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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글'에 해당되는 글 134건

  1. 2013.07.22 ‘해병대 참사’ 분노의 1인 시국선언
  2. 2012.08.30 '학교'를 버리고 '시장'을 떠나라

지난 금요일 처음 접한 소식은 ‘훈련 도중 높은 파도 휩쓸려 5명 실종’이란 뉴스의 헤드라인이었다. 기사 전문을 읽으며 시작된 나의 촉수는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도 예민하게 발동되고 있나 보다. ‘태안 해병대 캠프’라는 익숙한 이름과 현재 사고가 난 학교와 연결된 십대들이 내 주변에 있기 때문이었다. 그 후로 속속 알려지는 이야기는 우리 교육의 부실함을 여지없이 드러내 주었다. 금요일 밤을 하얗게 지나고 나는 1인 시국선언을 트위터에 했다. 이런 것들이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하는 회의적인 생각이었지만 어떻게든 내 마음을 드러내지 않고는 견디기가 힘든 밤이었다.

나는 참을 수 없는 분노로 교육을 향한 1인 시국선언을 한다.
한 권의 책으로 엮어도 분량이 넘칠 이 나라의 잃어버린 ‘민주주의 공화국’의 정체성을 되찾는데 결연함이 확고하기 때문이다. 여러 분야의 시국선언은 현재까지도 넘치고 있는 사안들이다. 나는 어제 태안에서 해병대캠프로 공주사대부고 학생들에게 일어난 인재를 보며 교육의 위험 수위를 더욱 절감했다. 시급한 교육의 변화만이 민주주의의 가치 실현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하여 이에 참 교육을 위한 이 나라의 위급함을 직시하며 시국선언을 한다.

하나, 잘못된 교육제도의 희생에 교육부는 과거의 식민 교육을 멈추기 바란다.
둘, 교육의 주체는 ‘학생’임을 자각하기 바란다.
셋. 학생인권조례를 학교의무화로 하여 한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길 바란다.
넷, 학생의 자율권을 보장하길 바란다.
다섯. 향후 교육제도의 혁신을 위한 즐거운 혁명은 기성세대들이 책임지길 바란다.

미래를 향한 시선에 십대들의 삶은 실종되어 있다. 언제까지 외면하고 기다리라고 할 것인가. 사회 현안들에 시급함으로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나서는 지금 우리는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들을 놓치고 있다. 십대들의 신음과 무기력한 모습들에 시선을 맞추고 귀를 기울여야 한다. 기성세대들의 과거, 성공 신화의 허상에 압박을 느껴 스스로의 삶의 가치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 사회의 욕망이 아니라 개인의 욕망을 향한 삶을 향유할 수 있어야만 한다. 즐거운 학교로 총총 교문을 향해 당당하게 걸어 들어가는 십대들의 생기 있는 얼굴들이 이 나라의 희망이기에 교육의 혁신을 강력하게 촉구한다. 2013. 7. 19.

 


베스트셀러로 사람들의 입에서 자주 오르내리던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를 외면했던 것은, 아마도 개인적으로 그것을 읽을 때가 아니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발간되고 몇 해가 지나, 서가 한 켠에 자리 잡아놓고 있던 이 책을 두 해 전에 읽었다. 이 책은 스스로가 ‘엄마’라는 사실을 고스란히 느낄 때에야 가슴으로 절절하게 전해질 수 있겠다고 혼자 읊조려 보았다. 이 땅의 엄마들이 살아온 시간들의 모양새와 과정들은 달라도 ‘엄마’라는 그 호칭이 건네는 애닯고, 아리고, 고맙고 정겨운 말의 힘을 이 책은 벅차도록 뿜어내어 주었다.

내 현실과는 다른, 너무나도 다른 ‘엄마’라는 모습을 만났다. 가슴에 묻어 있는 나의 엄마 모습은 분명 아닌데도 눈물이 가슴 밑에서 부터 솟아 올라 거기까지만! 하곤 억지로 책을 덮었다. 이미 날이 바뀐 새벽에서 아침의 경계가 펼쳐지지 않을 것만 같은 느낌에 젖은 가슴을 닫아버렸다. 그 다음 날에도 가방에 넣고 다니며 가까스로 꺼내 마저 읽고, 또 가슴 가득 그 날들의 느낌들이 다시 튀어 나왔다. 그리곤 책을 덮고 스스로에게 이건 무엇이지? 물으며 가까스로 책의 여백에 빼곡히 써내려가며 아무래도 나이듦인가 싶기만 했다.

