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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사회에서 경쟁하지 않으면 낙오된다는 생각은 어디에서 시작된 것일까요? 세상을 살아가노라면 경쟁은 너무나 당연한 거 아니냐? 그렇다면 승자와 패자라는 경계는 무엇일까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경계를 만드는 기준은 또 무엇인지 생각해 봅니다. 사회적으로 학습된 ‘경쟁’을 하지 않은 자들이 시대를 살아가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할지 모릅니다.

 

 ‘정신승리 법’은 루쉰의 『아 Q 정전』에서 문학적으로 ‘패자’의 의미로 또는 ‘어리석은 자’의 자기합리화로 더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이 지나면서 또 다른 가능성이 있지는 않았을까 싶네요. 옳지 않은 군중 심리에서 벗어나기 위한 정신승리법.

 

 파리들은 꿀에 앉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아마도 파리의 무리 생활에서 자연스레 얻어낸 경험치겠지요. 잘못된 행동인 줄 알면서 다른 파리들이 마구 몰려들면 따라 하게 됩니다.

 

 군중심리는 인간만이 아니라 동물들에게 비슷하게 적용되어온 생존과 관련된 일이지 싶더군요. 죽을 줄 뻔히 알면서도 꿀로 달려든 이야기에서 나를 끌어당기는 꿀은 살아가면서 어떤 것이었을까 생각하는 시간입니다.

 

윙윙, 윙윙 ~.

천장에 파리들이 잔뜩. 이야옹 ~

언제 들어왔는지 고양이 한 마리가 혀를 날름날름. 꿀단지를 탐내고 있습니다. 쨍그랑!

“이 녀석! 또 꿀단지를 건드렸구나!”

이야옹~

“헤헤, 바보 같은 고양이 녀석, 매일 혼나면서 또 꿀을 탐내다니!”

“글쎄 말이야. 혼날 걸 뻔히 알면서 매번 왜 저러나 몰라.”

파리들이 윙윙거립니다.

“킁킁, 그런데 꿀 냄새가 너무 좋다.”

“그래, 냄새만큼이나 맛도 기막히게 좋을 거야.”

밖에서 이 소리를 듣고 파리 떼가 붕붕, 날아들었습니다.

“야아, 꿀이다, 꿀!”

붕붕, 윙윙 ~ 파리 떼가 꿀 위로 정신없이 날아갑니다.

“안 돼! 꿀은 너무 끈적끈적해.”

“잘못하면 딱 달라붙어서 꼼짝도 못 할 거야.”

파리들은 꿀에 앉지도 못하고 그저 붕붕, 윙윙 ~

“아, 하지만 너무너무 맛있겠어.”

“딱 한 입만 쪽쪽 빨아먹고 싶어.”

어린 파리들은 자기도 모르게 점점 가까이 날아갑니다.

“에잇, 더 이상 못 참겠어!”

성미 급한 파리 한 마리가 마침내 꿀에 살짝 내려앉았습니다.

냠냠 쩝쩝.

“아, 너무너무 달고 맛있다!”

붕붕붕, 와아아 ~~ 파리 떼가 미친 듯이 꿀 위로 몰려들었습니다.

“어, 잠깐! 다리가 꿀에 붙어 버렸어!”

“어, 난 날개가 붙었어! 떨어지지 않아!”

“얘들아, 오지 마! 오지 마! 잘못하면 다 죽어!”

꿀에 붙은 파리들이 소리쳤습니다.

“거짓말하지 마! 너희들끼리 꿀은 다 먹으려는 거지?”

다른 파리들도 모두 꿀 위로 새까맣게 달라붙었습니다.

“으악! 큰일이다!”

어느새 파리들은 모두 꿀범벅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어리석은 파리들, 죽을 줄 뻔히 알면서도 꿀로 달려들다니, 쯧쯧.”

<꿀과 파리> 글. 김성헌

 

 

 승자를 위해 패자를 억지 부려 만들어야 하는 세상이 과연 올바른 것인가요? 그럼 승자에 속하기 위한 구분은 또 무엇인가요. 그 구분은 누가 만들었던가요? 끊임없는 꼬리에 꼬리를 물어 물음표를 던져봅니다.

