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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앨버트 브룩스 감독의 영화 <영혼의 사랑 (Defending Your Life)>

 

죽음. 사후세계는 있을까? 다시 태어난다는 의미일까. 그동안 살아왔던 세계와 다른 차원의 세계에서 우린 다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일까. 사후 세계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없다고 정말 없는 것일까? 그렇다면 과학으로 인간의 모든 것을 증명해야 가능한 말이 아닌가? 삶과 죽음은 같은 선상에 있는 것이라 생각된다. 어쩌면 살면서 죽은 듯이 지날 수도 있겠고, 죽음을 연습하는 것일지도 모르지. 

죽음은 내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고 죽음이 나를 선택하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자연스런 나의 죽음이다. 모두의 죽음은 타자의 죽음으로 나에게는 아주 먼 듯한 느낌으로 바라보는 누군가의 죽음이다. 삶과 죽음 앞에서 내가 선택하는 것. 그것은 금지된 죽음’인 '자살'이 아닌가. 나는 평소에 내가 가진 죽음에 대한 생각을 제대로 정리하고 나름대로 타자의 끄덕임을 위해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아니, 나를 위해 공부를 했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죽음에 관한 책들을 읽어 보고 사상가들이 펼친 죽음에 관한 고찰들에서 공통점을 찾아 본다. 아무도 죽음을 겪어본 사람이 없기 때문에 살아있는 자가 죽은 자를 논한다는 것은 살아있는 자의 유희일수 있다는 점은 기억해 두고 싶다.  여기서 과거의 현자들을 소환해 그들이 남긴 말을 꺼내보자.

                                                                                    

                                                                    공자 : '삶을 제대로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알 수 있겠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 : '충만한 낮의 생활도 수면의 기쁨을 주지만 인생은 죽음의 기쁨을 준다.'

 

 

 

소크라테스 :

나는 큰 기쁨을 가지고 내 갈 길을 가는 걸세. 나뿐만 아니라 마음에 각오가 되어 있고 마음이 정화되었다고 믿는 사람이면 누구나 기쁜 마음으로 이 길을 갈 걸세.'

 

 

                                                                                        

장자 :

생사라는 자연의 도리에서 벗어나 진실을 거역하고 하늘로부터 받은 본분을 잊음이야. 옛날 사람들은 이것을 '하늘을 도피한 벌'이라고 했다. 죽음은 그 때를 편안히 여기고 자연의 도리를 따라간다면 기쁨이나 슬픔 따위 감정이 끼어들 여지가 없을 걸세. 이런 경지를 옛날 사람들은 '하늘의 속박에서 벗어남'이라고 불렀네 

 

죽음과 함께 거론되는 것은 사후 세계에 관한 궁금증일 것이다. 종교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그만 두자. 어차피 종교는 내 삶이 고단할 때 약간의 위안을 주는 것이라는 생각이기에 단 한 번의 죽음을 종교적으로 해석한다는 엉뚱한 짓을 하고 싶지는 않다. 이 우주에 신()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기에 그만큼으로 거리를 유지하고 싶다. 

최근에 영화를 한 편 보면서 생각이 미친 것이 있는데 사후 세계는 있다 해도 살아있는 자들과는 완전히 분리되어 있기에 우리의 의식으로는 판단할 수 없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나는 '죽음이 삶의 또 다른 방식'일 것이라는 생각에 머물기로 했다. ‘생과 사의 문제는 철저히 자신의 문제가 아닌가하는 관점에서 이 글도 내 공부의 연장선에서 나오는 글일 뿐이다 

영화를 잠깐 소개해 보면 죽음은 나에게도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올 수 있다는 점을 다시 일깨워 주기도 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죽음이 결코 두렵거나 불안하다는 미혹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앨버트 브룩스 감독의 ‘Defending Your Life(1991)’는 판타지이다. 어차피 우리가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은 이럴 수밖에 없지 않은가. 현재 살아있다면 오늘, 잘 살아가는 게 중요한 것이니까. 내일은 죽은 자의 위치에 있을지 모르니. 

