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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 프리 : 성에 의한 제약이나 차별을 최대한 배제하려는 사회 시스템을 이르는 말.

공연계 젠더 프리 캐스팅과 교육 문화 코드의 새로운 변화, 젠더 프리 장난감 이야기.


[그 많은 페미니즘 이야기] 방송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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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랏빛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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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은 페미니즘 이야기] 방송 듣기

 

 5월 12일 부고를 들었습니다. 그분과 첫 만남은 인터넷을 통해서 <이승로그>라는 팀 블로그에 합류하면서였지요. 그 후 제 공간으로 초대해 좋은 만남을 시작했습니다. 그 날 이후 낮은 언덕을 뒤로 한 것처럼 무척 든든했습니다. 갑작스런 비보가 들려오고 그분의 암투병기를 읽으며 한 구탱이가 스러져내리는 감정에 스스로를 추스르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분의 부고는 제가 그동안 버틴 최근의 피로와 위경련으로만 알고 있던 고통을 감당하지 않도록, 제 정신력을 발휘할 수 없게 한 슬픈 소식이었습니다.


 왕좌의 게임이었죠. 그분의 방송을 들으며 몇 해 전 겨울, 며칠을 정 주행하던 시간이 스르륵 밀려옵니다.

응급실에 누워 간헐적으로 달려드는 죽음같은 어두움을 헤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는 힘. 낫 투데이!! 지금은 아니다. 그분의 발인 참가를 하루 앞 둔 일요일 새벽이었죠.


이제야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세상을 향해 소리를 냅니다. 내 눈에 다른 글쟁이들과 달라보이던 특별한 그분, 그대가 추구하던 아름다운 가치를 기억하고 지켜가도록 힘을 모으겠습니다. 물뚝심송 박성호님,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5월 4일 방송 이후 5월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날입니다. 달라 보이는 세상이야기, 그 많은 페미니즘 이야기를 풀어볼까요.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최근 작품으로 『엄마는 페미니스트』 -아이를 페미니스트로 키우는 열다섯 가지 방법-입니다.


굳이 엄마에 국한된 이야기라기보다는 모든 어른들이 읽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내 엄마에게서는 들어보지 못한 말. 모든 어머니의 자식들이 듣게 될 이야기였으면 합니다.

 

첫 번째 제안 - 충만한 사람이 될 것.

두 번째 제안 - 같이할 것.

세 번째 제안 - ‘성 역할’은 완벽한 헛소리라고 가르칠 것.

네 번째 제안 - ‘유사 페미니즘’의 위험성에 주의할 것.

다섯 번째 제안 - 독서를 가르칠 것.

여섯 번째 - 흔히 쓰이는 표현에 의구심을 갖도록 가르칠 것.

일곱 번째 제안 - 결혼을 업적처럼 이야기하지 말 것.

여덟 번째 제안 - 호감형 되기를 거부하도록 가르칠 것.

아홉 번째 제안 - 민족적 정체성을 가르칠 것.

열한 번째 제안 - 우리 문화가 사회규범에 ‘근거’를 들 때 선택적으로 생물학을 사용하는 것에

                      의구심을 가르칠 것.

열두 번째 - 일찍부터 성교육을 할 것.

열세 번째 - 사랑이 반드시 찾아올 테니 응원해 줄 것.

열네 번째 제안 - 억압에 대해 가르칠 때 억압당하는 사람을 성자로 만들지 않도록 조심할 것.

열다섯 번째 제안 - 차이에 대해 가르칠 것.

Posted by 보랏빛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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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한국사회는 새로운 시대가 열릴 수 있다는 벅찬 기대와 오랜 아픔을 치유하려는 몸부림이 미투로 이어지고 있나 봅니다.

 

남과 북이 평화를 향한 한 걸음을 내딛고 있는 가운데 오랜 세월 묻어둔 아픈 기억들을 꺼내는 용기의 미투와 힘을 보태고 있는 윗유운동도 더 나은 사회를 향한 우리 모두의 꿈틀거림이라 생각합니다

 

김미덕의 <페미니즘의 검은 오해들> 1부에서 이어지는 2부는 또 다른 가부장적 시선과 공감, 정체성, 그리고 탈동일시에 대해 이야기 나눕니다.