 

 그것은 인류가 문명을 이루며 살아온 지나온 역사 속에서 보이기도 합니다. 그 역사를 통해 성찰이 필요한 데 그것은 늘 뒤로 밀려나곤 합니다. 아마도 군중으로 살아가기가 더 쉬웠기 때문일지도 모르지요. 그래야만 살아남는 자가 될 수 있었을 테니까요.

 

 엘리아스 카네티는 『군중과 권력』에서 인류가 직면해 있는 위기 상황을 추적하여 ‘살아남는 자’를 이야기합니다. 그는 ‘무리’가 군중의 가장 오래된 형태이며 통상적인 사회학적 개념들과는 전혀 다른 개념의 단위임을 전제하죠.

 

 네 가지로 나눈 그 무리가 살아남은 자로 인류라는 명맥을 유지한 것은 사실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카네티는 현대 군중의 기본적 속성 중의 하나인 성장 욕구가 오히려 성장 능력이 없는 무리의 상태부터 나타났다고 보고 있죠. 단 한 사람의 개인이 인류의 선량한 부분을 쉽사리 파괴할 수 있다는 역사적 사실을 기억했으면 하는 겁니다.

 

 헌정 역사상 처음 대통령 탄핵으로 새로운 정부가 탄생한지 1년 6개월이 지나는 시간. 지난 정권에서 권력을 사유화한 부역자들의 일에 과연 내가 무관하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요. 나는 살아남는 자로서 고개를 들고 하늘 보기가 편안하지 않습니다.

 

 영화 같은 일이 자주 벌어지는 한국 사회를 직시합니다. 이 나라는 도덕적 해이가 일상처럼 권력남용을 현실이라는 말로 대신해 왔나 봅니다. 과거를 교훈으로 삼아 현재 밝혀지고 있는 사법농단은 본보기의 역사로 기록되길 바랍니다.

 

 정의의 저울을 내세워 민중을 기만한 사법부는 부패의 끝판 왕이었는지 모릅니다. 그나마 대법원이라는 막연한 정의 실현 기관이 제 역할을 하도록 지켜보는 일을 군중의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개인적인 허영에 그칠 뿐일지라도. 

 

 매일 아침 뉴스를 들으며 ‘역사적 존재’로 살아있는 자임을 확인합니다. 그들이 나의 안위를 위해 유혹합니다. 이 거대한 자본과 달콤한 꿀로 소비와 안락을 광고합니다. 군중 속으로 떠밀려 가는 나를 내 자리에서 지켜내는 일이 일상에서 반복됩니다.

 

 카네티는 현대 군중의 기본적 속성 중의 하나인 성장 욕구가 오히려 성장 능력이 없는 무리의 상태부터 나타났다고 보고 있죠. 성장 욕구가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는 현실. 그 성장이 과연 나의 성장인지 그들만의 성장인지... 숫자로 기록되는 성장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는 겨울, 긴 밤을 보냅니다. 

 

Posted by 보랏빛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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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리대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과연 현대 사회에서 무리가 없는 순조로운 이치나 도리가 가능하단 말인가요? 먹고 살기 위해 일을 하고 있는 내게 정당한 대가가 주어지는 현실이라면요? 그래서 하루하루가 충족되는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라면 우리는 만족할까요? 강자가 약자를 괴롭히지 않는 사회,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가 가능할까요?

 

인도 설화에서 그 물음에 답을 찾아보려 합니다.

 

옛날 인도의 어느 작은 마을에 아주 크고 사나운 뱀이 있었습니다.

뱀은 깊은 산 속 바위 동굴에서 살면서 틈만 나면 마을로 내려와 돼지며 닭들을 잡아먹곤 했습니다.

 

“으악! 배, 뱀이다! 사람 살려!”

“음, 모두들 날 무서워하는군. 이거 참 재미있는 걸?”

 

사람들이 벌벌 떨며 도망치는 게 재미있어 뱀은 점점 더 자주 마을에 내려왔습니다.

“으하하! 이거 정말 기분 좋은걸? 꼭 왕이 된 것 같단 말이야!”

 

뱀은 배가 부른데도 재미삼아 가축들을 마구 해쳤습니다. 어느 날 소문을 듣고 멀리서 늙은 수도승이 찾아왔습니다. 수도승은 곧장 뱀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 소리쳤습니다.

