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멧새 한 마리

 

또 곁에 온 한 마리

 

지즐대는데

 

 

[세월호 참사] 2주기 지나 2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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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랏빛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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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들과 자긍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눕니다. 자신의 모습을 찾아가는 시기에 아이들에게 자신을 마주할 시간이 없다는 것을 어찌 설명해야 할까요. 학교생활과 사교육, 그 이외에는 개인들의 선택에 따라 작은 오락거리가 전부였습니다. 친구들과의 시간도 많이 가질 수 없는 한국사회는 참으로 바쁘게 살고 있는 모습들입니다. 시간이 없어서 책도, 운동도 할 수 없는 아이들부터 청소년, 거의 모든 세대가 저들만의 바쁨으로 시간을 보냅니다. 우리는 왜 이리도 바쁜 거지? 문득, 떠오르는 질문에 정답은 물론 없어야 합니다. 세대별로 다르지만 꽤 타당한 이유는 있죠. 허나 그 이유들을 뒤로한 채 거부할 수도 있기는 합니다.

 

내가 머무는 이 사회는 어떤 곳인지 생각해보면 나라는 없고 만 있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그리고 내 주변인들과 지인들, 같은 곳을 바라보며 말을 나눌 수 있는 이들, 일과 관련된 이들도 있고요. 일이 삶을 위한 것인데 외롭고도 참으로 지독하다는 생각도 합니다. ‘한국인으로 나는 어떠한가. 당연히 누려야할 국가에 대한 그 느낌이, 그 절절한 마음이 없더라구요. 어떠신가요? 안타깝게도 내가 살아가고 있는 시간동안 조국에 대한 열렬함을 표출하는 이들은 거의 없었습니다. 스포츠에서 활약하는 그 기간 동안을 빼면 자랑스러움이 없다 합니다. 작은 영웅들의 활약에서야 한국인이었다는 것을 깨우치게 된다는 것이지요.

 

 

 

 

이숲의 스무살엔 몰랐던 내한민국은 미처 알 수 없었던 내 나라, 대한민국을 다시 만나게 해 줍니다. 19세기 말 20세기 초는 지구상에서 탐험되지 않은 땅이 거의 없을 정도로, 세계 구석구석이 서구 팽창주의자들의 눈에 의해 샅샅이 탐지되던 시기였습니다. 그 시기는 서양에 의해 동양을 탐구하는 시기로 담론을 생산하는 쪽과 대상 간에 힘이 동등하지 않으면 그 관계는 주인과 노예같은 일방적인 관계가 된다는 것이 저자의 말입니다. 한국은 자신에 대해 말하고 싶어도 말할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강자는 쓰는 자, 약자는 쓰이는 자로 말이지요. 나는 쓰이는 자일까요, 쓰는 자일까요. 쓰이기도 하고 쓰기도 하면 될 것 같습니다.

 

패권의 시대, 한국은 역사의 약자였죠. 구한국 조선은 제국주의 시대의 역사에서 한때 흔적없이 지워진 나약한 종족이었던 것이지요. 한국은 부패해서 망할 수밖에 없었다거나 그때는 제국주의 시대였다고 치부해버리기에는 패권적 논리에 부당한 게 너무 많아서 관심을 갖게 되었답니다. 그렇게 해서 이 책이 출판되었다고 스웨덴에서 유학을 하던 저자는 서문에서 밝힙니다. ‘민족을 넘어 인류의 보편적인 시민의식을 품어야 할 오늘날, 한 종족의 긍정성을 끄집어내는 것은 시대에 역행하는 일이 아님을 전합니다. 내가 살아가는 시간 대에 놓여진 한국사회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들은 오래 전부터 학습된 서구의 시각임을 말합니다.

