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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출처]http://movie.daum.net


감정노동을 엄밀히 정의하면 “업무상 요구되는 특정한 감정상태를 연출하거나 유지하기 위해 행하는 일체의 감정관리 활동”이 직무의 4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는 노동 유형이다. 그런 의미로 정치인도 일종의 ‘감정노동자’라 하겠다. 일반인과 달리 감정노동자로서의 일부 정치인은 시간이 흐를수록 감정노동을 뻔뻔하게 즐기는 능력을 갖게 되어 그것을 완력으로 이용까지 하는 듯하다. 하지만 이 땅의 대부분의 감정노동자들은 고통에 신음하게 된다.


지난 일주일 뉴스를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다 열 개의 단어로 지난 30여 년 간의 시간을 지나면서 드러난 중국 사회를 말하던, 위화의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간다’를 떠올렸다. 눈에 들어 오는 반복되는 단어들에  필자도 우후죽순 감정노동의 트라우마를 만나고 있다. 지난 1년을 되돌아 보며 한국을 말할 수 있는 열 개의 단어를 생각한다. 그 열 개의 단어는 는 또 하나의 단어 ‘사태’로 모아져 있었다.


단어 나열의 순서에는 하등의 의미가 없음을 전제하고 감정노동자의 범주에는 들어가지 않는 필자의 처지에서 내 주변을 떠돌며 결국에는 중증의 감정노동자로 만들어 온 우리의 현실에 아연실색하게 된다. 국가의 면적이나 인구로 비교하기 어려운 두 나라의 모습이지만 차이점보다는 공통점이 쉽게 발견된다. 국가의 정체성에 의문 부호가 붙는다.


위화는 중국에서 ‘홀유(忽悠)’의 의미는 맨 처음의 의미를 벗어나 점차 하나의 속어로 자리잡아 중국동북지역에서 유행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속어로서 ‘홀유’는 똑같은 발음의 ‘호유(胡誘)’ 즉 ‘어지럽게 잘못 인도하다’라는 단어에서 왔다고 책에서 말한다. 이후 끊임없는 변이가 일어나 어지러울 정도로 많은 뜻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허풍과 선동, 종용의 의미를 갖고 허튼소리나 뜬소문, 사기 등의 의미를 지니고 있어서 해학과 조롱, 근거 없는 날조와 투기의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홀유는 중국어의 만능열쇠가 되어 관련된 단어의 말뜻을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입만 열었다 하면 홀유를 하게 만들었다는데 한국에서 정부의 홀유는 ‘사태’가 이에 해당되는 것은 아닌가 싶다


먼 계절로 갈 것도 없다. 지난 대선의 겨울부터 궤적을 돌아보면 NLL대화록 사태를 시작으로 진주의료원 사태, 국정원 사태, 사회 각 분야에서 일어난 시국선언 사태, 인터넷의 일베사태, 개성공단 사태, 해병대캠프 사태, 윤창중 사태, 밀양송전탑 사태, 국회의원 이석기 사태는 통진당사태로 이어졌고, 아직도 열거할 ‘사태’가 마치 유행처럼 줄을 잇는다.


전교조사태까지 생각하면 한 마디로 ‘민주주의 위기 사태’라 하겠다. 이런 상황에서 한 개인의 감정 노동은 극한까지 갈 수밖에 없는 거다. 여기 저기서 일어나고 있는 세대를 초월하여 전방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개인들의 자살사태는 무엇으로 표현해야 적절한가. 정부의 홀유는 개인의 영웅주의에서 시작되었기에 잠시의 현상으로 머물러서도 안 된다.


위화는 ‘홀유’라는 단어가 중국 사회의 윤리및 도덕성 결핍과 가치관의 혼란을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다고 말한다. 그 혼란 속에서 한 개인도 정부를 상대로 홀유하기 시작하고 그 사회는 홀유라는 언어유희에서 종국에는 홀유가 실제의 삶을 지배하게 된다는 것이다. 의식하지 못하면서 어느날 내가 속임수나 헛소문 같은 단어에 합리성이라는 외피를 입혀 놓은 홀유에 치여 죽을 수도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출처] 정봉주와 미래권력들


한국의 매스컴에서 넘쳐나고 있는 도처에 퍼지는 가짜 뉴스의 등장과 이런 가짜 뉴스에 법률적 책임은 물론 도덕적 책임조차 지지 않아도 되는 현실, 정부가 국민을 우롱하는 사태에서 개인들의 감정 노동에서 발생하는 트라우마는 너무도 당연하다. 인터넷에서 어느 고등학생이 때늦은 1인 시국선언을 했다. 그 소년은 마지막에 “민주주의를 쉽게 내주지는 못하겠다. 내 미래를 도둑질 하지 말라”라며 끝을 맺었다.


기성세대로서 순간 가슴이 후끈해지며 얼굴이 달아올랐다. 분명한 것은 현재에도 민주주의는 권력자들에 의해 충분히 짓이겨지고 있다. 그 고통에 신음하지만 한 개인들의 힘은 협동의 형태로 작은 공동체로 공감의 마음들이 모이고 있다. 그런 지속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협동조합들이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그 가치를 후대들에게 전하게 될 것이기에 결코 우리는 미래를 도난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글은 http://news.kukmin.tv/에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



Posted by 보랏빛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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