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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이반 라이트만 감독의 영화 <Dave>

평범한 삶을 살아가면서 가끔의 일탈은 활력소가 됩니다. 그런 일탈로 세상을 바꿀 작은 시작의 순간이 내게 찾아온다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대통령의 주변 이야기가 뉴스를 차지하는 중에 이 영화는 의외의 기쁨과 모색의 가능성을 생각하게 합니다. 세월호 참사는 오늘로 455일을 넘어왔습니다. 그동안 진상 규명을 밝힐 아무런 움직임이 없는 가운데 대통령과 관련된 검색어는 점점 늘어납니다. 최근엔 현 정부의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법률안 거부권’을 행사했습니다. 재의결 되지 않아 국회법 개정안은 폐기됐어요. 현 정부에게 삼권분립의 헌법 정신은 이미 훼손된 지 오래전이라 별로 놀랍지도 않습니다만 주시하고 있어야겠지요.

이영화에서 ‘데이브’는 볼티모어에서 직업 소개서를 운영하며 사는 평범한 시민입니다. 그는 자기를 찾아오는 실업자에게 일자리를 소개해 주는 데서 즐거움을 찾지요. 그런 데이브에게는 아주 특이한 점이 있는데 이 영화에서 미국의 44대 대통령 빌 미첼과 똑같이 생겼다는 점입니다. 돼지의 등에서 내린 데이브는 “자동차는 세보레죠.” 하며 대통령의 말과 행동을 흉내 냅니다. 데이브는 대통령을 연기하며 주변인들을 즐겁게 해줍니다. 우리에게도 현 대통령과 관련되어 기억나는 관련 검색어만 채집해도 웬만한 소사전이 만들어질 수 있잖아요? 그 말들이 희망의 격언이 될 수 있다면 싶은데 오히려 조롱의 대상이 되는 것을 인지하고는 있을지 그것도 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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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이반 라이트만 감독의 영화 <Dave>

 

미첼 대통령은 볼티모어 방문 시 공식적인 행사에서 사적이고도 은밀한 시간을 가지려고 데이브를 잠시 내세우기로 합니다. 한국사회에서 공공연하게 일어나는 공직자의 부정의 한 일들이 졸지에 ‘일탈’로 치부됐던 것처럼 대통령 개인의 일탈을 위해 자신을 똑 닮은 데이브를 대역으로 내세웁니다. 영화에서처럼 권선징악이 이루어지는 세상은 불가능한 것 같은데 말이지요. 대통령은 뇌졸중으로 혼수상태가 되고, 데이브는 대통령의 역할로 그의 일탈이 시작됩니다.

 

미첼 대통령의 교활한 비서 실장 ‘밥’은 데이브에게 잠시 대통령 흉내만 내게 함으로써 국가에 봉사할 기회를 제공한다고 유혹합니다. 애국심을 강조하며 데이브의 선량함을 이용해 대통령의 역할을 하게 하지요. 현실에서 가능하지 않다고 보는 것이 당연한데 어쩐지 청와대와 관련된 입말들이 현실에서 넘치기에 예외성으로 유쾌하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이 영화에서처럼 대통령의 역할을 대신하는 누군가가 있기는 했나? 하는 추측이 난무하던 지난해 이슈가 생각이 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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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일보 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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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이반 라이트만 감독의 영화 <Dave> 비서실장 밥이 대통령대신 법안 처리에 사인한다.

 

신영복 선생의 『담론』 중 한 구절이 생각납니다. “우리가 현실에서 보는 것은 그때 그곳의 조각에 불과합니다.” 저자의 말은 ‘사실’이 ‘진실’이 될 수 없는 것을 다시 되새기게 합니다. 사실조차 개인의 편향된 시선에 따라 왜곡되기 일쑤인 사회에서 개인적으로 판단한다는 것은 또 얼마나 무거운 일이던가요. 자기검열이 작동하고 자기 생각을 말하기가 두려운 사회, 시대를 뛰어넘기 어려운 정서에서 빠져나올 가능성이 있기는 한 걸까 싶습니다. 이슈가 되고 있는 사안들에 이러쿵저러쿵 춤을 추다가 제풀에 힘이 달려 그만 주저앉게 되고 말 것 같은 거지요.

