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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와 아바타

Overdye*~ 2015. 10. 13. 12:13

책 한 권과 영화 한 편, 그리고 국정화. 이 세 가지가 연상되는 가운데 먼저 양해를 구해야겠다는 마음이다. 책은 사실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이니 그렇다 치고 감히 이 영화에 유신 시대 아바타를 엮어 말하는 것이 솔직히 너무 화가 나는 것은 맞다. 하지만 한 번 생각해 보자. 이 아름다운 영화를 이렇게 꺼내 드는 것은 영화 아바타에 심취한 나와 당신에게 다시 현실을 곱씹어 보자는 거니 심하게 생각하지는 마시기를.

 

먼저 책을 정리해 본다. 8인의 학자가 『박정희의 맨얼굴』을 엮으며 ‘객관적이고 엄정하고자 했다’는 유종일의 서문은 태극기 게양식을 대대적으로 벌이고 있는 현 정권하에서 되새김해야 할 필요가 더 절박해 보인다. 이명박 정부가 박정희의 경제철학을 상당 부분 계승해 시행하고 있는 가운데 ‘박정희 향수’가 유령처럼 떠돌던 차에 이 책이 기획되었다고 한다. 시의성으로 말하자면 오늘이 더 적절하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결정하고 박정희의 유신 아바타가 여기까지 왔다.

 

박정희 시대 경제 신화는 뛰어난 지도력에 의한 고도성장인 양 평가를 하지만 현실에선 왜 실감할 수 없는지를 해부하면서 경제 전략과 정책의 선택에 미국의 영향을 짚어 준다. 18년간 내 젊은 시절을 대통령으로 있었던 그에 대한 추억은 억울함과 분노이다. 학창시절 역사 교과서에서 배워온 사실이 왜곡이었음을 뒤늦게 깨닫게 되며 느낀 감정은 국가에 대한 배신감이었다. 유신 시대 아바타들이 2017년부터 국정화 교과서를 사용하려 한다. 이 상황을 역사는 무엇으로 기록할까.

 

내가 과거 역사에서 교훈을 얻은 것이 있다면 적어도 현재 정권이 내건 단 하나의 교과서를 만드는 일을 막아야 한다는 거다. 국가를 적으로 삼아야 하는 현실, 왜곡과 미화의 역사를 되풀이 하려는 권력을 바꿀 힘이 필요하다. 역사에서 일어난 사실을 기술하는 역사를 판단하는 일은 개인의 몫이다. 하지만 사실을 왜곡하면 바른 판단은 불가능하다. 미래 세대에게 하나의 역사 교과서 교육과 입시체제에서 이 사회는 그들의 바른 판단을 어떻게 요구할 수 있는가.

 

 

 

『박정희의 맨얼굴』에서 이정우는 정치적 독재자들이 경제운용에서 눈앞의 실적에 급급하여 국가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지가와 물가를 상승시키면서 무리하고 조급하게 성장에만 치우쳤기에 지도력을 내걸어 그를 평가할 수는 없다는 점을 말한다. 1953년에서 2007년까지 한국의 지가는 1만 배 폭등해서 세계 최고, 물가 역시 소득 수준에 걸맞지 않게 거의 최고 수준이다. 현재는 더 심화하였다. 합법을 가장한 노조탄압과 해고는 비정규직의 불안정한 고용 상태에서 노동자들의 존재를 알리는 절규로 나타난다.

 

청년들의 활기찬 목소리는 사라졌고, ‘3포 시대’라는 자조적 유행어를 좇는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사라진 여기, 노동자들의 고난의 시간은 오늘도 투쟁 중이다. 굴뚝 위에서, 거리와 빌딩 위에서 배제된 노동자와 광장에서 밤을 지내며 정부의 옳지 못한 일에 소리를 질러야 한다. 이념적 편향을 말하는 그들이 내거는 균형 잡힌 역사관이란 다름 아닌 획일화와 주입식으로 단 하나의 역사 교과서에 의한 독재의 시도이다. 너무 노골적이지 않은가. 평화와 공존의 시대에 색깔로 편 가르기를 내세우는 유신 아바타는 집권 내내 참사를 부른다.

 

정치경제학의 시각에서 박정희 시대의 통제경제체제를 분석한 박헌주는 정치적 권력을 이용해 소수의 선택된 집단이 국가가 제시한 발전 방향에 따라 대규모의 사업을 추진했다고 말한다. 이를 통해 증가한 물질적 이익의 대부분을 획득하게 함으로써 부의 편중화는 심화하였고, 고도성장뿐 아니라 분배의 불평등, 사회 통합 저해 등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했다고 주장한다.

 

김상조는 박정희 체제가 가져온 후유증의 또 다른 측면인 정부 정책의 왜곡이 1997년의 외환위기로 귀결되었는지 논증한다. 개발금융과 재벌이 낳은 모순은 지속 불가능한 체제였으며 재벌 스스로 박정희의 신화에서 재벌의 신화로 변했을 뿐인 한국 경제의 현실은 결국 재벌 신화를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재벌에게 국가는 없다. 저들의 이해관계만이 있을 뿐이다.

 

박 섭은 수출산업 육성과 중화학 공업화 등 박정희 시대의 산업정책을 투자 주체의 발견과 육성, 투자 자금 조달, 투자 전략 수립 등 세 부분으로 나눈다. 비록 산업정책이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지만, 박정희 정권 말기에 이르면 그러한 방법이 더는 유효하지 않게 되었을 때 역량과 조건이 부족했음을 말한다. 그렇다면 정책 기조를 바꾸지 않은 것이 누구를 위한 것일까.