또 누군가는 나의 이런 말에 '자기만의 언어'로 떠드시는군, 하겠지. 그래, 죽음이건 삶이건 어차피 당신의 선택이고 나의 선택이었던 것 아니던가. '인간'임을 마지막 순간까지 놓아버리지 않는 노력을 할 수 있다면 현재 누리는 삶이 허무하지는 않을 테지. 당장 내 앞에 펼쳐질 좋은 세상은 아니더라도 그 언젠가는 조금 나아질 세상이라는 믿음은 갖고 살아도 되는 것 아닌가.

 

 

 

2016년이 되면서 내게 익숙한 얼굴이 다른 세계로 떠났다. 해리포터 시리즈에서 혼혈왕자인 스네이프 교수. 해리포터 시리즈가 끝나갈 때까지 가장 끌렸던 스네이프 교수가 내게는 이미 영화 배우 알란 릭맨의 죽음이 아닌 혼혈왕자의 죽음에 모든 퍼즐이 맞추어 있다. 현실 세계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죽음과는 무척 다르다. 영화에서 만나는 캐릭터의 죽음은 그 영화가 내 삶에 남아 그리움으로 느껴질 때까지 가능했다.     

 

[굳이 죽음을 염두에 두고 읽은 책]

필리프 아리에스의 죽음의 역사셀리 케이컨의 죽음이란 무엇인가시니 & 허노의 죽음에 관하여』파드마삼바바 『티베트 사자의 서

 

 

 

 

 

Posted by 보랏빛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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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에는 멀쩡한 곳이 단 하나도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국가 경쟁력이 그렇게 중요한 것일까요. 도대체 무엇을 누구를 위한 경쟁력인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한반도의 반쪽인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5,000만입니다. 노동자에게 최저임금이 최고의 임금으로 되었다면 농민들에게는 13년을 동결한 쌀 값이 있습니다. 즉 노동으로 돈을 벌거나 농사를 지어 돈을 벌고자 한다면 미친 짓이 되는 겁니다. 그야말로 입에 풀칠이나 할 수 있으면 다행인 것이지요. 가을걷이를 마치고는 지인이 말하더군요. 농사 짓는 거 이제 끝내야 할까 싶다고요.

  

 

정부가 지난 주 쌀시장 개방을 선언한 데 분노한 광주 전남 지역의 농민들이 논을 갈아 엎는 시위를 했습니다. 전국농민회 광주전남연맹이 광주역에서 쌀시장 개방 저지 투쟁 선포식을 가졌는데요, 당시 계획에 따라 오늘 영광군 농민회가 벼논을 트랙터로 갈아 엎으며 쌀시장 개방에 항의했습니다. 비슷한 시간 순천에서도 농민 100여명이 논을 갈아 엎었습니다. 농민들은 논을 갈아 엎는 심정에 대해 마치 죽은 자식을 가슴에 묻는 것같다면서, ‘박근혜 대통령은 더 이상 농민들의 대통령이 아니다라는 선언식을 가졌습니다. 농민들은 광주시와 전남도, 각 시, 군청 앞에 농기계를 반납 투쟁도 하고, 조만간 서울 상경 시위를 하겠다는 계획도 밝혔습니다.

 - 국민TV 뉴스K 7.24-

 

 

정부는 718일 쌀의 관세화 즉, 쌀시장 개방을 결정한 후, 두 달 만인 지난 918일 수입쌀의 관세율을 513%로 확정 발표했습니다. 관세율 그 자체는 결코 나쁘지 않다는게 전문가들의 평가랍니다. 513%가 적용되면 80kg 기준의 쌀 가격은 미국산의 경우 현재 63000원에서 388000, 중국산의 경우 85000원에서 522000원으로 오는 거죠. 이 경우 17만원 정도인 국내산 쌀이 가격경쟁력에서 수입쌀에 결코 밀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정부의 발표를 의심하고 있습니다. 특히 513%의 관세율을 법으로 명시하지 않아, 약속을 지키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정부의 지금까지 정책 진행 과정들을 되돌아 보면 이렇게 술수를 부려 결과적으로는 시늉만 내며 거의 뒷통수를 칩니다. 정부가 내놓은 특별긴급관세제도에 대해서도 전문가들은 사후 대책이기에 실효성이 없다고 평가했답니다. 십 사년 전으로 역사의 시간을 되돌려 봅니다. 강준만의 한국 현대사 산책 1990년대 2을 정리해 보면서 한국사회에 전방위적으로 퍼져있는 생존의 위기감은 다가올 겨울의 냉기로 미리부터 엄습하고 있습니다.