 

그들의 편에서 개인들의 탐욕에 불을 붙여온 자들의 한국이었음을 생각해 볼 수 있어야 했던 것이지요. 우리는 왜 한국인으로서 당연히 지녀야 했을 자긍심을 가질 수 없었을까요. 오래 전에도 진짜 한국인의 얼굴을 본 서양인들이 있습니다. 19세기 말 영국 정치인 조지 커슨은 하얀 옷이 매우 독특하고 강렬한 인상을 주어 배 위에서 바라보면 백조들의 무리같다고 하며 상상력을 발휘하기도 했습니다. 또 이자벨라 버드 비숍은 서구인들 중에서 한국인을 가장 열심히 탐구하며 긍정적인 면들을 발견해내기도 했습니다. 외부에서 바라보는 시선이야 아무려면 어떤가요. 중요한 것은 내가 알고 있는 진짜 한국인의 모습이겠지요.

 

스웨덴의 신문기자 아손 그렘스트는 1904년 한국을 다녀가고 나서 한국인과 교류했던 그의 시선으로 강자 위주로 흘러가는 세상의 조류에 대해 탄식하는 글을 남겼습니다. 구한말, 한국인의 지나친 호기심에는 두려움도 섞여 있었다며 한국인들의 태도를 자유롭고 품위있는 것으로 생각했다는군요. 그 당시에 한국은 세상에서 티베트 다음으로 알려지지 않은 나라였으며 고작 알려진 것은 백의흑모뿐이고, 나머지는 베일에 가려 있었다고 말합니다. 19세기말부터 한국을 찾은 서구인들은 거의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내면에 깃든 한국정신을 알아차리기는 어려웠던 것만은 확실한 듯 합니다.

 

내가 의식하지 않는 한국정신은 때로 서구인들에 의해 잘못 이해되거나 합리적인 이성의 시대에 맞게 재단되어 왔던 것이지요. 한국인만의 정서를 저자는 외국에서 살면서 찾아냈다고 합니다. 왜 한국에서는 불가능한 일들이 저 멀리 있는 스웨덴에서 가능했던 것일까요. 한국사회 내부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나 하는 역사의 현장들을 따르다 보면 그 해답이 보입니다. 한국의 풍습과 잠재력 있는 문화, 다양한 감각에 뛰어들었던 것을 애써 막지 않았던 합리적 이상주의자들의 면모들이 있습니다. 이런 한국인의 기질들이 다시 살아날 그 때, 공동체를 위해 쓰이는 자로 나의 필요에 의해 쓰는 자로 살아날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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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랏빛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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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만족도에 따라 사람들은 과거를 바꿀 수만 있다면 바꾸고 싶어 할까... 조앤 롤링과 두 명의 작가들에 의하면 그런 것 같습니다. 현재가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말입니다. 혹은 누군가에게 자신이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모험을 하기도 하겠지요.

 

시간여행자인 나는 특히 그런 마음을 알 것 같습니다. 물리적인 이동을 원하는 것이 아닌 까닭에 다르긴 합니다만. 시간여행을 타임머신으로 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은 욕망이 꿈틀댈 것도 같습니다 

 

조앤 롤링의 해리포터 탄생부터 볼드모트의 죽음까지를 지켜본 독자들과 영화를 본 사람들의 아쉬움과 설렘은 나만큼이나 큼직했을 겁니다. 책의 시리즈 예약판매를 기다리면서 먼저 나온 외서들을 번역해서라도 빨리 읽고 싶었던 그 간절함이 다시 스륵 밀려듭니다.

 

이번 책 역시 그런 설렘으로 보내고 책이 도착하자마자 읽습니다. 이번 시리즈는 대본입니다. 이미 연극으로 상연까지 했다는데 과연 한국에서도 상연될 수 있을까? 아니면 영화 제작으로 이어지진 않을까? 주말 내내 그들의 이야기에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드디어, 무인카페에 함께 시간을 나눌 세 사람이 등장했습니다. 오랜 기다림이라 생각하지 않았는데 너무 이른 만남의 시간을 맞아 사실은 흥분이 되더군요. 거의 모든 일은 마음에 달린 것에서 시작된다는 믿음이 증명되었다고나 할까요. 늘 그랬습니다. 어떤 일을 상상하고 기획하고 실행하면서 기다리는 일만은 전문가가 되었답니다. 지극한 마음이면 이 일만큼 설레는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다음 주부터는 책 한 권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며 공부하기로 했죠. 시국이 시국인지라 박성호의 어쩌다 한국은으로 현재의 국정농단 사태가 일어날 수 있었는지를 알아가는 시간이 될 겁니다.

