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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반자 우리씨'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20.06.24 말로 표현하기
  2. 2020.06.24 오해와 이해

15. 행동파 우리 씨와 엉성이

 

아침 기운이 이미 가을이네요. 엉성이는 꽤 오랜 세월을 단순하게 기억합니다. 겨울은 12월 1일부터, 봄은 3월 1일, 6월 1일이 되면 여름으로 열리고 가을은 9월 1일부터 시작한다고요.


새로운 계절이 열리는 날이 되면 늘 하던 행동이 있었나 봅니다. 지금은 계절 구분이 안 되는 것 같아서 그만두었던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아요. 아마 두 해정도는 지났지 싶어요.


페미니즘 공부를 시작하고 콘텐츠로 나누는 일도 숫자로 정리하기 만만하지 않은 것을 보니 그럭저럭 행동으로 이어가는 것이기는 합니다. 모성애 코르셋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며 엉성이는 새삼 깨닫네요.

 

엉성이는 대상을 이해한다고 말하지 못한다. 그저 느껴준다고 말하고는 한다. 엉성이는 입으로 말하기를 일상에서 잘 못하는 게 뚜렷하게 있다. 여러 분야에서 엉성이는 탈코르셋이 무의미하다.

 

 아니, 우리 씨에게는 하잖아요?
 한 번도 해보지 않았어요.
 정말요? 사랑한다는 말을 안 한다는 말이에요?
 네.



엉성이는 엄마이기도 합니다. 엄마인 엉성이가 자식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거의 하지 않고 살아왔다는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 엉성이도 깜짝 놀랐다는 거죠.


말이 필요 없는 눈빛으로 대상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환상인지 모릅니다. 어떤 의미에서 엉성이는 대단한 판타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겠죠. 그것은 자기 자신에게만 실현 가능한 것이었구나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스스로를 방어하는 데 사용한 처치법 정도일지도 모르겠다고 엉성이는 생각하네요. 그러면서 눈빛으로 건네는 우리 씨 시선에 응답합니다.

 

 

그래그래, 우리 씨. 말을 안 하고도 대상을 알아차린다는 것은 특히 사랑하는 마음에 있어서는 무리였나 봐. 우리 씨처럼 민감하게 반응하는 게 사람에게는 힘든 일일지도 모르겠어.


냥냥이 우리 씨와 엉성이는 그래서 서로 불편하지 않은가 봅니다. 셋째 애인 덕분에 다행스럽게도 너무 늦지 않게 우리 씨와 같이 지내게 되어 고맙습니다.

 

이제는 말하는 연습을 해야겠어요. 가수 팀의 '사랑합니다'만 노래방에서 불러대면 누가 알겠어요..후훗.

 

엉성이 셋째 애인,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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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랏빛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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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겁 많은 냥냥이 동반자

 

고양이가 무서워. 왜 고양이를 싫어하지? 무서워한다고. 여기서도 이해가 아니라 오해가 생긴다. 나는 분명 무섭다고 했는데 정작 그 말을 들은 사람은 싫어하냐고 되묻는다.

 

무서운 이유를 찾아 설명한다. 아마도 추리물 때문일 것 같아. 살인을 완전범죄로 만들 수 있던 순간 벽 안에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려. 살해된 시체와 함께 검은 고양이가 있었던 거였어. 유독 그 작품이 선명하게 기억에 있거든. 아무래도 거기부터 출발해야 할 거야.      


생물체는 대체로 내겐 약간의 무서움과 긴장감을 주곤 한다. 마당에서 기르던 백구가 새끼를 낳았는데 한 마리가 따로 떨어져 나왔길래 그 강아지를 집어 들어 백구에게 가져가던 그 순간. 그 물컹하고 말랑거리던 질감. 그 순간 힘의 안배를 고민하며 벌벌 떨었던 때가 선명해. 하지만 강아지는 무섭지 않아. 도저히 애완용으로 내 공간 가까이에 두거나 품을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     


막차를 타고 역에 도착했던 날이다. 낮에 흩뿌린 눈들이 흔적 없이 땅 아래로 녹아 스며들었지만, 아직 나무들의 가지에는 자취를 남겨두었다. 역사는 어둡고 조용했다. 함께 내린 승객들과 또각거리는 발자국과 어둠에 여기저기서 비추는 자동차의 불빛, 그리고 안개. 이곳의 밤은 자주 안개를 뿌린다.      


바다가 가까운 지역이니 지리적인 이유가 크겠지만 내게는 이런 밤 풍경, 안개를 가르며 걸어가는 텅 빈 밤거리에 팔딱거린다. 평소에는 역 앞에 늘어서 있던 택시들이 내 앞의 사람을 마지막으로 없다. 안개는 하늘에서 내려와 내 무릎 언저리까지 휘돌아 오르락내리락하며 흐물거린다. 역으로 들어오는 입구 길 너머까지 어둡다.     