 

907월 초부터 우르과이라운드 (UR)가 사회 수면 위로 오르자 반대 시위가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농협이 911111일부터 1223일까지 전개한 쌀 수입 개방 반대 서명운동에는 1,300만 명의 국민이 참여했습니다. 한국농어촌문제연구소가 주관해 벌어진 반대서명엔 전국의 대학교수 및 강사, 연구소 박사 3,000여 명이 참가해 쌀 개방 반대의 수준을 넘어 UR 자체를 반대하는 운동을 전개했죠.

 

                  우르과이라운드 위협이 가시화되던 1991년 1월 경실련은 기자 회견을 열고 미국의 쌀 수입 개방 압력을 비판하였다. -한국현대사산책 1990년대편 /강준만-

 

김영삼은 대통령 선거 유세 때에 대통령직을 걸고 쌀 시장 개방을 막겠다고 큰 소리쳤지요. 하지만 1993122일 농림부장관 허신행은 쌀 수입 개방과 관련한 최후 협상을 위해 제네바로 출국하는 자리에서 기자 회견을 통해 쌀의 관세화는 물론 최소시장 접근도 허용아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출국 후 이틀 만인 124일 사실상 쌀 수입 개방 압력에 굴복했음을 시인했던 것입니다. 쌀의 역사는 1945년 일본 패망 이후 미군정 시기부터 그 시작을 알 수 있죠.

 

93128일 전국농민회총연맹은 농산물 수입 개방에 앞장선 혐의를 받은 정부관계 인사 5인에게 계유 5이라는 딱지를 붙였죠. 민자당 대표 김종필, 국무총리 황인성, 부총리 이경식, 농림수산부장관 허신행, 외무장관 한승주 등, 이들이 농업, 농민의 존립 기반을 붕괴시킨 것은 을사 5이 국권을 일본에 넘겨주었던 것과 마찬가지라는 의미였습니다. 하지만 김영삼은 담화를 통해 쌀 시장 개방을 공식 선언하며 국익을 위해 고립보다는 국제화를 선택했다는 논리를 폈습니다. 담화 직후 쌀 시장 개방 반대를 주장하는 시위가 전국적으로 확산되었죠.

 

          '우리농업지키기 범국민운동본부' 출범식 후 거리 행진을 하는 회원들.

-한국현대사산책 1990년대편 /강준만-

 

931215, 8년 가까이 끌어 오던 우르과이라운드 협상이 타결되었죠. 농민들이 쌀 시장 개방을 을사보호조약에 비유하자, 문민 정부는 반대자들을 구한말의 쇄국주의자에 비유하고 나섰습니다. 김영삼은 94년 연두기자회견 때 사회 전반의 국제화와 세계화를 위해 시책을 펴나가겠다고 말했는데 서울대 교수 김수행은 김영삼 정부가 갑자기 국제화, 개방화, 국가경쟁력의 제고를 강조하는 이유에 대해 당시 19945월호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204.11.19

첫째는 미국의 요구에 따라 농산물 시장 특히 쌀 시장을 개방할 수밖에 없는데, 쌀 시장의 개방이 미국의 압력이 아니라 시대의 대세라는 것을 선전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농산물도 다른 모든 상품과 마찬가지로 국제경쟁에서 이겨야 하며, 국제경쟁에서 이기지 못하는 것은 미국 탓이 아니라 우리 탓이라는 것을 인정하기위해서다. 참으로 끔찍한 사대주의적 발상이다. 둘째는 정부와 관변 연구단체들이 국제경쟁력이 없는 농업은 포기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한국의 역사는 참으로 비통합니다. 미래세대에게 이런 역사의 후유증을 계속 앓게 한다는 사실은 더욱 갑갑하기만 합니다. 세계화는 이해관계에 얽힌 몇 몇 나라를 위한 것이 아니지요. 더욱이 한국에서 세계화라는 명분은 여전히 완전한 독립을 하지 못한 국가의 국민에게는 족쇄일 뿐입니다. 일을 하고 그 대가를 제대로 받을 수 없는 현실에서 정부의 무능함은 역력합니다. 지난 우르과이라운드 이후 농업 정책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여 왔다면 설사 강대국에 의한 통상외교에 받아들일 개방이라 해도 큰 충격은 완화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협상조차 해 보려 노력하지 않는 정부의 외교 능력은 국민들을 이해시키려는 노력도 대책 마련도 지극히 형식적입니다. 농민단체들은 WTO 농업협정문 어디에도 ‘유예 기간이 끝나면 자동 관세화한다’는 조항이 없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부는 관세화를 선언해 버렸고, 관세율만 높게 책정하면 된다는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경상도 방언이 어째 더 마음에 와 닿는 순간입니다. 을 버리는 순간 죽음이 선고되듯이 ‘쌀을 버린 이 나라의 미래는 암담합니다.

