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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10.09 “너님, 후대에겐 병신인 거에요!”
  2. 2015.10.08 교육의 주체는 교육감선거의 구경꾼
  3. 2015.10.01 뷰티 인사이드

 

[출처] 프랑스 철학자 알랭 바디우(오른쪽) 파리고등사범학교 명예교수와 홍세화 <말과 활> /한겨레

 

2년 전 가을, 프랑스 철학자 알랭 바디우는 경희대와 '지젝 바디우 네트워크'의 주최로 열리는 '멈춰라 생각하라-공통적인 것과 무위의 공동체를 위한 철학축제' 참석을 위해 한국을 첫 방문 했다. 지금 내 나라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이 물음 끝에 바디우는 보다 근원적인 곳으로 시선 돌리기를 말해 주고 있다. 이제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까지 내 나라가 치닫고 있는 현실, 현 정부의 행태는 과거 독재에 저항하여 스러져간 목숨을 다시 요구하려는가 싶다

 

바디우가 그의 저서 투사를 위한 철학에서 말하는 것은 실제 아주 간단하다. 자기 자신의 삶을 살아가라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반복적인 자동성에 맡김으로써 스스로를 방치하지 말고, 진리를 확신하는 주체의 삶, 이념을 지닌 삶을 살아나가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대단히 피곤한 삶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러한 삶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머리 아프다. 그런데 그 피곤함을 감내하고, 끊임없이 생각하라고 말한다. 그것만이 인간이 인간으로 남는 길이란다. 그 길을 포기하면, 그저 우리는 '먹고사는' 데만 신경 쓰는 '인간-동물'에 머물 뿐이라고 말한다.

 

현대를 '이념'이 사라진 시대라고들 한다.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라는 극단적인 역사의 장을 넘기며 인류는 21세기로 접어들면서 '지구촌'이라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허나 이 지구촌이라는 말은 교과서적인 말로 사용될 뿐이다. 다시 말해 대한민국은 여전히 동과 서, 남과 북이라는 긴장감을 떼어내지 못하고 있다 하겠다. 아니다. 정부는 오히려 이념을 들먹이며 래드 콤플렉스를 조장하고 있다. 국민을 마음놓고 우롱하는 5년짜리 정부를 보라.

 

남쪽에서는 '세계화'에 북쪽에서는 '주체화'에 갇혀 서로 평행선 위를 달리고 있는 중이다. 한반도 이 공간에 두 원칙이 첨예하게 대립각을 세우며, 과연 미래를 낙관할 수 있을까? 아니다, 그렇다. 극단적인 두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 보기는 쉽다. 상생을 위한 길을 모색해 내기가, 새로운 이념(사상)을 만들어 내기가 벅찰 뿐이다. 달콤한 자본주의의 또 다른 이름인 신자유주의에 심하게 매료되어 온 이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분명히 '세계화'의 철학인 '신자유주의'는 부자들에게는 조세 감면, 환경 보호 정책의 후퇴, 교육과 복지 정책의 포기를, 세계적 차원에서는 '부익부 빈익빈'만을 낳은, 인간적 모습마저 잃은 이 세계의 야만을 통렬히 비판하면서 새로운 실천을 요구할 철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내게 바디우의 '투사(鬪士)'는 자본주의의 어두움이 지속되는 가운데 '정치의 조건들'을 사유하는 주체의 개인을 위한 의미로 다가왔다. 

 

민주주의, 정치, 철학이라는 세 항 사이에는 무언가 역설적인 관계가 있는데 바디우는 민주주의에서 철학으로 넘어가야 한다고 말한다. 철학은 누구에게나 '주장'에 대해서 찬성과 반대를 미리 선택해 놓지 않는다. 한 사안에 대해 말하거나 사유하는 사람의 사회적, 문화적 또는 정치적 지위에 완전히 무관심하기에 철학은 민주주의의가 작동되는 다수에 의한 결정 방식이라 할 수가 없다. 철학이 추구하는 진리는 다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니까 말이다.

