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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은밀한 순간,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나의 꿈 이야기가 있긴 한 건가요. 꿈을 이룰 수 없는 나라에서 그 모든 원인은 항상 나에게 해당하는 것으로 여기며 살았던 것은 아니었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아닙니다. 꿈을 잊어버린 이유는 이 영화에서 만날 수 있었던 것처럼 두려움이었습니다. 누군가에겐 갖춰진 것들이 내게는 없다는 이유일 수도 있고 미리부터 포기해버린 나에게도 있는 거였지요. 어쩌면 내 꿈을 포기하게 한 것은 아예 없었던 건지도 모릅니다.

 

아직도 꿈은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라 생각을 합니다. 다만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일 수 있는가에 달린 문제임을 알아차립니다. 이제는. 사회구조, 시스템에서 빠져나올 용기만 있다면 사회에서 주입한 허위 욕망을 품지 않는다면 내 꿈은 이루어질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것이지요. 나의 꿈이 사회에서 인정받아야만 한다는 강박과. 그 욕망에 시달리며 지낸 청춘의 시간이 널브러져 있으니까요. 꿈은 이루는 것이 아니라 지금 가슴에 품은 마음으로 우적우적 걸어가는 순간인지도요.

 

 

세 개의 달이 보이던 날, 세 우주가 모이고 각자의 우주를 품고 이 영화는 끝납니다. 70번쯤 반복될 내가 태어난 그 날, 내 우주는 또 누군가에게 하늘에 있는 달의 얼굴로 전해질 수 있을까요. 내가 이루려 하던 꿈이 아직 조각을 다 맞추지 못하고 이 땅을 떠날 때 누군가에게로 그 꿈은 이어지기도 할 겁니다. 꿈은 나와 아직 만나지 못한 누군가를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할 것이니까요. 나의 과거가 현재의 나를 있게 한 것이지만 이십 대의 불안함에서 도망칠 수 있는 사람이 많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불안은 정신적인 것이고 그 정신인 자기 자신으로부터 도망칠 수는 없을 테니까요. 자기를 사랑한다면 불안도 사랑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그런데도 그 불안에서 도망치려 하는 내가 있기에 사랑을 무작정 따르기도 힘들다는 거겠지요. 삶의 의미는 생존하기 위한 소유를 바탕으로 생겨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생존의 위기에서 삶의 의미 따위는 별로 관심이 가지 않으니까요. 먹고살기도 힘든데 의미가 있건 없건 일을 해야 돈을 벌고 그래야 생존이 가능할 수 있다면 삶의 의미 따위가 무엇이 문제일까 싶은 거지요.

 

생존에 위협을 느낄 때 감정은 불안이 아니라 공포일 겁니다. 공포 앞에서 삶은 본능적으로 움직이게 되겠지요. 우선 살아야 하니까요. 그렇기에 생존에 문제가 없을 때 오히려 불안에 시달리고 벗어나기 위한 움직임을 하기도 합니다. 결국, 삶의 의미는 불안과 함께 찾아드는 삶의 질과 연결되는 문제였습니다. 늘 반복되는 것 같은 일상과 사람들과의 마주침도 내 안에 남아있는 가슴 뛰게 하는 무언가가 없다면 그저 지나치는 시간의 연장일 뿐입니다. 결국, 생존하기 위해 평생을 보내는 경우에 나의 우주는 화석이 되어 빛을 낼 수 없다는 것이겠지요.

 

 

영화에서처럼 혼자 남을 부모가 아픈 상황에 내 꿈을 좇아 그의 곁을 지키지 못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요. 가족과 관계있는 일들에서 자유롭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가만 들여다보면 그 상황이 나를 잡아두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에 내가 머무는 것을 택했다는 걸 기억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가족이 나를 대신해서 살아주진 않기 때문이었죠. 나의 꿈을 향해 나아갈 때는 뜻밖의 걸림돌들이 있게 마련이었습니다. 결코, 순탄하게 자신이 계획한 미래는 오지 않는다는 것이기도 하고요. 다만 내가 아주 먼 미래를 확신할 수 없음에도 지금 너무 멀리 바라보고 있나 싶을 때가 많습니다.

 

당신의 우주는 아직 무사하신가요?

 

Posted by 보랏빛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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