 

“네 이놈!”

“아니, 날 보고도 도망치지 않다니!”

 

뱀은 입을 크게 벌리고 수도승을 칭칭 감았습니다.

 

“수리수리수리......얍!”

 

수도승은 주문을 외더니 손으로 뱀의 머리를 호되게 후려쳤습니다.

 

“끄악!”

 

뱀은 몸을 비비 틀며 괴로워했습니다.

 

“냉큼 돌아가지 못할까! 동굴 속에서 네가 한 짓을 뉘우치란 말이다!”

 

꿈틀꿈틀, 꾸불꾸불. 뱀은 부리나케 산으로 도망쳤습니다. 그 날부터 뱀은 동굴 속에서 틀어박혀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수도승의 말대로 자기 잘못을 곰곰이 돌이켜보니, 그 동안 저지른 죄가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배도 고팠습니다. 하지만 뱀은 개구리를 잡으려다가도 멈칫했습니다.

 

'안 돼, 안 돼! 더 이상 나쁜 짓을 하면 안 돼!’

 

하루, 이틀, 사흘.......뱀은 이상하게 변해 갔습니다. 몸이 점점 말라비틀어지더니 나중엔 지렁이처럼 작아졌습니다.

 

“하하, 저 뱀 좀 봐! 지렁이인지 뱀인지 모르겠네!”

 

그 때부터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몰려와 뱀을 놀리기 시작했습니다.

 

“제발 때리지 말아 주세요, 네?”

 

뱀은 정말 지렁이처럼 꼬물거리며 울었습니다. 참다못한 뱀은 엉엉 울면서 수도승을 찾아갔습니다.

 

“엉엉, 사람들이 막 때리고 놀려요. 예전엔 저를 무서워했는데......, 이제 어떡하죠?”

“이 어리석은 녀석아! 네가 한 짓을 반성하라고 했지, 내가 언제 지렁이처럼 변하라고 했느냐?”

 

수도승이 호통을 치는 동안에도 뱀은 여전히 엉엉 울고만 있었습니다.

 

지렁이가 된 뱀/원작: 인도 설화 글: 김진락

 

 

 아주 크고 사나운 뱀은 깊은 산 속 바위 동굴에서 살면서 틈만 나면 마을로 내려와 돼지며 닭들을 잡아먹곤 했죠. 마을 사람들은 뱀을 무서워했고 다들 벌벌 떨며 도망치기 바쁩니다. 그런 모습에 재미를 느낀 뱀은 배가 부른데도 재미삼아 가축들을 마구 해쳤어요.

 

 어째 이 뱀은 배를 충분히 채우고도 더 채우고 싶어 하는 이미 존재만으로도 권력을 쥔 이 사회 가진 자들을 닮았습니다. 그들을 막을 수 있는 수도승은 중심을 잡아줄 국가를 운영하는 입법, 사법, 행정부를 떠올리게 합니다.

 

 최근에 주목하고 있는 뉴스가 생각납니다. 사립 유치원 비리 근절을 위해 추진 중인 ‘박용진 3법’에 반대하는 대규모 집회. 유치원 3법이 통과되면 집단 폐원하겠다고 겁박을 하는군요.

 

 수도승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스스로 지렁이처럼 변한 뱀과 다를 것이 없어 보이는 사립 유치원 관계자들의 행동은 아이들이 놀려먹기에 딱 좋은 경우 같아서 말입니다. 교육이 공공성을 잃고 사익만을 추구하는 일을 방치해온 결과이겠지요.

 

 사립유치원 사태를 바라보는 학부모의 절박함을 이용하는 한유총의 행태는 가히 폭력적입니다. 불편을 감수하고라도 전환을 맞을 기회라고 봅니다. 비리 근절을 위해 추진 중인 ‘유치원 3법’을 지지하고 함께 동참할 수 있으면 합니다.

