 


 

Posted by 보랏빛꿈
|

 

"2014416일 이후에 남겨진 우리들의 이야기" 로 다시 가슴 밑바닥에 밀어둔 분노와 슬픔을 만나게 하는 영화 <생일>은 이종언 감독의 작품입니다.

 

지난 세월이 슬그머니 밀려난 것만 같은 기억을 되감기하는 일은 고통스럽습니다. 그 기억이란 대개는 개인의 일이건 사회에 관한 일이건 억울함과 분노, 설움과 원망까지 꺼내야 하기 때문이죠. 희망을 품는 일마저 포기해버렸을 때 절망은 삶은 전락합니다.

 

4.16기억저장소

 

5년 전 그날. 한 가족에게 닥친 불행은 오롯이 그들만의 상처로 남을 수가 없습니다. 영화 <생일>에서 아무도 믿을 수 없었던 수호 엄마는 홀로 아들을 품에 담아 둡니다. 수호의 방을 떠나기 전 그대로 둔 채 엄마는 일상을 살아갑니다.

 

세월호가 스르르 심해로 가라앉는 것을 바라보고만 있던 남아있는 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어 보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아직도 생생하게 가슴 도려내는 통증의 4월입니다. 단지 내가 그 통증의 당사자가 아니라는 이유가 더 불편한 사람도 있죠.

 

아무 것도 할 수 없던 무력감이 어느새 삶이 주는 무거운 공기에 잠식당하기도 합니다. 진실은 어쩌면 역사에 물음표를 던진 채 흘러가는 걸지 모르죠. 다만 진실은 결코 깊은 바다에 갇힌 채 사라질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굳이 또래에 아들 하나가 있다는 이유를 들어봅니다.

 

세월호 참사 5년을 맞는 4월이 시작하는 첫 날부터 추모 준비를 합니다. 개인이 할 수 있는 무엇이든 행동하지 않으면 남은 시간이 너무 힘들기 때문이라면 이기적인 이유가 될지도 모릅니다. 현대 사회에서도 국가가 저지르는 무언의 폭력은 야만스럽습니다.

 

사회 어느 분야든 제대로 작동하기 어려운 것은 탐욕이 넘치는 자본주의가 추구하는 가치에 매몰된 것 때문은 아닐지. 역사 앞에서 당당할 수 없는 한국사회는 예정된 길을 걸어왔던 것입니다. 해방 후 74년 동안 한국사회가 뒤쫓은 것은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망령입니다.

 

실용주의교육을 내세우는 미국식 교육에 앞장서고 유용한 것이 진리인양 이끌어 온 교육 과정에 당연한 결과는 아닐까 싶습니다. 모국어보다는 영어 몰입에 빠진 한국사회는 길을 잃었습니다. 효율성을 우선으로 진정 지켜가야 할 가치는 외면하고 있습니다.

 

국가가 시급하게 할 수 없는 일들을 마냥 기다리다 지쳐버려 포기하는 것은 오히려 쉬워 보입니다. 더디다 해도 기성세대의 적극적인 의지가 젊은 세대에게 길을 묻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 힘을 모아야 하겠지요. 타인의 변화를 바라기 보다는 나부터 변화하기가 더 수월하니까요.

 

     

[5주기]190413_기억문화제 홍보영상  

 

올바른 역사관이 형성되지 않았던 한국사회에서 민족을 팔아 제 배를 불린 자들이 기득권자가 되어 지금까지 강자로 군림하고 있도록 지난 사실을 망각한 것, 바로 5년 전 416일 그 바다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 바다를 앞에 둔 팽목항 바람이 건넨 슬픈 아우성을 기억합니다.

 

현실의 불안과 불확실한 미래에서 오는 두려움만 커지나 봅니다. 그러나 오지 않은 미래에 공포를 만드는 것보다 현재를 알고 투쟁하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 아닐지요. 역사의 저편으로 가라앉은 자들을 구조해야 합니다. 304명이 왜 죽어야 했는지를요.