 

견고하고 장기적인 농업인을 위한 대책마련과 식량주권을 위한 노력에 정부의 역할이 필요합니다.국민들의 식량주권을 지킨다는 의미를 빵을먹어도 밥을 먹어야 한 끼를 해결했다고 생각하는 내가 제대로 모른다면 한국사회의 미래는 없습니다. 천년 만년 살아지는 삶도 아니거늘 기성세대들이 저지르고 있는 일들에 겨악을 합니다. 노동자를 지키지못해 사람이 도구로 전락해 버린 한국사회에서 농민을 지키지 못하는 국가는 먹을거리를 외국에 의존해야만 하는 사망신고를 받은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이제 쌀을 사는 일이 금덩이를 사는 일만큼 어려워질 미래, 끔찍합니다. 

 

근 이십 년 전 제 집을 지으면서 미래에는 석유가 금붙이보다 더 귀해질 것이라며 재래식 아궁이를 별도로 만들던 이가 생각났습니다.그는 이제 생존의 의미를 다르게 받아들여 집없이 길을 따라 걷고 있는 이가 되었지요. 자신의 선택으로 길을 걷고 있는 이와 먹을 것을 찾아 길을 헤매야만 하는 이와 비교할 수도 없습니다. 먼 미래 어느 날, 이 땅 위의 모든 길에는 굶주림으로 걷는 이들이 즐비할 것이라고 하면 지나친 과대망상일까요. 사람의 미래는 사람에게 있습니다. 그것이 지구촌의 사람들에게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런지요. 지구의 절반이 굶주림으로 죽어가고 있는 이유, 시카고 곡물거래소에서 만들어지는 다국적기업들의 결과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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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랏빛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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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한 박사, 위인·인물전에 실린 유일한 기업가를

아시나요?


국민TV라디오방송의 <밀실에서 광장으로>에서 오늘 영훈국제중학교에 부정 입학을 한 삼성전자 부회장 이재용의 아들이, 사실이 밝혀지자 결국 자퇴를 했다는 뉴스를 들으며 떠오른 인물은 유일한 박사였다. 아이들과 책이야기를 하며 수다를 떨 때면 거론되는, 내게는 무척 익숙한 인물이다. 유일한 박사는 조국의 근간을 세운 기업가이자, 행동하는 독립운동가, 그리고 민족의 미래를 제시한 교육가이기도 하다.


그 이름도 유명한 삼성그룹이다. 삼성전자 부사장 이재용의 아들이 ‘비경제적 사회적 배려대상자 입학 전형’으로 합격했다는데, 순간 나에겐 ‘비경제적’이 아니라 ‘비경쟁적’으로 보여서 흠칫했다. ‘비경쟁적’이면 성적조작 없이도 1순위였을 것이기에 다시 기사를 보며 확인해 보니 잘못 읽었다는 것을 알고 혼자 웃고 말았다. 우리 사회에 일그러진 모습들이 거의 모든 분야에 만연되어 있다는 것에 새삼스러울 것은 없지만 말이다.


“기업에서 얻은 이익은 그 기업을 키워 준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

“기업의 소유주는 사회이고 단지 그 관리를 개인이 할 뿐이다.”

“건강한 국민만이 잃어버린 주권을 되찾을 수 있다.”