 

 이참에 국가는 유치원 공공성 확보를 위해 국가가 주도하는 국공립 유치원을 늘려가는 일이 병행되어야 하겠지요. 육아의 불안이 저출산을 부르는 주요 원인 중 하나란 것을 제대로 인지했으면 합니다. 아이들의 돌봄에 국가가 적극 나서야 합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라고요? 그게 순리같은데 한국사회에서는 갈수록 파편화되는 것 같습니다. 사회 제도 탓으로 돌릴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답니다. 하지만 과연 나는 나보다 공동체를 우선으로 여기고 있나... 무거운 밤입니다.

 

 

Posted by 보랏빛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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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에서 경제 성장으로 본다면 앞쪽에서 세어 나가기가 빠른 나라이니 못 사는 나라는 아닐 겁니다. 세계의 절반이 굶어 죽어가는 현실에서 한국사회는 절대빈곤 국가는 아니니까요. 오히려 보이는 것으로만 본다면 24시간 반짝이는 불빛으로 넘치는 풍족함이 있습니다. 물론 큰 도시 중심의 이야기입니다만 여전히 미래세대의 자원을 마음껏 긁어대다 흥청거리는 것은 성장의 또 다른 모습이니까요.

 

 국가가 성장만을 향해 달려갈 때 그에 미치지 못하는 다수의 국민들은 상대적 박탈감에 늘 기웃거리게 됩니다. 세계는 4차 혁명의 시대를 향해 열려있고 한국은 IT 환경으로 보면 다른 나라 부럽지 않습니다. 공공의 영역에 와이파이는 팍팍 터지고 카페만 가도 공유의 인터넷 환경은 끝내 줍니다. 그러면 또 뭐합니까. 늘 기웃거리게 되는 타인의 넘치는 부가 나의 것이 아님에 돈타령을 하는 거지요. 그래, 돈이 있어야 돼.  보자고요.

 

 

 아주 오랜 옛날, 신과 인간이 함께 살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는 모든 게 좋았습니다.

걱정도, 불안도, 눈물도 없었고, 사람들은 모두 모두 행복하기만 했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크고 작은 햇빛구슬을 하나씩 갖고 있었습니다.

이 햇빛구슬 덕분에 인간은 신의 세상으로 마음껏 드나들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호기심도 많고 장난도 너무 심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신들의 왕인 브라마의 화려한 정원을 쑥대밭으로 만들기도 했습니다.


“신들의 세상에서 함부로 돌아다니지 마라!”


여러 신들이 타일렀지만 사람들은 전혀 귀담아듣지 않았습니다. 신들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리 타일러도 말을 듣지 않으니 벌을 내려야겠다!”

“그래, 신들의 땅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게 해야겠어!”


신들은 마침내 인간들에게서 햇빛구슬을 빼앗기로 결정했습니다.

사람들이 모두 잠든 밤. 신들은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햇빛구슬을 모조리 거둬 갔습니다. 신들은 햇빛구슬을 가득 짊어지고 위대한 신 브라마를 찾아갔습니다.


“브라마 님, 햇빛구슬을 거둬 왔습니다. 이제 인간들은 신의 세상으로 들어올 수 없습니다.”

“음, 하지만 언젠가는 햇빛구슬을 되찾을 것이다. 인간들은 영리하니까.” 


브라마가 말했습니다.


“그럼 햇빛구슬을 땅 속 깊은 곳에 숨기면 어떨까요?” 


땅의 신이 말했습니다.


“음, 하지만 인간들은 호기심이 많아서 땅 속을 다 파헤쳐 볼 텐데?”


“그럼 바다에 빠뜨리면 어떨까요? 설마 바다 밑까지 뒤지진 않겠죠?” 


바다의 신이 말했습니다.


“모를 일이야. 언젠가는 바다 밑바닥에 있는 것들을 죄다 낚아 올릴지도 몰라.”

“숨길 만한 곳이 딱 한 군데 있지.” 


브라마가 말했습니다.


“어디죠? 어딥니까?”

“사람들의 마음속에 숨기는 거야. 거기라면 절대 찾지 못할걸?”


그러자 신들이 무릎을 치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햇빛구슬이 없어졌다!”


다음 날 아침, 인간 세상에서는 난리가 났습니다.


“큰일이다, 이제 신들의 세상에 들어갈 수 없게 됐어!”


웅성웅성, 시끌벅적, 여기저기서 한숨 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아! 햇빛구슬은 어디에 있을까?”


