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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개월의 겨울 방학 기간에 개인적으로 작은 도서관을 운영했습니다. 오후 1시부터 4시까지 책을 읽는 공간을 열었습니다. 2회는 독서지도와 NIE로 수다도 떨었습니다. 마무리되어 가기에 부모님들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가졌지요. 하지만 의외의 상황에 스스로 한 방 얻어맞아 띵해지고 말았죠. 충격이었습니다. 관리부실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무엇을 관리하지?

 

마지막 날에 그들에게 관리당하는 게 어떤 것인지를 느끼게 할 내 나름의 행동을 취했습니다. 일단 작은 상자를 입구에 두고 휴대전화기를 걷었습니다. 이 공간은 와이파이가 그야말로 빵빵하게 터지는 곳이지요. 그동안 그들은 책을 읽기보다는 스낵 컬처와 스마트폰 게임을 했습니다. 관리자가 없었기에 가능한 것이지요. 함께 있을 때는 책에 빠져있는 모습이었죠.

 

대한민국의 자화상이라 빗대면 과한 것일까요. 관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이 사회, 시대의 흐름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이 앞장서서 구성원들을 관리하고 그것이 마치 국가 안보를 국가 성장을 위한 것이라 여기도록 하고 있지요. 관리당한 기성세대들이 신세대들을 그렇게 관리하려 합니다. 청소년을 관리의 대상으로 삼는다면 장래 대한민국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겁니다.

 

일부 십 대들의 모습을 너무 과대 해석하는 것이라고 부디 비판해주십시오. 달게 받겠습니다. 아이들을 보호하는 것과 관리하는 것은 다릅니다. 아이들을 보호한다는 의미에서 행하는 어른들의 관리 역할은 그들을 한 인간으로서 대하는 것이 아니지요. 그래서 우리의 교육은 사육으로 변질하여 버렸고 그 사육한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 다시 사회를 향해 화살을 쏩니다.

   

2008년 데니스 간젤 감독의 '디벨레(Die Welle)'

 

이 영화는 독일영화로 1967년 미국 캘리포니아 팔로알토 커 벌리 고등학교에서 교사 론 존스에 의해 행해진 실제 실험을 바탕으로 한 작품입니다. 무정부주의 대신 독재에 관한 토론 수업을 진행하게 된 한 고교 교사가 독일 나치즘의 독재 정치가 현대 독일에서는 작동할 수 없다는 학생의 의견에 그 작동 원리를 설명하기 위한 교실 실험을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같은 유니폼을 입는 것으로 시작했으나, 실험에 점점 동화된 학생들은 협동단결을 위한 단체를 결성해 그 목적에 맞지 않는 친구들을 지목하고 감시하며 배척하는 등 점점 광기에 휩싸이기 시작합니다. 그들은 개인주의적인 삶에 익숙해져 있지만 공동체가 발휘할 수 있는 연대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를 느끼는 겁니다. 독재는 어디에서건 가능합니다.

 

휴대 전화기를 걷지 않으면 자제할 수 없는 청소년들의 의식은 어떻게 형성되었을까요. 한국의 교육이 저지른 주입과 획일화를 마치 연대의식으로 몰아가는 전체주의의 영향력은 심각합니다. 그들과 대화를 나누다가 일상을 습관적으로 움직이는 청소년들은 '규율'획일화로 시작되는 '독재'의 가능성에 쉽게 휘둘릴 수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영화는 그들을 어떻게 집단적 광기로 몰아갈 수 있는가를 보여줍니다. 그것은 애국심을 내세워 국민을 선동하려는 현 정부의 모습만큼 위험합니다.

 

이 영화에서 프로젝트 수업을 한 주간 진행한 후 벵어 선생이 말합니다.

 

첫 수업 시간에 질문했던 것을 기억하는가. 우리에게 독재가 가능할 것인지 물었다. 독재정치란 바로 이런 거다. 방금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알아챘나, 너희?”

 

 

2008년 데니스 간젤 감독의 '디벨레(Die Welle)'

 

프로젝트 수업에 자발적으로 참여했던 많은 청소년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 '디벨레'의 일원으로 평소에 경험할 수 없었던 연대의식과 그 힘의 파장을 마주하면서 전혀 다른 폭력을 만나게 됩니다. 결국, 이 실험 수업은 커다란 불행을 가져왔고 한 교사의 실험 정신조차 얼마나 다른 방향으로 진행될 수 있는가를 조심스레 되묻고 있습니다. 벵어 선생은 프로젝트 수업에 참여했던 학생들과 긴밀한 대화를 나누지 못한 채 수업관리만 했기 때문에 불행한 결과를 가져 왔습니다.

 

수업 진행 중 교사는 학습관리에만 집중했던 것입니다. 리영희 선생의 1972년 신동아에 실린 글을 전환의 논리에서 읽었던 활자들이 너무 생생하게 펼쳐집니다. 1970년대의 풍경들이 하나둘 재현되고 있는 태극기가 휘날리는 거리를 보면서 느끼는 것은 독재시대의 재현같습니다. 표준화된 시대에 주입된 대중매체를 통한 우민화를 위한 국가의 노력은 빛을 발휘한다는 리영희 선생의 말을 되뇝니다.

 

브라운관과 10인치의 유리창을 통해서 원거리로 조작되는 지배층의 의도는 자기 자신의 감각과 지각으로 이 사회의 실태를 꿰뚫고 살피려는 노력을 포기한 치매증 대중을 대량 생산하는 데 성공한 듯하다.”

 

감각 미디어에 혼이 빠져버린 신세대에 화가 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되도록 사회적으로 조건 지어진 그 오랜 습속을 벗어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한 기성세대로서 만나는 통렬함입니다. 문자 미디어가 전해줄 이성과 사고와 멀어지게 의도한 이 사회의 필요조건들을 버리지 않는다면 세대 간의 벽은 더욱 견고해질 것입니다. 태극기를 바라보는 것이 애국심을 흉내 내는 일은 아닌 것처럼 말입니다.

 

 

2015년으로 96돌을 맞은 3·1절의 거리는 정부의 태극기 달기 운동 분위기를 확산시킨 덕분인지 곳곳에 펄럭이는 태극기의 물결입니다. 1970년대를 학창시절로 보낸 나는 서울시청 앞을 지날 때면 국기하강 식을 하는 동안 가던 길을 멈추고 가슴에 손을 얹고 국기에 경례를 해야 했습니다. 너무도 당연시되었던 의례는 그저 바쁜 걸음 멈추게 한 재수 없는 날의 기억으로 남았을 뿐입니다.

 

정부의 나라사랑 태극기 달기 운동이 박근혜 대통령이 영화 <국제시장>에 나온 국기하강 식 장면을 보고 애국심을 강조한 즈음부터 시작되었다고 하더군요. 올 한 해는 전국이 태극기의 물결로 뒤덮힐 것 같습니다. ‘디벨레물결이란 뜻의 독일어입니다. 한국사회를 뒤덮는 이 태극기의 물결은 무엇을 위한 것일까요. 3.1만세 운동의 정신을 계승한 대한민국은 지금 어떤 모습인가요. 다른 공동체를 배척하는 극단적인 이기주의가 가져올 결과는 암울한 과거의 교훈으로 끝나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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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랏빛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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