 

 

, 삶은 기다리는 시간 내내 설레면서 힘을 얻는 순간의 커피 향기 일지 모르겠습니다.

 

 

Posted by 보랏빛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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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절대 하지 마! 과연 애정 어린 덕담일까. 정치는 사익 추구라는 생각으로 접근해 본다. 공익을 위한 정치는 이 나라에서 찾기 너무 어렵기에 더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시선 잡기쯤으로 해 두려 한다. 정치는 뭔가? 그동안 막막하게 접근했던 시선을 현재 내 생각을 기준으로 해 본다. 나를 위해 정치를 한다고 말하니까 정치하게요? 하는 질문부터 정치인도 아니면서까지 다양한 말들이 들린다.

 

우선 를 위한 정치의 순서를 생각해 본다. 먼저 사회에서 이슈로 오르내리는 일들에서 스스로 분노 조절이 가능할 수 있는가이다. 불의에 들끓는 청춘도 아닌 시간대에 있는 인간에게 분노 조절이 안 된다는 의미는 일면 자기 분노조절 장애 같기만 하니까. 나이 들먹이며 꼰대 소리 듣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인간으로 근거 있는 일에 분노하려고 무진 애를 쓴다.

 

두 번째는 사회에서 덜 건드렸으면 하는 사생활 영역이다. 내가 무엇을 하건 내 자유 의지의 발동에서라면 그 책임도 내가 지겠다는 의미이다. 이 영역을 국가가 나서서 지나치게 법 조항으로 규정해버리면 개인의 자유권이 심하게 위축된다. 이 이유만으로도 나는 현 정부가 얼마나 시대 감각이 없는 집단인가를 주저 없이 따질 수밖에 없고 분노 조절에 심장이 벌떡거린다.

 

세 번째는 노동이다. 잘 누리며 살기 위해 일이 필요한데 그 일로 하여 내 삶이 황폐해진다는 것은 너무 부당하기에 그렇다. 내게 필요한 만큼 노동할 시간의 선택권이 당연해야 한다는 점이다. 나는 노동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도 생각한다. 내가 좋아하는 일만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 생존을 위해 일할 권리, 그 사회권은 자유권이 보장되지 않는 사회에선 어림 반 푼도 없다. 나의 능력으로 하는 일이 타인의 기득권에 의해 침해받지 않는 정당한 대가를 받아야 하는 노동환경이다. 이 세 가지가 내가 정치를 하는 목적이다.

 

정치 문제로 대화를 나누게 되면 회피하거나 그건 정치인이 알아서 할 문제라며 외면하곤 한다. 아마도 피차 모처럼 만나서 열 내며 얼굴 맞대고 지껄일 노력의 수고를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는 그동안 어떻게 잘 지냈느냐고 묻는다. 못 지냈어, 열 받아서. ?라고 묻는다. 정치 때문이라 응수하면 에이, 그러니까 참 피곤하게 살아, 하며 웃어준다. 마주하지 않고 옆에 앉아 있다면 오른팔 뒤꿈치로 명치를 때릴 수 있을 텐데.

 

궁금하다. 어째 정치는 없고 정치인만 동동 떠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대중은 왜 대표 정치인에게 해바라기를 할까. 선거는 이기는 게 목표니까 인물론으로 기선을 제압해야 하는 거라고 누군가 말해주던데 그게 영 석연치 않았다. 그렇게 해서 계파 갈등이 생기고 그것이 분열이란 말로 부정적인 프레임을 만드는데 싶었다. 내 머리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였고 정치인이라는 말에 오랫동안 주입된 한국사회의 학습효과 결과물의 하나로 이해하기로 했다.

