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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슴에는 두 개의 감정들이 서로 엇갈리며 나를 못살게 굴고 있었다. 모처럼 주말을 18세기 소설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으로 만난, 뒤늦게 찾아온 절절한 사랑과 상실의 아픔으로 인한 지독히 낭만적인 감성으로 벅찬 마음이었다. 다른 하나의 마음은 바로 쿠바를 떠나며 남겨둔 혁명가의 마음이었다. 그의 마음은, 그의 정의를 향한 사랑은 결코 낭만적이지 않았다. 정의 사회를 향한 체 게바라의 혁명정신은 이 땅의 오늘을 바라보고 있어야만 하는 나를 조롱하는 것만 같았다. 이런 마음의 요동침을 고스란히 마주 하는 시간이다.


이제 스물 다섯인 큰애가 존경하는 인물이 ‘체 게바라’이다. 자신도 혁명 정신으로 살아가고 싶다며 그의 평전과 시집을 내게로 건넸다. 내키실 때 읽어 보라며 씨익 작은 웃음을 흘리고 타국으로 떠나 공부를 하고 있게 된 지도 벌써 4년이다. 난 서가에 꽂혀 있는 짙붉은 표지와 그의 얼굴이 그려진 ‘체 게바라 평전’을 보면 애써 외면해 왔다. 사실은 겁이 났던 게다. 이 책을 읽으면 나는 심한 혼돈에 빠질 것이고 그의 삶과 죽음을 떠올리는 것으로만 멈추지 못할 것 같아서이기도 했다. 그런데 결국 책을 펼치고야 말았다.


한 개인이 시대정신을 구현하기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허나 그렇다고 외면할 수 있는 것은 더욱 아니었다. 모두가 체 게바라처럼 행동하는 혁명가가 될 수는 없다. 허나 표창원 교수의 말처럼 냉소주의를 버릴 수는 있는 거다. 아주 쉽게는 아고라 청원에 서명하는 일일 것이고, 당장 일어날 것은 아니라 해도 결코 멈추어서는 안 될 일이기도 하다. 혼자의 힘으론 어렵지만 사실은 나부터 시작될 수 있는 일이기도 하지 않던가. 모든 변화의 시작은 무모한 듯해도 나로부터 시작될 수 있기에 서명을 하는 일부터 했다.


광장에서 타오르는 촛불과 각계에서 소리 내고 있는 시국선언들, 일상에서 개인적 투쟁을 향한 기운의 전조들은 체 게바라를 추모하는 노래와 함께 가슴속으로 쌓여지고 있다. 온갖 상념들이 눈 앞에 펼쳐지면서 표현할 수 없는 격한 마음과 함께 지난 밤을 엎치락 뒷치락하며 하얗게 지냈다. 여전히 작동되는 나의 이런 날 선 감성에 적잖이 스스로 놀라면서 내가 살아있다는 꿈틀거림을 다시 확인하는 거였다. 언론의 직무유기로 나타나는 지(知)의 세계와 무지(無知), 두 개의 현실 세계의 부조화 속에서 낯설게 살아가고 있나 보다.


혁명이란 말이 주는 의미는 좀 전투적이긴 하다. 허나 내게 혁명이란 말은 아주 친숙한 말이다. 가끔씩 나른해지는 나를 발견하곤 할 때면 어김없이 이 생명력 넘치는 말을 내뱉고는 해 왔으니까 말이다. ‘자기로부터의 혁명’은 지두 크리슈나무르티의 책 이름이기도 하다. 그가 책으로 전해 준 것은 스스로가 일으키는 내 안의 혁명이었다. 휘청거리는 청춘의 시절부터 스스로를 다그치고 설레는 말, 그것은 ‘혁명’이란 말이었다. 그 말을 되뇌이면 참으로 많은 얼굴들이 떠오른다. 오늘은 나와 함께 하는 너를 향해 혁명 정신을 말하고 싶어진다.


체 게바라는 결코 죽지 않았다. 그의 정신을 기리는 수많은 사람들이 노래로, 행동으로, 여전히 기억해 내고 그의 이름을 부르기 때문이다. 그는 이념을 초월하고 국수주의, 이기주의 같은 것이 없는 건강한 세상을 바랐다. 야만의 땅에서 비참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호하려는 아름다운 사람의 전형으로 휴머니스트일 뿐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으로 나는 국정원게이트는 정의를 위한 휴머니스트 혁명으로 이끌어 내야 한다고 생각하며 그를 떠올리고 있다. 정의를 향한 결연한 의지는 내재되어 있는 자신의 강력한 욕구에서 발휘될 수 있다.


나에게 그는 야성을 잃지 않은 사자와 같은 모습이다. 사회를 바라보는 그의 모습은 온화하다. 그의 야성이 깨어날 때 세상은 바람을 가르며 그에게 길을 내주게 될 것이라 믿는다. 우리에게 공동의 적은 누구일까. 나는 이 문장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우리는 적이 될 수 없기에 그렇다. 적으로서 마주할 대상이 아니라 함께 걸어가야 할 대상으로 진정한 삶을 향유할 수 있기를 원한다. 사람들이 서로 아껴주고 부둥켜 안고 살아가는 그 길을 가야 할 동행인이고 싶다. 우리 사회가 걸어 온 그 혼돈의 시간들에서 빠져 나와 체 게바라의 말을 전한다.


“인간은 태양을 향해 당당하게 가슴을 펼 수 있어야 한다. 태양은 인간을 불타오르게 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드러내 준다. 고개를 숙인다면 그는 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잃게 되는 것이다.”


삶의 참된 가치를 외면한 채 자본과 탐욕으로 길을 잃고 헤매는 우리 사회의 지도층들에게 체 게바라의 낮은 곳으로 향하는 혁명 정신을 오늘은 참으로 격하게 그러나 간절함을 담아 이야기 하고 싶다. 한 개인으로서 이 사회를 향한 사랑이 계속 될 수 있기를 나에게도 당부를 하며 남은 이 밤의 시간은 체 게바라의 시를 읊조리며 시간을 보내게 될 것 같다. 이 땅의 사람들이 지배 권력의 남용에 분노를 드러내는 다양한 모습들은 더 이상 우리 사회를 부정의로 몰아갈 수 없다는 결연함이다. 부당한 권력의 횡포 앞에 무릎 꿇을 수 없는 혁명정신의 불꽃이다.


>>>  이 글은 http://news.kukmin.tv/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Posted by 보랏빛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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