 

팟캐스트 <그것은 알기싫다>에서 만화계의 계약서 이야기를 풀어가는 중, 머리가 없고 가슴만 있는 사람들을 가리켜 너님, 후대에겐 병신인 거에요!” 격한 말이 두 해가 지났음에도 생생하다. 그와 반대로 머리만 있는 이들이 만든 사회구조를 면밀히 생각해 보았다면? 가슴은 쓰레기통에 처박고 머리만 있는 인간들이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이용하여 '자유''평등'을 내걸며 저들에게로 치우친 사회제도를 만들고 있다. 그들은 자유를 스스로 반납하게 하고 평등은 원래 그런 거거든 하며, 우민화 시켜왔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것이 우선이라는 이야기이다.

 

철학은 머리와 가슴이 함께 움직일 수 있는 데 필요한 사유이다. 이제 본질적인 구조의 변화를 위한 투쟁은 연대의 행동만으로는 역부족하다는 것을 이미 우린 알고 있다. 인류의 역사가 진행되는 시간에서 바라보자면 '혁명'또한 현재를 변화하게 하려는 데 급급한 조급증의 결과라고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역사에도 혁명으로 피어난 4.196월의 민주항쟁이 있었다. 그런데도 우리의 현재는 쓰레기 같은 권력이 낯뜨겁게 날뛰고 있지 않은가.

 

민주주의의 가치를 위해 신자유주의가 더 이상 그 힘을 발휘할 수 없게 하기 위함은 ''로 부터 시작된다. 현실의 움직임을 알아가고, 온전하게 삶을 향유한다는 것에 대해서. 비주체로서 허위욕망과 그로인해 발생되는 내 안의 탐욕을 부추기는 이기주의를 털어낼 새로운 가치 지향이 필요한 거다. 한 철학자가 건네는 인간을 위한 정치가 되기 위한 투사가 되기 위한 철학이라는 선물을 함께 나누었으면 한다. 다른 가능성, 다른 세상을 모색하는 ‘투사(鬪士)’가 필요하다

 

분명, 바로 일어날 수 있는 변화는 아니다. 하지만 굳이 후세대를 위한 것이라는 명분을 내걸자면 세대를 몇 번은 지나야 한다 해도 이제는 본질에 시선을 돌려야 할 것이다. 내가 '투사'가 되어야 하는 것은 이 시대의 '혁명'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와 같은 종()의 공멸을 막기 위한 한걸음의 의미가 될 것 같다. 바디우가 말하듯 자기 자신을 반복적인 자동성에 맡김으로써 스스로를 방치하지 말고, 진리를 확신하는 주체의 삶, 이념(사상)을 지닌 삶을 살아나야 한다. 전 인류를 위한 '새로운 사상''새로운 철학', 나와 당신에게서부터 마련되어야 한다.

 

비인간적인 것으로 얻어지는 풍요로운 요소 안에서 인간의 상징성을 찾아내야 한다는 것이 이상주의라고 할 수 있다면 우리는 그 이상을 향해 기꺼이 투사가 되어야 한다. 자본주의의 노예성에서 벗어나 보다 인간적인 형상을 지켜내기 위한 철학이 민주주의, 정치와 공존하게 될 때, 민주주의는 그 가치를 실현하게 될 것이고, 정치는 비로소 권력이 아니라 국가를 위한 장()이 될 수 있다. 니체가 '최후의 인간'이라 불렀던 비극의 모습, 모든 형상을 잃은 창백한 형상으로 남은 인간이기를 결코 허용할 마음이 내게는 없는데 당신은 어떠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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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호영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왼쪽)이 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당대표실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지난 6·4지방선거 교육감 선거가 깜깜이 선거, 로또 선거 였다"며

         임명제로의 전환 취지발언을 하고 있다. 2014.6.9/뉴스1

 

 

로이스 로리의 ‘파랑 채집가’에 우리들의 모습이 담겨있습니다. 이 소설은 핵 전쟁 이후에 펼쳐진 미래 사회를 보여줍니다. 수호자 집단이 이끌어가는 그 곳의 아이들 '맷'과 '키라'는 먼 훗날 펼쳐질 수도 있을 법한 우리 사회에서 성장할 아이들의 모습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간들이 결국 미래의 그 시간들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생각을 이 책에서도 무겁게 만날 수 있답니다.