 

그러니까 정치인에게 속지 않으면 될 것 같다. 그러려면 정치를 나의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미가 된다. 그들의 것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나의 것을 지키려면 더 열심히 고민하고 나를 대신할 인간을 선택하게 될 테니까. 정치 집단이라는 관계에만 집착하게 되면 비판이 사라지지 않을까. 비판 없는 정치는 단절이다. 새누리당의 일관된 모습의 집단주의는 비슷한 견해를 지닌 인맥으로 벽을 친다. 그 벽에 무력해지는 건 야당의 몫처럼 되어 버렸다.

 

대체로 두 개의 프레임으로 가면 아주 쉽다. 오지선다형 시험이 쉽지 않은 것이 그렇다. 이거 아니면 저거다. 얼마나 산뜻한가. 확률도 높다. 자그마치 50%이다. 벼락치기로 절반의 행운을 늘 끌고 갈 재주만 있다면 크게 힘들이지 않아도 제법 괜찮은 결과를 도출할 수 있게 되니까. 그런데 정치는 시험 답안지처럼 만들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오지선다형쯤일 정당 선택 문제를 풀기 위해 나의 정치를 도와줄 정책과 책임감 있는 정당 찾는 일과 대의해 줄 국회의원을 이용해야만 가능하다. 내가 적극적으로 할 수 있는 투표는 지금을 바꾸는 것은 분명 아니다. 무엇이든 섣부른 기대와 너무 빠른 결과를 원한다면 다시 반복되는 정치 혐오와 냉소는 별 도움이 안 되며 오히려 원하지 않는 정치 환경을 제공해 주기도 하니까. 그동안 겪을 만큼 지나온 시간이 있으니 장기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한국사회에서 보수와 진보라는 말의 힘은 사라졌다고 본다. 다만 그 말의 힘을 살리기 위한 사람들이 있기에 나는 아직도 진보와 보수가 균형을 이루는 정치판을 기대한다. 2016년 총선을 지나면서 지난 4년 간 국회의원으로 제 역할을 충실하게 해온 국회의원을 우선 선택했던 것일까? 나는 4선 이상의 국회의원들이 부디 다음 총선에선 자발적으로 물러나서 젊은 정치인을 위한 아낌없는 노력을 해주었으면 한다. 자연스럽게 물갈이라는 말과 혁신이라는 말을 꺼내 들 필요도 없어진다. 그만큼 세대의 불협화음이라는 잡음이 사라진다는 의미이다.

 

국회의원 4번이면 충분한 기회의 시간이었고 그러고도 부족하다면 내 뒤에 서 있는 젊은 정치인들의 손을 잡아 이끌어주면 된다. 새로운 인재의 영입만이 부패하여 죽은 정치를 살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다. 그들의 역동성이 시스템의 고착화를 걷어낼 수 있지 않을까. 부평초 같은 민주주의를 걷어내고 생기 있는 건강한 묘목들을 정치판에 심을 노력이 요구되는 시대임을 모르지 않을 것 같다. 기성세대가 가르치기보다는 젊은 세대의 삶에서 배우기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

 