 
택시가 더는 들어오지 않으려나 보다. 왼쪽 다리의 부실함에 집까지 걷기에는 분명 무리다. 그렇다고 택시가 올 것이라는 확신도 안 선다.

 

사거리까지 나가면 여기보단 움직이는 택시들이 보일 것 같아 우선은 걷기 시작한다. 가로등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희미했던 것 같다. 어두운 하늘빛과 흰 안개에 주변 풍경이 흑백의 조화로 펼쳐진 것을 눈으로 바라볼 수 있었으니 어디에서건 불빛이 발하고 있던 거였다.     

 
사거리 쪽은 이미 신호등이 깜빡거린다. 자정이 넘으면 신호체계는 자유를 허락한다. 차들의 움직임이 적어지는 시간이니 당신들 멋대로 하세요. 한밤중에 사거리를 내 멋대로 휘젓고 다니는 자유, 이 고요와 적막을 두르고 걸어간다. 절반쯤 남은 사거리에서 내게로 달려오는 희미한 불빛은 빈 택시를 알리는 빛이다.      

 

순간 그냥 걸을까 하다가 내일이 걱정된다. 그냥 타자. 역전에 사람 더 있나요? 아니요. 제가 마지막이었어요. 기다리시면 택시가 들어갈 텐데 나오셨네요. 내가 있는지 어찌 알겠어요. 그냥 다 알아요. 어마어마한 오해다. 이런 오해가 일상에서 늘 터진다.

 

어이쿠. 고양이와 관한 오해와 이해의 차이를 쓰고 있단 사실을 잊었다.     

 

다시 고양이 이야기로 돌아가 오해를 이해로 변화시켜볼 내 나름의 노력은 해가 바뀌면서 이어진 뜻밖의 인연 덕분이다. 우연하게 팟캐스트에서 듣게 된 아이오와의 작은 마을 스펜서 도서관 고양이 책 『듀이』를 만나면서였다. 책에서 듀이의 엄마가 소개하듯 책 표지에 듀이는 정말 무섭지 않았다. 사진이라서일까.          

 

지금까지 나를 찾아온 고양이 가족을 잊지 못한다. 몇 년 전 아침에 현관문을 당겼는데 고양이와 그의 아기 고양이가  앉아 나를 바라보았다. 네 마리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기 고양이 엄마 고양이 아기 고양이 두 마리. 기억에 있는 이미지로 검은색과 흰색이 섞인 고양이 가족이었다.

 

딱. 그들을 마주하고 튀어나오는 비명과 끌어당긴 철문.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보낸 시간은 물리적인 감각과는 달랐던 기억의 거기까지. 기회를 놓친 것이다. 

 

    

 

책을 좀 더 읽어요.


듀이 리드모어 북스. 스펜서 도서관 고양이의 온전한 이름이다. 뭔가 이름에 정중함이 들어있다. 지역사회에서 공공도서관의 역할을 고양이의 이름에서 발견한다. 듀이로 하여 작은 마을 스펜서는 관심을 받게 되고 활기를 찾는다. 그렇게 되기까지 스펜서 도서관에서 고양이를 보살피기 위한 노력들이 지속된다. 듀이는 지역민과 친해지고 그 공감대가 지역에 변화를 가져온다.


한 국가의 수도만이 거대한 발전을 하고 지역 사회는 빠져나가는 인구에 몸살을 앓고 있다. 서울로 서울로. 이것이 한국이 갖고 있는 커다란 오해이기도 하다. 그런 오해 속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는 서울 탈출이라는 탁월한 선택을 했다. 그래서 한국의 수도인 서울에 붙은 '특별시’라는 을 사용하기가 싫다.

 

특별함은 지역마다 지닌 아름다움이어야 하니까. 그런 의미에서 서울은 별로 아름답지 않다.  그것을 무시하는 이름으로 서울만을 특별시라 불리는 것은 오해가 아닐까. 지역 사회의 특별함이 골고루 다양하게 빛날 때 그 오해는 이해로 변한다. 나는 그 이해의 한가운데 듀이가 있다는 사실, 한 마리의 고양이가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끌린다.

 

내게 허락된 남은 시간은 이 무섭지 않은 고양이 듀이를 생각하며 고양이가 나를 피하는 게 더 먼저이겠지만 길에서 마주칠 멀리 있는 고양이를 피하던 짓을 더는 하지 않으려 한다. 고양이가 무서웠던 이유에 대해 이해를 바라면서.       

 

[덧붙임]

고양이를 무서워하는 내가 '나'에게 건넨 2017년 새해 선물을 읽고 남긴 글입니다. 엉성이는 냥냥이와 친해지기 위해 홀로 노력을 해왔던 것 같아요. 우리 씨와 엉성이가 동반자가 되는 데 작은 용기를 남긴 좋은 책이었어요.

 

 

엉성이 동반자가 된 냥냥이 우리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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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랏빛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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