 

[그 많은 페미니즘 이야기] 페미니즘의 검은 오해들 (2) 방송듣기

 

 

 

 

 

 

 

Posted by 보랏빛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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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화에서 못 다한 이야기 <페미니스트 선생님이 필요해>

 

충남도의회는 2일 제2차 본회의를 열고 ‘충청남도 도민 인권 보호 및 증진에 관한 조례 폐지 안’을 가결했습니다. 인권조례는 인천시를 제외한 전국 16개 시·도가 제정해 시행하고 있으며 인권조례 폐지안이 가결되기도 이번이 처음이라고 합니다.

 

인권조례를 만든 자유한국당(당시 새누리당) 소속 도의원들이 스스로 폐지에 앞장섰습니다. 인권 조례 폐지안은 자유한국당 김종필 의원이 대표 발의했는데 이날 표결에 앞서 2시간 동안 벌어진 토론에서 한 말은 반지성주의에 대표적인 사례더군요.

 

그들이 내건 인권 폐지의 주장 근거는 도민 인권선언에서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을 이유로 한 차별금지가 동성애를 옹호한다는 무지에서 나온 결과입니다. 인권 조례를 폐지하는 발상 자체부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옳지 않은 일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에게서 보호하려고 만든 인권 조례이기도 하니까요.

 

다양한 사람이 모여 다름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공동체를 만들어 나누기 위해 충청남도에는 인권 기본 이해 교육이나 관련 문화 행사가 많습니다. 인권조례가 폐지됨에 따라 그동안 도민의 인권 개념 이해 및 관심 유도 등을 위해 진행한 인권에 대한 활동들이 어려워집니다. 활동 지원에 어려움이 생길 것이기 때문이죠.

 

이런 일이 벌어지는 현실에서 더욱 절실하게 요구되는 것은 일상에서 인권 교육의 필요성입니다. 부족한 인권 감수성을 높이는 일에 앞장서서 지역 사회를 이끌어갈 도의원들이 이 정도이니 말문이 막힙니다. 일부 개신교도의 무논리는 그렇다고 치더라도 말입니다. 종교가 정치에 영향을 준다는 일이 현대에도 가능한 일이라니 참으로 한심한 거죠.

 

인권 교육이 제도로 정착하지 못한 현실에서 『페미니스트 선생님이 필요해』는 더 자유롭고 평등한 학교를 만드는 열 개의 목소리로 그 시작을 알려줍니다. 사회를 변화하게 하는 힘은 개인에게서 나옵니다. 인권 감수성이 발휘되는 사회는 페미니즘에서 지향하고 있는 모든 사람의 성이 평등해야 한다는 너무도 당연한 권리에 공감하게 됩니다. 성 감수성은 다른 성별의 입장이나 사상 등을 이해하기 위한 감수성이기에 여성이나 남성에 대한 고정되고 편협된 시각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줍니다.

 

페미니스트 선생님이 필요하다고 하는 것은 선언만을 원하는 게 아니죠.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일이 먼저라는 겁니다. 페미니즘은 ‘미래인’에서 출간한 「여성학」을 보면 서구에서 19세기 중반 이후 ‘여성의 권리에 대한 옹호’의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했다는군요. 페미니즘을 한마디로 정의 내리기가 쉽지 않은 이유는 역사적으로 페미니즘은 하나의 고정된 의미나 실체를 가진 것이기보다는 다양한 갈래의 이념적 토대와 관점을 견지하는 사상, 이론, 행동주의(또는 운동)로 구성된 묶음이기 때문이죠.

 

교육만 바뀌면 제도, 법률만 잘 만들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일은 아닙니다. 필요한 일이지만 충분하지 않다는 거죠. 조금 더 나은 세상을 원한다면 바로 지금, 나부터 변화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두려움은 어디서부터 나오는 것일까 생각해보면 대체로 알지 못할 때 가장 크게 나를 휘어잡는 것 같습니다. 세상을 공부하는 일은 경험하는 것만으로 너무 부족합니다. 그 부족한 경험을 대신할 수 있는 일이 공부라고 생각해요. 덜 불안해질 수 있거든요.

 

“나는 페미니스트입니다."

 

이런 선언이 필요한 시기, 페미니즘이 보편성을 획득하기까지 과정이라 생각해요. 민주주의 사회에서 산다고 해서 “나는 민주주의자입니다!”라고 선언하진 않잖아요. 보편으로 인식되고 있는 개념이 되었으니까요. 그런데도 민주주의는 늘 위기에 봉착합니다. 얼마 전까지 우리는 광장에서 민주주의를 외치며 그 사실을 공고하게 만들기 위해 투쟁했던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페미니즘이 그런 과정을 겪고 있는 거죠.