 

진실을 찾아내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지 과거 인류사는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에게 교훈을 줍니다. 다시 반복되어서는 안 될 세계 2차 대전에 저질러진 야만의 상징 홀로코스트. 아우슈비츠의 생존자인 프리모 레비는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의 결론 부분에서 말합니다.

 

"나치 라거(수용소)의 생존자인 우리가 전하는 경험은 신세대들에게는 상관없는 일이고, 해가 갈수록 점점 더 상관없어 진다. 50년대와 60년대의 젊은이들에게 그것은 아버지들의 일이었지만 모든 곳에서 일어날 수 있다. ‘유용한’ 폭력이든 ‘쓸데없는’ 폭력이든, 폭력은 우리 눈앞에 있다."

 

프리모 레비는 아우슈비츠의 자취는 지워지지 않는다. 한 인간의 삶 속에서, 세계의 역사 속에서라며 이 책을 마무리 합니다. 그는 이 책을 유작으로 남긴 채 자살을 했습니다. 살아남은 자는 이렇게 통탄의 삶을 마무리하고 맙니다.

 

우리의 감각을 벼리고 있어야 하며 예언자들과 마법사들, 또한 타당한 이유들의 밑받침이 없는 감언이설을 믿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요. 1960년 이승만의 독재정권이 학생들 중심의 4.19혁명으로 무너졌지요.

 

사람들이 민주화의 봄이라는 희망에 부풀어 있을 때, 박정희는 군사 쿠데타로 희망을 짓밟아 버렸습니다. 한국전쟁이란 민족상잔을 통해 미국의 묵인과 동조로 재생하여 친일 행위를 일삼고, 국가를 외면해 온 그들이 정권을 잡을 수 있었던 비극적인 시간들이 가져온 한국사회의 현실은 참담합니다.

 

하지만 이 두 사건으로 얻은 역사의 교훈은 아무리 지독한 독재정권도 단합된 민중의 힘에 의해서 무너질 수 있으며, 그러나 철저하지 못한 민주혁명은 또다시 총칼을 가진 지배계급에 의해서 파괴된다는 것이겠지요.

 

이 커다란 역사의 교훈을 기억하지 못한 한국은 현재 군화발로 짓밟아 민주주의를 압살시킨 자의 뒤를 잇는 박근혜 정부를 지나오면서 한국 사회가 배운 것은 그나마 기억하기로 가능한 것은 아닐지 생각합니다.

 

세월호 참사 그 후, 시신조차 건지지 못한 유가족을 포함해 304명을 보내고 남아있는 가족들의 일상이 영화에서 펼쳐집니다. 생일날이면 텅 빈 방에 새 옷을 걸어주는 엄마의 마음, 돌아올 수 없는 친구들을 가슴에 담아 통곡해야 하는 사람들.

 

 

 

영화 <생일>은 별다른 설명을 붙이지 않습니다. 그저 남은 자들이 할 수 있는 서로의 위로와 아이들 생일을 챙기는 그들을 무심히 바라볼 수 없게 할 뿐입니다. 서늘한 그림자를 곁에 두고 살아가는 유가족의 활동도 세상은 관심두지 않습니다.

 

결코 과거에 묻혀버린 놀라운 사건일 수 없지요. 세월호 참사 5주기를 맞아 헤살 놓던 바다는 눈 뜬 새벽부터 그 날 그 바다처럼 하늘도 같이 웁니다. 헤살 놓던 세월에 울음 멈추고 안과 밖 어둠에서 울부짖는 심해를 뚫는 304명의 넋을 오늘도 추모하며 기억합니다.

Posted by 보랏빛꿈
|

 

 

아주 은밀한 순간,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나의 꿈 이야기가 있긴 한 건가요. 꿈을 이룰 수 없는 나라에서 그 모든 원인은 항상 나에게 해당하는 것으로 여기며 살았던 것은 아니었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아닙니다. 꿈을 잊어버린 이유는 이 영화에서 만날 수 있었던 것처럼 두려움이었습니다. 누군가에겐 갖춰진 것들이 내게는 없다는 이유일 수도 있고 미리부터 포기해버린 나에게도 있는 거였지요. 어쩌면 내 꿈을 포기하게 한 것은 아예 없었던 건지도 모릅니다.

