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52024  이전 다음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정부가 5일 헌법재판소에 통합진보당의 정당해산심판안을 청구하고 정당활동정지 가처분 신청을 내자, 같은 날 문재인 의원의 검찰 소환과 나란히 언론의 화두가 되었다. 대개의 경우 사람들이 무오류의 논리를 펼치는 건 의식적으로 오류에 대한 면역력을 갖기 위해서가 아니다. 어떤 사실에 대해 확실한 근거가 존재할 때 우리는 오류가 없고, 논리적이라고 말을 한다. 정부가 하는 일이 논리적일 때 대중은 그에 대한 판단을 제대로 할 수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정부가 하는 일들이 오류에 둘러 쌓여진 채 현재에도 계속 진행되고 있기에 정부에 대한 신뢰감은 실종 중일 수밖에 없다.


그동안 정부의 ‘종북’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보수세력이 야권 전체를 싸잡아 ‘종북세력’으로 낙인찍고, 이 때문에 적지 않은 정치적 타격을 주곤 했다. 이런 식의 논리가 만연한 이유는 오히려 ‘분단국가 처지’를 빈틈없이 확실하게 보여주려고 하기 때문이다. 어떤 주장을 뒤집을 증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일반적으로 그것이 참이라고 믿을만한 타당한 이유가 된다. 그러나 반박 증거가 존재하지 않는 이유가 애초에 그 가능성을 배제해 버렸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기 힘들 때도 있다. 그렇게 조작된 사건이라면 모든 증거가 한쪽에만 유리하도록 기우는 것도 놀랄 일은 아니다.


헌정사상 처음으로 정당해산심판 청구안을 꺼내든 정부의 의도가 통합진보당 해산을 넘어 야권 전체를 무력화하려는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그간의 정부가 보여 온 국가주의를 내세워 편가르기를 정치적으로 이용했기 때문이라 본다. 국가안보를 내세워 자신들의 권력욕을 충족시키려는 방법으로 너무 오래 써 먹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거다. 즉, 그동안 언론플레이, 포퓰리즘, 총체적인 관권선거 등에서 드러난 오류의 면역성에 기대고 있다 하겠다. 결국 뭔가를 설득력 있게 부정할 때 흔히 사용하는 방법으로 이번 법무부의 성명은 ‘정의의 축소’로 보이게 하는 교묘한 말장난인 경우라 할 수 있다.



관련사진


통합진보당원들이 5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열린 통합진보당 긴급 기자회견



오류에 대한 면역력이 가장 두드러지는 건 음모론인데 증거들마저 사실상 음모론을 입증하는 증거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가짜논리가 극성을 부리며 진행되고 있는 허울만 ‘민주주의 공화국’으로 추락한 현실에서 국가안보에 관한한 우리 사회는 자신이 틀렸을지 모른다는 가능성마저 인정할 수 없을 만큼 생각이 경직됐을 공산이 크다. 그런 의미에서 개인적으로 정부가 통진당의 해체를 요구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위기감을 조장하고 있다 하겠다. ‘조건부 진실’이라는 오류는 놀라운 주장들이 모호한 정의(定義)를 근거로 제기되곤 한다. 도대체 어디까지 달려갈 설국열차인가.


대의제를 채택하고 있는 국가에서 다수석을 차지하고 있는 정당이라고 옳은 선택이라 할 수만은 없다. 다수결이 지닌 오류가 아니던가. 그런 오류들에 면역된 구성원들은 고질적으로 각인된 언어의 왜곡된 개념에 갇혀 ‘내 식대로 정의(定義)’를 내리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철학자 앤서니 플루는 이런 식의 주장에 ‘진정한 스코틀랜드 사람의 오류’라는 이름을 붙였다. 신문에 대문짝하게 난 극악무도한 살인을 저지른 범죄를 보며 ‘진정한 스코틀랜드인이라면 이런 일을 할 리가 없다’는 말로, 그럴듯한 이유가 되어 오류를 저지른다는 것이다.


통합진보당이 지난 대선까지 이어져온 야권연대의 한 축인 동시에 ‘종북’ 논란의 당사자인 탓에 통진당을 감싸면 마치 내가 유유상종이라고 생각되길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그렇게 정치적으로 의미를 부여해 급진적인 정책이나 발언에 ‘종북’이란 왜곡된 용어를 씌우는 가짜 논리들을 바로 잡을 의식적인 노력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누구나 뭐든 원하는 대로 정의하고 규정할 수는 있다. 그러나 진실을 중시한다면, 정의(定義)가 공정한지 따져봐야 한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당의 다양성이 보장되어 정책의 차별화와 그에 따른 국민들의 소수 의견까지도 반영될 수 있을 때 사회구성원들의 보다 나은 삶이 마련되는 민주주의 국가로 변화될 가능성이 깃드는 것이다.




 "실체도 없는 RO라는 조직을 위험한 단체로 규정한 근거가 녹취록에 따른 것인데, 

        녹취록 상에 나타난 발언을 근거로 내란을 음모했다고 하는 것은 순환 논리의 오류에 빠진 것이다."



제발 ‘정치적’으로 ‘진화’ 좀 하자. 그러기 위해 다양성을 획득하는 것이 우선이다. 통진당이 국가 안보에 치명적인 과오를 저질렀다 해도 정당의 해체는 법무부가 나설 일은 아니다. 과오에 대한 사실 규명이 선행되어야 함에도 정부는 스스로 가짜논리에 갇혀 여전히 대중에게 호소하는 오류까지 저지르고 있다. 단어의 의미가 상황의 ‘진실’을 말해 주지는 않는다. 언어를 자연스럽고 유기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특정 용어의 의미를 엄격하게 규정할 때 이런 식의 억지 논리가 발생하게 된다. 그렇게 고착된 ‘이념’은 이미 해체된 지 오래인 세계화로 열린 시대가 아닌가. 정부가 알아야 할 ‘진실’은 대중이 결코 아둔하지 않다는 점일 것이다.

 

 

Posted by 보랏빛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