 

이런 사회의 불안들은 삶을 절박하게 만들지 않던가요. 패배의 역사에는 서사가 꽤 낭만적으로 퍼집니다. 그것마저 없다면 패배를 치유할 자유로움과 창조성은 소멸했겠지요. 패배의 역사, 혁명이 글자로 박제된 지금, 저자는 ‘현실과 이상의 지혜로운 조화’를 담론으로 삼았습니다. 문사철의 추상력과 시서화의 상상력을 유연하게 구사하고 적절히 조화를 이룰 능력을 말합니다. 중요한 것은 분리된 힘이 아니라 유연함이며 이런 공부는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하는 것이라 하죠.

 

왜, 정치가 내 삶과 멀리 있어야 했지? 이 물음을 알아가는 과정의 시간에서 나는 또 다른 삶의 기술을 습득하게 되었습니다. 내 머리가, 가슴이 생각하는 것들이 엉키다 보면 결국엔 내 세상 안으로 기어들어가 버리곤 하는데 그것은 나의 행복한 삶을 유지하기 위한 지독히 개인적인 선택이었습니다. 이런 나를 다시 각성시키고 끄집어내 매번 기성세대의 나를 성찰하게 하는 청년들의 작은 웃음이, 눈빛이 늘 성가시게 하곤 합니다. 이제 나를 위해 민주주의가 자명성을 얻어야 한다는 거지요. 나의 자유를 위해서 말입니다.

 

데이브예산

 

 

“차 구매자에게 신뢰 홍보비로 4천7백 만 불을 쓰고 있소.”

“네, 자동차를 구매한 소비자에게 신뢰감을 주기 위해서요.”

“차 산 사람의 신뢰감을 얻기 위해 아이한테 길에서 자게 하라 한다? 그럴 수 있소?”

“못 하죠. 그럴 수 없죠.”

 

대통령 미첼은 볼티모어 연설을 끝으로 그의 개인적 일탈이 그를 영원히 잠들게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주인공 데이브에게 그 역할이 맡겨집니다. 대통령의 비서와 측근에 의해 움직이던 데이브에게 영부인은 하나의 계기를 주게 됩니다. 그녀가 원했던 “무주택자 법안”을 정부가 예산 부족으로 거부하면서, 문제를 의식하게 됩니다. 데이브는 정부 예산안을 검토하기 위해 친구의 도움으로 공부를 합니다. ‘사실’과 ‘진실’에 대해 판단할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무주택자 법안’을 살릴 예산안 재검토를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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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라 그렇겠지요, 뇌졸중으로 쓰러진 대통령 대신 데이브는 진실을 담아 기자회견을 합니다.

 

나는 오늘 아침 비서실장에게 사퇴를 요구했습니다. 그는 이 나라에 문제가 없다고 하지만 저는 다릅니다. 더는 못 참아요. 문제가 있습니다. 문제는 있는데 못 본 척 한 거죠. 그런데 이제는 점점 더 커져서 누구도 손을 못 대죠. 그뿐 아닙니다. 그보다 큰 문제는 어쩔 수 없다는 무력감이죠. 정말 비극입니다. 우리는 할 수 있어요. 어디서부터 시작할지 몰랐다면 시작할 일은 제가 제안하죠. 오늘부터 정부는 일을 원하는 시민에게 직업을 찾아줄 책임을 질 겁니다. 일자리 얻은 사람의 얼굴은 하늘을 날 것 같죠. 거울을 보면서 자신이 뜻있는 일을 한다는 기쁨을 한 사람씩 느끼게 되면 다른 문제의 해결도 불가능은 아닙니다.”