 

아직도 꿈은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라 생각을 합니다. 다만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일 수 있는가에 달린 문제임을 알아차립니다. 이제는. 사회구조, 시스템에서 빠져나올 용기만 있다면 사회에서 주입한 허위 욕망을 품지 않는다면 내 꿈은 이루어질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것이지요. 나의 꿈이 사회에서 인정받아야만 한다는 강박과. 그 욕망에 시달리며 지낸 청춘의 시간이 널브러져 있으니까요. 꿈은 이루는 것이 아니라 지금 가슴에 품은 마음으로 우적우적 걸어가는 순간인지도요.

 

 

세 개의 달이 보이던 날, 세 우주가 모이고 각자의 우주를 품고 이 영화는 끝납니다. 70번쯤 반복될 내가 태어난 그 날, 내 우주는 또 누군가에게 하늘에 있는 달의 얼굴로 전해질 수 있을까요. 내가 이루려 하던 꿈이 아직 조각을 다 맞추지 못하고 이 땅을 떠날 때 누군가에게로 그 꿈은 이어지기도 할 겁니다. 꿈은 나와 아직 만나지 못한 누군가를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할 것이니까요. 나의 과거가 현재의 나를 있게 한 것이지만 이십 대의 불안함에서 도망칠 수 있는 사람이 많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불안은 정신적인 것이고 그 정신인 자기 자신으로부터 도망칠 수는 없을 테니까요. 자기를 사랑한다면 불안도 사랑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그런데도 그 불안에서 도망치려 하는 내가 있기에 사랑을 무작정 따르기도 힘들다는 거겠지요. 삶의 의미는 생존하기 위한 소유를 바탕으로 생겨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생존의 위기에서 삶의 의미 따위는 별로 관심이 가지 않으니까요. 먹고살기도 힘든데 의미가 있건 없건 일을 해야 돈을 벌고 그래야 생존이 가능할 수 있다면 삶의 의미 따위가 무엇이 문제일까 싶은 거지요.

 

생존에 위협을 느낄 때 감정은 불안이 아니라 공포일 겁니다. 공포 앞에서 삶은 본능적으로 움직이게 되겠지요. 우선 살아야 하니까요. 그렇기에 생존에 문제가 없을 때 오히려 불안에 시달리고 벗어나기 위한 움직임을 하기도 합니다. 결국, 삶의 의미는 불안과 함께 찾아드는 삶의 질과 연결되는 문제였습니다. 늘 반복되는 것 같은 일상과 사람들과의 마주침도 내 안에 남아있는 가슴 뛰게 하는 무언가가 없다면 그저 지나치는 시간의 연장일 뿐입니다. 결국, 생존하기 위해 평생을 보내는 경우에 나의 우주는 화석이 되어 빛을 낼 수 없다는 것이겠지요.

 

 

영화에서처럼 혼자 남을 부모가 아픈 상황에 내 꿈을 좇아 그의 곁을 지키지 못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요. 가족과 관계있는 일들에서 자유롭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가만 들여다보면 그 상황이 나를 잡아두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에 내가 머무는 것을 택했다는 걸 기억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가족이 나를 대신해서 살아주진 않기 때문이었죠. 나의 꿈을 향해 나아갈 때는 뜻밖의 걸림돌들이 있게 마련이었습니다. 결코, 순탄하게 자신이 계획한 미래는 오지 않는다는 것이기도 하고요. 다만 내가 아주 먼 미래를 확신할 수 없음에도 지금 너무 멀리 바라보고 있나 싶을 때가 많습니다.

 

당신의 우주는 아직 무사하신가요?

 

Posted by 보랏빛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