 

그 많은 페미니즘을 공부하면서 현재 한국에 있는 대학에 여성학과는 어떨까 궁금해서 찾아봤죠. 여성학과를 폐지하는 대학이 늘어났어요. 200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영향으로 한국의 대학은 오히려 순수 학문을 외면하는 정책을 우선으로 하더군요.

 

나는 ‘인간’ 보다 ‘자본’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더 크게 사람들을 끌어당긴 것으로 생각해요. 인간보다 자본이 우선되다 보니 자본주의가 강성해진 것을 사회 각 분야에서 쉽게 찾아낼 수 있습니다. 대학의 기업화가 진행되면서 학문을 탐구하고 연구하는 대학의 역할은 찾아보기 어려워진 겁니다. 교육이 변하는 사회속도는 아주 느립니다. 그러니 나부터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나아갈 힘, 통찰할 수 있는 앎이 필요합니다.

 

긴 터널을 지나 선생님이 된 세 청년에게 『페미니스트 선생님이 필요해』에 간절한 마음을 담아 건네는 일로 2월을 열었습니다. 적어도 내 주변에 페미니즘을 공부해 청소년들과 유쾌함을 나눌 선생님이 있어서 그 많은 페미니즘 이야기를 계속할 이유는 늘어만 갑니다.

 

Posted by 보랏빛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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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많은 페미니즘 이야기] 01화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에서 못다한 이야기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는 소설가이며 1977년 나이지리아에서 태어나 자랐다. 열아홉에 미국으로 건너가 문예창작을 전공하고 인종, 이민자, 여성에 대한 문제를 주제의식으로 삼은 소설로 평단의 각광을 받으며 영미문학을 이끌 차세대 작가로 부상했다. 이 책의 원본이 된 TED강연은 유튜브에서 250만에 육박하는 조회수를 기록하며 화제를 모았고, 팝스타 비욘세의 노래에 피처링되기도 했다. 스웨덴에서는 이 책을 전국의 모든 고등학교 2학년에게 나눠주고 성평등 교육의 교재로 삼고 있다.

 

“우리가 어떤 일을 거듭 반복하면, 결국 그 일이 정상이 됩니다. 만일 남자들만 계속해서 회사의 사장이 되는 것을 목격하면, 차츰 우리는 남자만 사장이 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여기게 됩니다.

 

내가 생각하는 세상이 현실과 다르다고 알게 된 것은 십 대부터였다. 페미니즘이 무엇인지 알기 전에 여자로 태어났지만 ‘나’로 살아가기를 원하는 삶에서 선택은 문학에서 얻은 깨달음이었다. 버지니아 울프와 시몬 드 보봐르, 루이제 린저와 F. 사강, 전혜린의 책을 읽으면서 나는 ‘인간’으로 살았다.

 

내가 자연스럽게 여기던 것들은 현실에서 부자연스러웠고 “여자인 내가 너를 이해할 수가 없다.”는 말이 익숙하게 될 즈음 부자연스러워서 오히려 자신을 숨기는 일은 나를 드러내는 일보다 더 쉬웠다. ‘나’를 숨긴다는 의미는 이십대까지는 ‘세상 모르고 산다’는 것을 표현하는 일이고 친구들에게 아나키스트라 불리는 것에 더 익숙한 시절이기도 했다.

 

내가 원하는 세상이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에 분노하거나 저항하는 일보다는 ‘나’를 지켜내는 일에 몰두했다. ‘나’로 산다는 것은 ‘홀로 주체’가 된다는 일이고 혼자서 거의 모든 선택을 한다는 것이기도 했다. 오히려 동성 친구에게서 ‘나’를 존중받는 일이 고단했던 기억이 많다. “왜 화장을 안 하니?” 결혼식 당일까지 무던히도 들었던 대표적인 말이다.

 

남들과 다른 내 삶을 좀 더 객관화할 수 있던 시기는 결혼 후 사회 활동을 하면서였다. 아, 어떻게 남편이 일방적으로 휘두르는 삶에 적응하며 살 수 있는 거지? 결혼하면 나는 존재할 수 없다니. 자주 떠오르는 물음이었다. 이제는 나로 살아가는데 필요했던 힘을 드러낼 수 있는 의지를 발휘하며 산다. 21세기에 서 있는 나는 이제 그렇다. 나와 교류하는 사람들에서 자연스럽다.