 

권위에서 나오는 힘이 권위주의로 둔갑, 권력을 악용하는 정치인들로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데 전력 질주했던 무리가 벽을 쌓고 있습니다. 이미 해체된 이념을 들먹이며 국민을 호도합니다. 보수와 진보, 그 둘의 협력으로 좀 더 나은 사회를 위해 노력해야 하는데 말의 진정한 힘이 사라져 사람들을 혼동하게 합니다. 영화에서는 선한 인성의 힘으로 세상을 변화시킬 바른 정치의 방향을 보여 줍니다. 개인의 탐욕과 이기심, 집단 이기주의가 적다면 정치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가장 바람직한 파수꾼이 되지 않을까 싶더군요.

 

이 망국으로 가는 역사의 혼란한 시간을 멈추게 할 힘이 있어야 하고, 정치만큼이나 사회인으로 살아가는 개인들도 그 책임을 함께 지고 가야 하는 것은 너무 당연합니다. 우루과이 전 대통령 호세 무히키는 그의 평전에서 “하나의 일관된 전략이 없으면, 그 집단은 살 수도 없고 숨 쉴 수도 없다.”고 말하더군요. 전략은 적중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지만, 어쨌든 전략은 있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한 명의 리더십이 작동될 수 없다면 진보의 결집이 필요하고 그것이 전략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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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언제나 혁명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그것이 총과 폭력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혁명이란 사고의 전환이다. 유교나 기독교도 당시에는 혁명이었다.” (호세 무히카)

 

투쟁에는 후퇴할 시간이 있어야 하고 힘을 유지한다는 것은 후퇴했다가 다시 모으고 조직한다는 원칙을 따라야 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지나간 문제에 대해서는 진실하게 맞닥뜨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호세 무히키의 말은 한국사회에 훌륭한 교훈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선거의 결과에 따른 치밀하고 비전의 아젠다를 재창출할 수 있는 전략가들이 힘을 합쳐야만 하겠지요. 계파의 늪에서 언제까지 허우적거리며 책임 전가를 하려는 것일까요. 현실의 벽 앞에 언제까지 무릎을 꿇고 국가의 미래를 팔아먹는 행태에 손가락질만 할 것인지 답답합니다.

 

우루과이 전 대통령 호세 무히키는 대통령 재임 기간에도 자신의 급여 대부분의 90%를 자선단체에 기부했습니다. 그는 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이지만 가장 존경받고 인기 있는 대통령으로 우루과이는 현재 라틴아메리카 지역의 평균성장률을 웃도는 고성장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퇴임 당시 무히카 대통령 지지율은 당선 때(52%)보다 훨씬 높은 65%였다는군요.

 

현대인들의 망각 속에서 공화국의 정신은 왜곡되고 붕괴하여 가고 있습니다. 공화국들은 봉건적 향수 때문인지 혹은 소비주의 문화 때문인지 ‘부유하게 살기’를 그들이 나아갈 방향으로 수용했고, 보통사람들의 삶과 꿈, 생활의 요구들을 외면해버렸습니다. 정부는 결국 자기 국민처럼 될 수밖에 없습니다.” (호세 무히카)

 

호세 무히카 대통령의 2013년 9월 24일, 유엔 총회 연설의 내용은 ‘현실’에서 의미하는 바가 너무도 크고 절망스럽게 다가옵니다. 분명 동시대를 살고 있는데 정반대의 철학과 행동을 보여주는 대통령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한국사회, 그 현실의 한계는 무엇일까요. 그의 말대로 한 사회의 실패는 정치에서 비롯된다고 봅니다. 정치가 실패하는 것은 삶을 부의 축적보다 우위에 두는 철학적 시야가 없기 때문이라는 말을 새겨 봅니다. 대통령이 뇌졸중으로 쓰러지는 영화 같은 상황을 바라기보다는 공정한 선거를 통해 데이브 같은 대통령으로 바꾸는 일이 더 현실적이겠죠.

 

 


Posted by 보랏빛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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