민주주의가 이식되는 과정에서 그 건강함은 위장이었고 땅속으로 들어가 불량한 뿌리 내림을 지금까지 키웠을 뿐이다. 그 썩은 뿌리를 캐내 버리고 새로운 뿌리 내림을 위한 자체 세력을 키우는 일과 텃밭을 내어주어 그 묘목을 지켜줄 바람막이로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적어도 한 세대 이후에는 건강한 민주주의로 세대 간의 활기가 넘치는 이야기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자연스러운 세대교체는 그 사회를 건강하게 만들 시작이다. 나는 너무 늦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Posted by 보랏빛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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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년 전입니다. 초판이 발간되기가 무섭게 책을 구입해서 읽고 2015년 젊은 벗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죠. <호모 아카데미쿠스>의 에피소드로도 녹음을 해 팟캐스트로 방송을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다시 한번 밑줄 투성인 책을 갖고 홀로 무인 카페에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박성호의 어쩌다 한국은대한민국 대통령의 퇴진을 외치고 있는 광장을 예견하는데 무리가 없는 한국 사회의 지나온 시간이 만든 현실을 이야기합니다. 이런 일련의 지난 과정에서 안하무인의 현 정권이 뻔뻔하게 버티고 있는 결과를 가져왔던 겁니다. 지금 다시 이 책을 톱아보면서 현실을 직시합니다. 다시 정신 무장을 위해 이 책을 펼칩니다.

 

 

 

 

 

 

다시 책을 펼치니 목차의 1강부터 8강까지 사회 각 분야마다 마지막 이야기 제목에 밑줄이 그어져 있습니다. 1'노동-우리의 일자리는 어디로 사라지는가'에서는 기본소득이라는 대안의 구상을 말합니다. 저자는 좌파와 우파 상관없이 자본주의 체제에 브레이크를 걸 수 있는 대안의 '기본소득'을 꺼내는 이유로 두 가지를 말합니다. 첫째는 자본주의가 위태로운 상황으로 달려가는 것이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기 때문이라는 거죠. 둘째는 이 상황을 완화하거나 붕괴를 늦출 수 있는 아이디어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기본소득에 관해서 저도 관심 있기에 책을 읽고 쓴 글을 참고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2강에서는 '역사-갈등의 뿌리, 반복되는 역사의 모순들'에서 정치를 말합니다. 우리 정치가 지금 제 구실을 못하고 있기에 '제대로 된 정치'의 절실함을 말합니다. 이 책이 201611월의 현재를 바라보는 시선에 근거를 설명하며 갑작스레 만난 상황이 아니었음을 이미 예견된 결과임을 알 수 있게 도와줍니다.

 

이 책을 소개하는 것은 책의 리뷰를 쓰는 목적보다는 이 책이 출간된 지 1년이 된 시점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책을 만나 자신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간절하기 때문입니다. 3강부터 8강까지 이어지는 이 책은 정치, 언론, 종교, 교육, 국방, 미래로 이어집니다. 그 미래, 선택은 우리에게 달려 있다는 겁니다. 사회 각 분야가 어떻게 국정농단을 마음 놓고 하면서도 존립할 수 있었는지를 아주 쉽게 풀어놓았습니다.

 

어쩌다 한국이 이모양이 되었는 지를 기억하고, 어떻게 해결해 나아갈지 결정하고 연대해야 할 시간이 바로 "지금"입니다. 저자는 미래 시민의 덕목으로 제너럴리스트가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제너럴리스트는 사회의 일반적인 내용을 다 아는 사람, 그러니까 아주 얇고 넓게 아는 사람을 뜻합니다.

 

 

 

 

절망이 이렇게 이어져 와 박근혜 퇴진을 외치는 광장의 100만 시민이 있게 되었다면 이제는 희망을 만들 시간입니다. 급변하는 시대에 나의 정서가 어느 시대에 머물러 정체되어 있는지 스스로 성찰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기도 합니다.

 

오늘도 무인 카페는 낮게 흐르는 음악과 기분 좋은 커피 향기만 있습니다. 이 시간을 나눌 누군가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오늘도 대한민국의 희망에 힘을 보탭니다. 다시, 광장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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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은밀한 순간,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나의 꿈 이야기가 있긴 한 건가요. 꿈을 이룰 수 없는 나라에서 그 모든 원인은 항상 나에게 해당하는 것으로 여기며 살았던 것은 아니었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아닙니다. 꿈을 잊어버린 이유는 이 영화에서 만날 수 있었던 것처럼 두려움이었습니다. 누군가에겐 갖춰진 것들이 내게는 없다는 이유일 수도 있고 미리부터 포기해버린 나에게도 있는 거였지요. 어쩌면 내 꿈을 포기하게 한 것은 아예 없었던 건지도 모릅니다.