 

“그들에게 나도 남자와 똑같은 인간이라고, 나도 똑같은 인사를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것은 그저 사소한 일이지만, 때로는 사소한 일이 가장 아픈 법입니다.

 

직장인으로 살아보지 못한 내가 겪는 분노이기도 하다. 지난해까지 ‘을’이라 지칭되는 집단이나 개인으로 서 있던 시절이 거의 없는 셈이다. 나는 노동의 가치를 다르게 인식하며 살았기에 나에게 노동은 놀이와 같다. 내가 좋아하는 일로 먹고 살고 자유롭다. 이 점에서 늘 나는 겸손해진다. 얼마나 큰 행운이던가. 그 행운은 ‘나’로 살아온 시절이 있었기에 가능한 준비된 자에게 온 행운이기도 하다.

 

책을 좋아해서 쌓아둔 책이 나를 먹여 살리는 일을 할 것이라고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나는 책을 읽는 일이 일상이고 밥벌이다. 그 자격은 사회에서 얻은 것이 아니라 아주 사소하다고 여기는 내 취미활동으로 기록되곤 하던 독서였다. 이 사소하다 여기는 취미로 내가 가장 아팠던 일은 꽤 많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아버지의 분서갱유다. 직접 진시황제처럼 책을 불질러버린 사건은 아니여도 내게는 가장 큰 아픔이었다. 집안에 있는 책들을 아파트 현관문 밖으로 다 내던지시며 시집이나 가라는 말씀. 당시까지 아버지는 개방적인 분이셨고 미래지향이셨던 분이기에 상처가 컸다. 그런 아버지 덕분에 결혼을 결심하게 되었는지 모른다.

 

더럽고 치사해서 결혼 한다 내가. 후후. 아버지는 그 후 1년이 되기 전에 세상을 뜨셨다. 어머님의 위안은 이렇게 이어지곤 한다. 다 네 아버지가 떠날 때가 돼서 마음이 급해서 막내딸 손잡고 결혼식장에 들여보내기 위해서였던 것이라고. 내 어머니도 당시에는 드물게 맞벌이를 하며 독립적인 여성이었다. 이런 일들은 현실에서 늘 덜그럭거리는 불협화음이다.

 

“지금보다 좀 더 공정한 세상을, 스스로에게 좀 더 진실함으로써 좀 더 행복해진 남자들과 좀 더 행복해진 여자들이 살아가는 세상을.

 

이 부분이 그 많은 페미니즘 이야기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슬그머니 넘어갔다. 이 문장을 서 너 번 소리 내어 읽으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굳이 남자와 여자들이란 말을 하지 않고 싶다. 성별 구분 자체가 너무 오랜 시간 편리하게 사용된 관념 덩어리이기에 모두가 더 행복해진 세상을 상상하면서 지금을 살아나고 싶다.

 

한국사회는 여자 남자로 성역할을 고정시켜서 모두가 힘들다. 남자는 남자라서 여자는 여자라서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자기 선택과 가치는 제쳐두고 사회에서 원하는 이름에 종속되곤 한다. 개인의 행복이 사회에서 무시되는 일이 너무 흔하다. 내가 행복하지 않은데 어떻게 타인의 행복을 말할 수 있는가.

 

나부터 행복해지기. 내가 웃을 수 있어야 당신도 웃을 수 있지 않은가. 같이 웃고 같이 울 수 있으면 된다. 페미니즘이 그 시작으로 된다면 세상은 겉으로 드러난 화려함보다는 안으로 채워진 나의 가치와 공감으로 변화 가능성이 지속되고 새로운 문화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여자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야망을 품는 것은 괜찮지만 너무 크게 품으면 안 돼. 그러면 남자가 기가 죽을 테니까.

 

남자의 기를 살리기 위해서 야망을 너무 크게 품으면 안 된다는 말은 여자의 희생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문화를 만들어 왔다. 한국사회에서 아들, 특히 장남을 위한 희생이 미덕처럼 여기던 시절을 지나온 현재까지도 가족에서 딸, 굳이 장녀를 위한 희생은 거론되지 않는다.

 

맏딸은 살림밑천이란 말을 종종 들으며 성장한 기성세대로서 남아선호로 인한 편애는 어머니 교과서의 한 부분이다. 어머니 교과서 개정판은 은밀하게 희생을 강요한 사회에 맞서는 일의 하나로 강한 어머니에게서 딸로 이어져 오기도 한다.