사람들은 햇빛구슬을 찾아 온 세상을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땅을 파 보자, 땅을!”


끝도 없는 깊은 땅 속을 개미처럼 파헤치기도 하고, 북극이며 남극이며 꽁꽁 얼어붙은 얼음산도 샅샅이 뒤졌습니다.


“저 하늘 끝까지 가 볼까?”


우주선을 타고 다른 별들을 찾아가 보기도 했습니다. 아직도 인간들은 햇빛구슬을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신들은 하늘 위에서 내려다보며 혀를 찹니다.

“쯧쯧,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줄도 모르고······.”


<햇빛구슬은 어디에?> 원작. 인도 힌두 교 설화 / 글. 김진락

 

 

 연애는 할 수 있지만 결혼은 현실이다. 그래서 결혼하려면 필요한 조건들이 갖춰져야 한다. 대부분 청춘들이 공감하는 사실입니다. 돈이 없고 직업이 없다면 결혼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책임과 관련된 것이겠지요. 그 책임과 사랑하는 사람을 현실에서 지켜내고 싶은 것은 너무도 당연합니다. 다만 그 현실이 누구의 기준에 부합하는 조건인지는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사랑만으로 결혼하는 것은 무책임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조건 지어진 결혼 또한 사회에서 만든 허상일 수 있습니다. 결혼이 도구로 전락한 현실에서 진정한 사랑은 우선 조건이 될 수 없나 봅니다. 햇빛구슬을 가지고 계시지요? 그대 마음 안에 가득한 사랑의 빛을 발견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대와 나, 둘이면 이 세계는 충분할 수 있습니다. 살아가는데 많은 것이 필요 없는 세상이면 싶습니다.

 

 서로 사랑하고 웃으며 행복한 순간이 많아졌으면 합니다. 화려하게 치장한 웨딩홀이 아니어도 그대가 좋아하는 프리지어 꽃 한 다발로 서약하는 결혼이 넘치는 세상이 되었으면 합니다. 내 마음 안에 깃들어 있는 햇빛구슬은 누구도 앗아갈 수 없는 이 세계의 희망이기도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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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랏빛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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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의 공정성은 두말하면 잔소리입니다. 민주주의의 가치가 법에 의해 지켜지는 거니까요. 삼권 분립의 국가 체제는 권력의 독립성을 보장하고 권력의 상호 조화와 균형을 위함입니다. 부자든 가난뱅이든 법은 권력이 있건 없건 사회의 지위가 있건 그렇지 않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똑같이 적용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가능한 일일까요? 정의의 저울이 넘치는 악의로 기울어버린 현실, 공익이 사익으로 변신술을 부리는 여기.

 

 판사의 편견과 권위주의로 내려진 판결 이야기를 중동 설화에서 찾아봅니다.

 

쓱쓱 싹싹! 알리는 빗자루와 함께 아침을 시작합니다.

가난한 농사꾼이지만 누구보다 밝은 미소를 가진 알리. 오늘은 어떤 즐거운 일이 생길까요?


“앗, 이게 뭐야!”

‘아니? 심술쟁이 압둘이 언제 와 있었지?’


돈 많고 멋 부리기 좋아하는 압둘, 성질 고약한 압둘의 새 옷에 흙이 묻었으니 정말 큰일입니다.


“이봐. 대체 눈을 어디다 두고 다니는 거야? 이 옷이 얼마 짜린지 알아? 어서 물어 내, 물어내란 말이야!”

“왜, 왜 이러세요? 옆에 계신지 몰랐어요. 일부러 그런 게 아니잖아요!”

철썩!

“이 녀석, 누구 앞에서 말대꾸야? 가난뱅이 주제에!”


난데없이 따귀를 맞은 알리는 분하고 억울했지만 여기서 싸울 수는 없었습니다.

어느새 압둘의 하인들까지 몰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좋아요, 판사한테 가요. 가서 누가 잘못했는지 물어봐요!”

“하하, 재판을 하자 이 말인가? 까짓것 좋다. 가자!”


압둘과 하인들은 가소롭다는 듯이 웃었습니다.


“집 앞을 쓸고 있는데 저 사람이 한가운데로 지나갔습니다. 흙먼지 조금 묻었다고 다짜고짜 제 따귀를 때리더군요.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 있습니까?”