내가 그렇게 다시 올 수 없는 먼 길로 떠나갔을 때, 그 어느 날 나의 흔적을 찾아 헤메는 세 아이들의 모습이 가득 찬다. 이렇게 저렇게 흩뿌린 나의 흔적들을 아이들이 찾아내면서 이 책속의 아이들처럼 내 아이들도 그리 아플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더 많이 사랑한다고 표현하고, 부둥켜안고 살아가야 할 것 같은데 아이들이 멀리 있다는 것이 그 날만은 몹시 슬펐다. 나도 엄마는 엄마인가 보다. 그래 세 아이들의 엄마임에도 내 아이들에게 살갑게 해주지 못한 나를 만나게 해 주었다. 이런 내가 아이들에게 훗날 어떤 그리움으로든 남아질테지만 지금은, 지금은 내 앞에 아이들이 있었으면 했던 그 간절함에 잠 못 이루던 밤이었다.

‘엄마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째다.’ 이렇게 책은 시작된다. 책 속의 아이들이 만난 아픔과 내 아이들의 아픔이 함께 나에게로 몰려 와 홀로 있는 시간이 아주 낯설었던 생생한 기억들이었다. 이 느낌들은 그 시간들의 그 마음들이 이번 주말에 분노와 애통함과 절절함으로 아이들을 놓치고 망망히 바다를 바라보고 있을 부모들과 오버랩 되었다. 미리 알아차릴 수 없었던 죽음 앞에서 황량하게 남아있는 이들의 아픔들이 이 책에 녹여져 있어서였다. 늘 곁에 있었기에 눈치 채지 못했던 수많은 마음들을 어찌 진정시킬 수 있을까. 주변인인 나조차도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이 무기력하게 앉아 있는데 말이다.

열여덟 아들이 묻는다. 내가 그렇게 되었다면 엄만 어떻게 했을 거 같아? 태안 해병대 캠프참사 얘기를 나누다가 그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그렁그렁, 울먹울먹해져서 아무 말도 못하고 먹먹해 진 채 고개를 돌렸다. 난 상상력이 넘치는 인간이라 생각했는데, 이 상황은 아무리 떠올려 보려 해도 그저 까맸다. 엄만 기절해버렸을 거라며 웃는 아이가 순간, 날아가 버릴까 봐 한참을 바라보았다. 그래, 그런 거다. 모든 부모는 그런 거다. 어느 곳, 어느 아이, 할 것 없이 금지된 죽음이든 참사로 맞이한 죽음이든 같은 마음이다.

내 아이 네 아이의 문제가 아니다. 모든 부모는 그렇다. 아이들을 기억 속에서 더듬으며 오열하고 있을 부모들이 이번 참사에만 있었을까. 하루가 멀다 하고 들려오는 여린 죽음의 비보가 있어 왔다. 우린 무엇을 해 왔지? 난 이 기운에서 빠져나오려고 무진 애를 써 보는데 잘 안 되고 있다. 예정된 대학생들과의 번개모임도 취소하고야 말았다. 처박혀 있다 보면 나아지리라, 책도, 음악도, 트위터도 건성이다. 충분히 슬퍼한다는 것이 가능한 지 모르겠다. 슬픔은 시간을 이동하며 불쑥 튀어 나왔다가 슬그머니 내달아 도망가기도 하니까.