 

‘너는 엄마처럼 살지 말아’라는 말이 가슴 한 편에서 메아리칠 때가 있지 않던가. 강한 어머니는 당당하게 불릴 수 있어야 했던 이 땅의 페미니스트였다.

 

“다리를 오므리렴. 몸을 가리렴. 우리는 여자아이들에게 여자로 태어난 것부터가 무슨 죄를 지은 것인 양 느끼게끔 만듭니다.

 

여자라는 이유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은 남자이기 때문에 신경 쓸 필요가 없는 일이기도 하다. 대체로 타인의 시선에 몸을 사리고 방어막을 두르기 시작하면 소통할 수 없는 사회로 이어진다. 결국, 불통에서 생산된 말들이 모여들면 한 더미의 쓰레기 처리장처럼 냄새를 풍긴다.

 

‘혐오’라는 말로 ‘충’이라는 말로 인간임을 스스로 내던지는 일을 거침없이 하기도 한다. 유전자의 다름으로 구분하기 전에 같은 사람으로서 조화를 이루는 일은 유토피아처럼 여긴다. 이 문장들은 노르웨이 작가 게르드 브란튼베르그의 『이갈리아의 딸들』에서 새롭게 다가온다. 나와 당신이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가슴을 후벼 팠으면 한다.

 

여자와 남자가 사회에서 어떤 상황으로 위치해 있는가는 모두에게 새로운 시선을 갖는 기회를 준다. 내가 선택할 기회조차 없는 상태에서 강제된 것이기에 여자, 남자라서 이렇게 해야 한다는 것은 사회 폭력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인류가 진보한다는 것은 어느 한 편으로 집중되는 발전은 아니다. 그런 사회구조에서 만들어진 문화가 변화하려면 주체로 선 내가 주체인 당신과 동행하며 얻는 가능한 변화이다. 페미니즘 공부는 가능한 변화를 위한 첫 걸음으로 좋은 선택이다.

 

“바로 그 점이 문제의 일부입니다. 많은 남자들이 젠더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생각하거나 의식하지 않는다는 점 말입니다. 겉보기에는 사소한 상황들에서, 남자들이 나서서 말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기를 드러 내는 일을 겁내지 않아야 한다. 그래, 말은 쉽다. 젠더 교육을 받아보지 못한 전 세대가 각자 의식하고 있는 방식으로 살아간다. 한국사회에서 ‘성sex’이란 말은 겉으로 편하게 주고받거나 나를 드러내는 말로 자리 잡을 수 없다.

 

‘금기’가 넘치는 사회라고 할까. 19금. 일상에서 자주 보이는 표식이다. 그것은 어쩐지 대상을 더 강조하는 표식이 되어 19금을 넘나드는 것도 일상이라 할 만큼 진부하다. 형식에 그치는 사회제도를 내가 순순히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것, 불공정하고 불공평한 사회제도를 그게 현실이니까 어쩌겠냐는 말로 대신한다. 원래 인생은 부조리해!?

 

사회 강자로 살아온 사람들이 나서서 부당하다고 외칠 이유는 넘친다. 이젠 그런 남자를 만들어야 하는 일부터 해야 하는 걸까? 이 점에서 ‘나’를 성찰해야 한다. 과연 나는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꾸역꾸역 해올 수 있던 것은 내가 자유롭기 위해서 멈출 수 없었던 이유가 크다.

 

페미니즘 공부는 나를 지금보다 더 자유로운 사람으로 만드는 데 아주 훌륭한 근거였다. 자유인으로 누리는 삶은 내가 여성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확실하게 정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더불어 나만 자유로운 세상을 나는 결코 원하지 않는다. 당신도 자유롭기를 바란다. 그래야 서로 신나게 놀 수 있지 않은가.

 

“문화가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문화를 만듭니다. 만일 여자도 온전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정말 우리 문화에 없던 일이라면, 우리는 그것이 우리 문화가 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안체 슈룹 글과 파투 그림의 『페미니즘의 작은 역사』를 참조하면 도움이 된다. 그림과 글로 비교적 쉽게 페미니즘 역사를 보여주는데 ‘하나의 페미니즘’은 존재하지 않으며 언제나 새로운 제안, 연구 결과, 그리고 지식만이 있을 뿐이라는 점을 말하고 있다. 내가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나누려는 의미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문화는 사회에서 약자들을 배제해온 문화였기에 모든 사람을 품어 향유할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지금이 바로 그 때이고 그 시작은 내가 먼저 첫 걸음을 떼면서 형성할 수 있는 아름다운 동행이다.