판사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보잘것없는 가난뱅이 주제에 그깟 일로 여기까지 오다니. 정말 귀찮아 죽겠군. 옳지, 아무래도 저 녀석은 배가 고픈 게 분명해. 먹을 걸 줘서 보내 버리자.’


하지만 알리는 판사의 생각을 알 턱이 없었습니다.


“판결을 내리겠소! 따귀를 때린 건 분명 잘못된 일이니 피고는 그 대가로 따귀 맞은 사람에게 쌀 한 대접을 주시오!”


판사의 말에 부자와 구경꾼들이 깔깔 웃어 댔습니다. 알리는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판사님! 제가 거지처럼 보이십니까? 제가 쌀 한 대접 때문에 이러는 줄 아십니까? 그럼 쌀 한 대접만 주면 누구든 따귀를 때릴 수 있단 말씀이십니까?”


“이놈! 여기가 어딘 줄 알고 큰 소리야? 따귀 한 대 맞은 게 뭐 그리 대수라고? 쌀 한 대접이면 충분히 보상받고도 남지 않느냐!”

 

 

 

철썩! 알 리가 난데없이 판사의 따귀를 후려쳤습니다.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라 모두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네, 네 이놈! 감히 내 따귀를------.”


판사가 부들부들 떨면서 소리쳤습니다. 그러자 알리가 태연하게 말했습니다.


“너무 억울해하지 마십시오. 판사님도 저한테 맞았으니 제가 쌀 한 대접을 드리지요.”

“아참, 그런데 압둘이 저한테 쌀 한 대접 줄 게 있었죠? 그럼 쌀 한 대접은 압둘한테 받으시면 되겠네요.”


판사도, 압둘도, 그리고 구경꾼들도 모두 모두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따귀 한 대 / 중동 설화-

 

 조금 솔직해져 보죠. 판사의 뺨을 때린 알리가 대리만족을 주더라고요. 이래서 철학 동화를 읽으면 유쾌해진답니다.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사법부의 행태에 울화가 치밀더군요. 최소한의 양심도 없나 봅니다. 사법부에 정의의 저울은 수평을 유지하지 않는군요. 

 

 언제까지 책임 회피를 할 수 있을지, 신뢰 회복을 어떻게 할 것인지 암담합니다. 정의의 부재, 정권에 부역하는 판사의 얼굴이 마구 떠올라 따귀 한 대로는 풀리지 않을 심정이거든요. 사법부의 정의와 연결할 법관은 떠올리기 힘든 나라입니다.

 

 2016년 9월 28일 드디어 일명 '김영란법'이 시행되었습니다. '부정청탁 및 금품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인데 본래의 목적이 반드시 이루어져야겠지요. 불투명한 정치, 사회, 경제 관련 등에서 정책 결정 과정에 부정과 부패가 줄어들겠지요.

 

 민주주의는 시스템으로 작동하는 체제이기에 법이 중요하죠. 그런데 그 법을 근거로 이 사회를 이끌 법관이 법비로 전락하다니요. 법을 발의하고 제정할 수 있도록 국민을 대의 하는 국회의원, 국회는 또 어떤가요. 국회의원을 제대로 뽑아야 하는 이유는 나의 삶에 영향을 끼치고, 입법부의 견제가 국가의 일방 질주를 막을 그나마 가진 국민의 힘이라 여겼기 때문입니다. 

 

 공직자가 된다는 것은 개인의 이익이 아닌 공익을 대변하는 역할에 충실하겠다는 의미입니다. 공직자가 되어 국민을 대상으로 자기의 이해관계에만 골몰한다면 그는 공직에서 물러나야 하는 거고요. 도대체 개념 없는 인물이 공직을 차지해서 나라의 재정을 갉아먹게 해서는 안 되는 일, 시민이 함께 나서서 감시하고 압박해야 합니다.

 

 사회 지도층이 정의를 외면할 때 그 사회의 미래 가능성은 없습니다. 혁명이라 할 수 있는 큰 변화가 필요합니다. 따귀 한 대로 가능하기나 할까 싶습니다만 정신 좀 차리라고, 순간 알리가 되고 싶었답니다.

 

 

Posted by 보랏빛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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