위에 적힌 글들은 인간 존중을 사업의 기본철학으로 가지고 자신의 신념을 기업윤리로 사회적 책임을 다한 유일한 박사의 명언이다.


이 땅의 아이들은 사회적 책임을 다 하고 이 나라에 기업의 윤리를 철저하게 보여주고 자신의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 기업가 유일한을 잘 모른다.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다른 책들보다 강제적으로라도 읽히려고 하는 책들이 위인·인물전 시리즈일 것이다. 왜 그런가? 내 아이가 장차 훌륭한 인물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우리 사회가 그렇게 꼼짝 못하고 생활 속에서 만나는 ‘삼성그룹’의 설립자 이병철의 이름은 결코 이 시리즈에 등장하지 못한다.


대학 진학 시 인문계열로 진로를 잡고 학과를 선택할 때 가장 많은 학생이 지원하는 곳이 경영학과이다. 그만큼 우리 사회는 경제지상주의에 매몰되어 온 지 정부수립부터 65년이다. 초등학교부터 시작된 학습의 연장에서 넘치는 경영학도들의 활약이 진행되고 있는 현재까지 경영 철학이나 기업가 정신에 대해서는 얼마나 무심했던가를 생각해 봐야 한다. 돈만 잘 버는 경영자의 모습이 이 사회에 얼마나 부정적인 영향을 끼쳐 왔던가는 논하지 않는다.


유일한 박사의 가르침은 고스란히 자녀들에게 물려졌다. 아버지를 이어 기업을 이어받은 장녀 유재라 또한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함으로써 유일한 박사의 뜻을 이어갔다. 그리고 또 하나 유일한 박사의 이념이 이어지고 있는 곳, 바로 유한양행이다. 최근에 정년연장제로 노동계와 재야가 정년연장에 따른 임금조정을 둘러싸고 논란 중이다. 허나 이미 ‘유한킴벌리식 뉴패러다임’은 사회적 책임을 다 하고 있는 유일한 박사의 기업가 정신을 보여주고 있다.


유일한 박사의 유품은 일상생활에 꼭 필요한 물품 몇 가지와 양복 세 벌, 그리고 구두 두 켤레가 전부였고 나머지는 모두 사회에 환원했다고 한다. 이쯤에서 뉴스타파가 ICIJ와 ‘조세피난처 프로젝트’를 공동 취재한 결과로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한국인들의 명단 발표도 생각해 본다. 우리 사회에서 실종된 기업의 윤리의식과 사회적 책임을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기는 하다. 이번 영훈국제중학의 부정 입학은 빙산의 일각에도 못낀다.


김용철 변호사가 양심고백을 하면서 우여곡절 끝에 펴낸 <삼성을 생각한다/사회평론 펴냄>에서 사제를 찾아가 행한 고해성사 이야기가 옛날이야기처럼 되어져 버린 우리의 현실도 생각해본다. 김용철 변호사를 보호하던 정의구현사제단은 기자회견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 “삼성공화국을 만든 것은 언론과 지식인, 모든 국민이 공범이다.” 5년 전의 이 말은 흔적도 없지만 난 그 공범들이 다시 힘을 합하면 괴물을 물리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빠져 있다.


건강한 사회는 어느 한 사람의 의지로 만들어 지는 것은 아니었다. 오랜 시간 정경유착으로 나타나는 일들을 그저 멀거니 바라본 대한민국은 이제 달라져야만 할 때이다. 모든 세대들을 넘나들어 자기각성이 필요하다. 사회 문제가 나의 문제라는 의식의 전환은 필수이다. 사회적 성찰 없이는 불가능하며 적극적인 실천을 함께 해야만 한다. 그 시작이 나는 의식있는 지식인들과 사회적 약자들의 공범이 되어 줄 미디어협동조합, 국민TV방송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나의 이 수고는 순전히 개인적인 만족감에서 시작되었지만 내가 지닌 특유의 낙관주의는 분명 나비효과를 불러 일으킬 것이라 믿고 있다. ‘선한 싸움’이란 꿈의 이름으로 행하는 싸움이며, 꿈을 불가능하게 하는 것은 오직 하나, 즉,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고, 나의 선의가 공공의 선으로 물들일 것이라는 희망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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