 

아직도 꿈은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라 생각을 합니다. 다만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일 수 있는가에 달린 문제임을 알아차립니다. 이제는. 사회구조, 시스템에서 빠져나올 용기만 있다면 사회에서 주입한 허위 욕망을 품지 않는다면 내 꿈은 이루어질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것이지요. 나의 꿈이 사회에서 인정받아야만 한다는 강박과. 그 욕망에 시달리며 지낸 청춘의 시간이 널브러져 있으니까요. 꿈은 이루는 것이 아니라 지금 가슴에 품은 마음으로 우적우적 걸어가는 순간인지도요.

 

 

세 개의 달이 보이던 날, 세 우주가 모이고 각자의 우주를 품고 이 영화는 끝납니다. 70번쯤 반복될 내가 태어난 그 날, 내 우주는 또 누군가에게 하늘에 있는 달의 얼굴로 전해질 수 있을까요. 내가 이루려 하던 꿈이 아직 조각을 다 맞추지 못하고 이 땅을 떠날 때 누군가에게로 그 꿈은 이어지기도 할 겁니다. 꿈은 나와 아직 만나지 못한 누군가를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할 것이니까요. 나의 과거가 현재의 나를 있게 한 것이지만 이십 대의 불안함에서 도망칠 수 있는 사람이 많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불안은 정신적인 것이고 그 정신인 자기 자신으로부터 도망칠 수는 없을 테니까요. 자기를 사랑한다면 불안도 사랑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그런데도 그 불안에서 도망치려 하는 내가 있기에 사랑을 무작정 따르기도 힘들다는 거겠지요. 삶의 의미는 생존하기 위한 소유를 바탕으로 생겨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생존의 위기에서 삶의 의미 따위는 별로 관심이 가지 않으니까요. 먹고살기도 힘든데 의미가 있건 없건 일을 해야 돈을 벌고 그래야 생존이 가능할 수 있다면 삶의 의미 따위가 무엇이 문제일까 싶은 거지요.

 

생존에 위협을 느낄 때 감정은 불안이 아니라 공포일 겁니다. 공포 앞에서 삶은 본능적으로 움직이게 되겠지요. 우선 살아야 하니까요. 그렇기에 생존에 문제가 없을 때 오히려 불안에 시달리고 벗어나기 위한 움직임을 하기도 합니다. 결국, 삶의 의미는 불안과 함께 찾아드는 삶의 질과 연결되는 문제였습니다. 늘 반복되는 것 같은 일상과 사람들과의 마주침도 내 안에 남아있는 가슴 뛰게 하는 무언가가 없다면 그저 지나치는 시간의 연장일 뿐입니다. 결국, 생존하기 위해 평생을 보내는 경우에 나의 우주는 화석이 되어 빛을 낼 수 없다는 것이겠지요.

 

 

영화에서처럼 혼자 남을 부모가 아픈 상황에 내 꿈을 좇아 그의 곁을 지키지 못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요. 가족과 관계있는 일들에서 자유롭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가만 들여다보면 그 상황이 나를 잡아두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에 내가 머무는 것을 택했다는 걸 기억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가족이 나를 대신해서 살아주진 않기 때문이었죠. 나의 꿈을 향해 나아갈 때는 뜻밖의 걸림돌들이 있게 마련이었습니다. 결코, 순탄하게 자신이 계획한 미래는 오지 않는다는 것이기도 하고요. 다만 내가 아주 먼 미래를 확신할 수 없음에도 지금 너무 멀리 바라보고 있나 싶을 때가 많습니다.

 

당신의 우주는 아직 무사하신가요?

 

Posted by 보랏빛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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