 

인류 역사에 일방적으로 내린 전 세계로 뻗친 뿌리를 흔들어야 한다. 모든 가부장제에 합류해 강한 협력을 조장한 자본주의에서 배제를 더 이상 참아낼 이유가 없다. 자본주의에서 외면당한 목소리가 내 안에서 숨죽이고 있지 않던가.

 

“그 순간 나는 친웨 아줌마의 성격에 모난 데가 전혀 없는 비결을 알아차렸다. 아줌마는 그것들을 몽땅 뭉개고 있었다. 아줌마는 무한한 아량의 바다였다.

 

남편이 나만큼 행복하길 원했던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은 그를 자유롭게 해주는 일이었다. 그 자신이 선택한 것은 성장하면서 자기 안에 쌓인 분노를 풀어내는 일이다. 길을 걷는 만행이었다. 그는 인도로 명상의 길을 떠났고 자기와 마주함에 온전하게 시간을 보냈다. 그와 동행하는 여행자들로부터 ‘부처’라는 허무맹랑한 호칭이 내게 붙었다.

 

내가 충분히 행복한 생활을 누리기에 남편도 그럴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 결과. 남편의 길 떠남이 가져다 준 것은 가족 부양의 책임이다. 당시 나는 충분한 능력이 사회 분위기와 맞아서 큰 어려움이 없었다.

 

이 과정에서 오히려 결핍은 아이들에게서 생겼다. 두 어른의 결정만으로 세 아이들은 각각 아버지 부재라는 일상의 결핍에 힘든 성장기를 거쳐야 했다. 특히 남자 아이가 겪어야 했던 결핍은 한국에서 남성으로 살아가는 일이 자신과 다를 때 혼란을 주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이 땅에 부모라는 말로 가해지는 사회폭력은 얼마나 이기적이던가.

 

친웨 아줌마처럼 나는 무한한 아량도, 타인에게 말할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어서 선택한 것도 아니다. 나는 그의 불행이 어디에서 시작하는지 몰랐고 그 스스로 찾아내주길 바란 이기심이 먼저였다. 물론 나는 관용을 미덕으로 여기는 사람이다. 그 이면에는 ‘나’의 공감과 만족, 지금 이대로 행복할 수 있는가에 달린 점을 빼놓을 수가 없다. 나를 위해 화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과 나를 위해 가장의 무게를 내려놓을 수 있게 한 관용으로 덮은 자기애와 비슷하다.

 

“왜 아줌마는 단정하게 반응해야만 존경받을 수 있었을까? 왜 아줌마는 모욕에 직면하여 세상에 대고 분노를 표출하지 않았을까? 왜 아줌마의 완벽함은 아무것도 받지 않는 것에 달려 있었을까?

 

사회에서 원하는 모습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끊임없이 자기관리를 필요로 하는 고된 일이다. 외모지상주의에서 학벌주의 등 나를 에워싼 사회에서 요구하는 나는 애초에 가능하지 않았다. 그 사실을 나는 인정하는 일부터 하면서 비로소 ‘나’로 살아가는 시간에 몰두할 수 있었다. 그 힘은 아무리 둘러봐도 평생의 벗으로 늘 곁에 있어준 책이었다. 문학에서 만난 여성들의 목소리는 나를 자연스레 “한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지극히 당연한 일을 선택 가능하게 해 주었다. 이제, 비로소 ‘나’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넘치기를 바라면서 2018년을 열고 있다. 그대, 함께 가시려나... .

 

[덧붙임]

팟캐스트 <그 많은 페미니즘 이야기>를 송출하고 못내 아쉬운 점들을 후기로 정리해 보니 마음의 무게가 덜해진다. 평생 공부를 하면서 남은 삶을 잘 짓고 싶은 마음. 이 방송을 듣고 이 글을 읽는 이들 모두가 페미니즘 공부 효과를 같이 나눌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삶은 보이지 않는 길 위에서 스스로 한 걸음 딛고 걸어가는 ‘선택’이 연속되는 낯섦과 두려움에서 이어지는 거였다. 나는 노마드의 삶을 즐기는 중인데 그 가운데 함께 나눌 페미니즘 공부로 새로운 세계를 꿈꾸기 시작했다.

Posted by 보랏빛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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