 

노동 정책과 노동운동의 성장을 조망한 윤진호는 박정희 시대의 발전이 단순한 자본의 양적 축적과 경제지표의 양적 성장만이 아니라 그에 수반한 노동자계급의 양적, 질적 성장과 이에 따른 역사 주체로서의 등장이 포함된 발전이었다는 점을 주장한다. 나와 당신은 저임금정책의 실태와 장시간 노동 및 산업재해 등 열악한 노동조건이 현재까지 부정적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기억해야만 한다.

 

박정희의 지도력은 초기에는 농어촌고리채 정리사업이나 농업구조 개선 심의 등에서는 중농주의로 보인다. 하지만 농업구조 개선방안 마련 실패와 외향적 성장전략의 선택에 따라 농업의 성장을 통한 국민경제의 균형성장을 포기하게 되었다고 조석곤은 말한다. 생산력 증대의 길을 포기한 후 증산과 가격지지를 통한 소득증대책에 집중해 농가수지가 악화하였다. 지금의 농촌은 쌀 개방화로 살이 썩을 지경이다. 땅에서 사람이 떠나고 있다.

 

결코, 사회복지와 노동은 박정희 정권에서 정책 의제로 채택될 수 없었다. 권위주의적 발전 국가였던 정권에서 경제성장에 종속되어 ‘복지 없는 성장’ ‘노동 없는 성장’ ‘불균형한 성장’을 초래했을 뿐이다. 이에 신동면은 국가와 기업 간 연합이 주된 정책 망을 형성하고 있었기 때문에 정책 결정 과정에서 기업의 이해관계가 과도하게 반영되고 노동의 이해관계는 배제되었다고 한다.

 

 

 

 

‘아바타(avatar)’는 힌두어로 강림 또는 화신의 개념인 ‘아바타라(avatara)’에서 나온 말로, 사이버 공간에서 자기 자신을 대변하는 대리 물을 가리키는 개념이다. 아바타는 현실 속의 자아가 아니라 자아가 욕망하는 바를 투영한 것이었고, 사이버 공간이라는 가상의 세계에서 아바타들은 서로 만나고 교류하고 헤어지면서 관계를 맺어 나갔다.

 

2000년대 초 우리 사회에서도 사이버 공간에서 크게 유행해 크고 작은 문제들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 아바타가 경이와 환상으로 다가온 것은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영화, ‘아바타’덕분이었다. 영상에서 건네주는 3D의 충격과 영화로 불어넣어 주는 모두의 ‘선’을 향한 기운들에서 공간에 대한 판타지로 시간을 되돌아보며 한참을 영화 ‘아바타’에 몰두했다.

 

영화 ‘아바타’가 보여주는 인류 역사에 대한 성찰의 중심에는 침략의 역사가 있다. 영화 속에서 지구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는 우주 기지는 인간 대 자연이라는 이분법 속에서 자연을 정복하고 착취의 대상으로 여기던 인간들이 만든 현실이다. 반면 판도라는 지구인들의 이성과 합리성으로 만든 세계가 아니라 새로운 차원의 우주이다.

 

판도라는 ‘나비’라고 하는 전혀 다른 윤리 기준과 심성을 가진 존재들의 공간이다. 나비와 판도라의 자연은 신경과 신경이 접합되는 시냅스처럼 서로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영화의 주인공이 인간의 몸을 버리고 아바타로 사는 삶을 선택하여 진실로 나비가 됨으로써 바로 참된 인간성에 도달한다. 지금 유신 시대 아바타들의 등장을 보며, 문득 인간성이 사라진 이 공간이 가상세계는 아닌가 싶어졌다.

 

박정희의 조국 근대화론의 성과로 20여 년간 고도 경제 성장의 결과, 대부분 국민은 빈곤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외형적으로는 성장 가도를 달리는 듯했지만 ‘선 성장 후 분배’는 부의 불균형을 확대했고, 정권 후기로 갈수록 경제 안정을 위협했다. ‘선 경제 발전 후 민주주의’는 유신 체제의 이념을 뒷받침하고 결국 정치적 독재, 경제적 재벌 체제 등 경제 제일주의와 사유재산 절대주의를 극한적으로 관철해 왔다. 현재가 중요한 이유, 내일은 오늘을 지나야 가능하니까.

 

영화 아바타에서 보여주는 것은 약자가 강자에 승리하는 판타지, 신화와 상상력이 합리성과 이성으로 무장한 기술문명에 승리를 거두는 판타지이다. 생태주의 철학이 발전주의 철학에 승리를 거두고 수평적 네트워크의 힘이 수직적인 조직의 힘에 승리하는 판타지이다. 과연 촛불에 휩싸인 군중과 함께 모두의 ‘선’으로 향하는 신경과 신경이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소통하는 새로운 시간을 만나는 나의 조국에 대한 판타지는 가능한 것인가. 유신 시대 아바타가 하는 일이라고는 권력으로 국민을 우롱하고 국가의 폭력성을 휘두를 뿐이니.

 

박정희는 재벌체제와 비대한 토건 부문을 특징으로 하는 산업구조와 정부의 통제 아래 이들 부문에 자금을 지원하는 관치금융이라는 왜곡된 경제구조를 만들어냈다. 재벌과 토건, 경제 관료들의 3각 특권 성장 동맹을 낳았고 그들의 영향력은 성장 지상주의로 오늘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 거시경제에서는 적대적 노사관계를 유산으로 남겼다는 것을 기억해야만 한다. 노동개악을 노동개혁이라 말할 수 있는 그들의 뇌 구조를 이해할 수 없다. 결국, 저들의 이해관계로 국가를 통째로 말아먹으려는 박정희의 아바타, 유신 시대의 아바타에 불과하다.

 

아바타는 허상이다. 역사는 한 개인의 사적인 이유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결코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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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랏빛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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