예전에 품었던 사회를 향한 모든 질문을 근본적으로 변경하거나 혹은 해체해 버려야만 한다. 교육과 사육. 돈 버는 기계와 돈 버는 인간. 무책임한 아버지와 독립운동가. 가족과 국가. 의무와 책임. 어디에 방점을 찍어야 할까. 우리는 늘 개인과 사회와 조화를 꾀하려고 노력한다. 그 조화는 공공의 선을 향한 가치 추구에 있기 때문이었다. 교육의 병폐는 발랄하고 건강한 아이들을 학교라는 곳에 가두어 안전망이란 구실과 학생다움이라는 저들만의 틀에 몰아넣어 길들여 온 것이다. 교육은 전 세대들이 책임을 다 하여 이끌어 주는 것이다.


>>> 이 글은 http://news.kukmin.tv/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Posted by 보랏빛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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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를 버리고 '시장'을 떠나라 >학벌없는사회/메이데이


                                      

 

 

                                          '학교'를 떠나라*~

 내 아이들에게도 건네기 어려운 말이다. 적어도 지금 이 사회에서는. 그야말로 학교 밖에서 만날 희망이 지금은 보이지 않기에.

그러나 그 희망은 사실은 보이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가는 것은 아닐까.

내게는 결코 낯설지 않은 내용들이지만 과연 이 책을 읽는 이들의 혼돈과 어지럼증은 어떤 마음의 변화를 오게 할 수 있을까.

 

 난 개인적으로 이 책을 만나는 시간 내내 '내 속에 웅크린 DaDa'를 불러내어 만났다.

이즈음 대한민국 고3 둘째의 갑작스런 진로 변화와 이탈, 저항에 동조하고, 스스로의 삶을 선택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도움과 서울특별시를 탈출한 내 인생에서 가장 탁월한 선택의 시간들을 들려 주었다. 서울특별시를 벗어난다는 두려움을 후일에는 자유로움으로 만나졌다는 나의 삶들을 건넨다.

 무엇보다 둘째 스스로 고민 끝에 내린 선택이기에 타인의 시선을 벗어던지고 원하는 학문의 길로 여행을 찾아가는 시간들에 응원을 보내고 있다. 결코 늦지않은 오히려 적절한 시기의 둘째의 <선언>은 성장의 한 모습이었기에 그동안의 시간들을 뒤돌아 보지 않기로 했다.

오히려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일이 그녀에게 또 다른 선택을 해야만 하는 고통이었음을 생각하면 미리부터 짐짓 건넨 방향 모색이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이었음을 깨닫게 해주었다. 다만 그녀가 그 길로 나아갈 때 온전하게 스스로를 느끼지 못한다면 대학 4년 내내 스스로 고통과 우울, 외로움과의 지난한투쟁으로 패배의 감정을 만나기도 할 수 있겠다. 물론 그것까지도 경험한 후에야 그녀는 진정한 스스로의 얼굴을 만들어 낼테지만 말이다.

 

 궁극적으로 우리가 원하는 <행복>이란 것은 늘 내 가까이에 있었고, 이 저속한 사회가 끼친 영향력에서 자유롭기만 하다면, 매일이 깃털처럼 가벼운 느낌이리라.

작은 것에 감동하고, 감사하며 살아질 것이다. 내가 누리는 이만큼의 풍요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알아차리는 시간이 빠를수록 살아있는 동안 느낄 수 있는 행복한 마음은 일상을 채워 줄 것일텐데.

그시간들로 이루어질 많은 감동들이 우리를 인간답게 만들어 간다는 것!!

어디에 있는가는 중요하지 않았다. 학교에 있건 학교 밖에 있건, 공간의 의미는 우리의 영혼을 방해하지 않는다.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어떻게 살고 있는가?에 대한 물음만이 필요하다.

 이것이 늘 나에게로 던지는 물음이었고, 이렇게 살아온 시간 속에서 내 주변과 나눌 수 있는 이 마음이면 되었다고, 마음만 부자인 내게 늘 다독여왔다. 둘째의 분투가 통하여지;기를 응원하면서 이 책을 읽는 내내 스스로에게 말했다.

 

 탐욕을 버리고 나를 통한 너를 인식하고 함께 할 수 있는 공감과 소통이 이루어지는 시간들이 계속 열려질 수 있기만을 간절하게 열망하는 내 안의힘이 오래도록 지속될 수 있기만을*~

 

                                                                                                                                                     2010.08.


Posted by 보랏빛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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