 

강한 자들, 가진 자들이 쥐고 있는 권력의 힘을 남용하면 사람들에게서 '희망'을 빼앗아 자신들만의 세상 안에 가두게 됩니다. 지금 이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 살을 파고드는 파편들이 결국은 맷과 키라의 사회를 낳게 될 것은 자명합니다. 우리의 미래가 아니라 바로 현재가 이 책의 흐름에 맞춰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는 건 지나친 망상일까요. 아이들은 느낄 수 있답니다.

 

5년 전, '파랑채집가'를 읽고 섬뜩한 새벽을 만나면서 내 주변인들을 떠올렸던 시간은 지금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십대들과 시간들을 함께 하고 있는 내게는 나름 확신을 가져다 주기도 했지요. 하지만 십대들과 나누는 이야기의 중심에서 '두려움의 숲을 건너면 진정한 자유 속에서 만나지는 희망'이 있음을 만납니다. ‘파랑’이 구할 수 없는 아주 귀한 색이 된 그곳에서 파랑채집가, 그들이 ‘희망’이었지요.

이번 6.4지방선거는 13군데에서 진보교육감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우리 사회가 앞으로 교육의 혁신을 가능하게 만들어 갈 것이라는 사실로 위안을 삼았습니다. 세월호참사라는 외적인 요인만으로 진보교육감의 진출이 가능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내부적으로 현재 교육의 방향이 얼마나 잘못되었는가를 많은 이들이 절감했기 때문이겠지요. 그런 의식적인 투표의 결과였습니다.

 

공교육의 위기는 공동체를 교묘하게 해체하는 결과를 빚어내어 왔다고 하면 지나친 우려일까요. 우리의 교육은 없었습니다. 개인의 성공과 이해관계로 개인의 잠재력이나 상상력은 발휘될 가능성이 없었으니까요. 청소년들은 미래가 암울하게 느껴져 자신의 몸 사리기에 급급하고, 수동적으로 사회적 성공이란 허울 좋은 허위욕망으로 허덕거려야만 했습니다. 비주체로 사는 것이 덜 두렵게 다가왔겠지요.

 

우리 사회는 이미 교육이 아닌 사육을 통해 로리스 로이가 문학 내에서 ‘파랑’으로 설정된 ‘희망’을 빼앗아 왔던 것입니다. 아이들은 이미 사육당하는 교육 환경에서 주체로서 철저히 배제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런 결과로 발생하는 일들이 사회에 넘쳐나고 있었지만 표면적으로 감추는데 급급했습니다. 청소년의 자살과 학교 폭력, 인권의 부재에서 보여지는 권위의 추락은 교육의 주체를 일깨우게 합니다.

 

 

 

 

          ▲ 서울 조희연 등 진보성향 교육감 후보들이 지난달 19일 기자회견을 통해

            3대 공동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News1 김재식 기자

 

 

교육에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는 이번 진보적인 교육감의 역할은 건강한 미래 사회를 위한 초석이 될 것입니다. 그동안의 병든 교육에 대한 반성과 성찰로 사람을 살리는 교육을 위한 혁신을 통한 진보적인 정책들이 지속적으로 만들어져야만 합니다. 자신으로부터 시작된, 주체적인 한 개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것이 교육의 역할입니다. 그 역할은 기성세대의 사회적 책임감이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이번 6.4지방선거의 결과에 보여준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의 행동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교육감 직선제 폐지를 위한 헌법소원 추진을 공언한다는 것은 우리 사회에 교육의 주체를 외면하는 현실을 공고하게 알려준 일이지요. 또한 주호영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은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현행 교육감 직선제는 과도한 선거비용 문제가 있다"라며 '교육감 임명제 부활'을 주장했다고 합니다.

 

그는 "2010년 교육감 1인 당 38억5800만 원의 선거비를 썼는데 이처럼 막대한 비용을 쏟아붓고 선거에서 지면 패가망신한다"라며 "교육감 비리가 빈번한 이유는 선거비용 조달 문제 때문"이라며 또 돈타령을 합니다. 지금보다 더 많은 선거비용이 들어도 교육감 직선제는 필요한 일이며 당연히 지켜야할 제도 입니다. 오히려 교육의 주체가 구경꾼으로 놓인 현재 상황을 바꿀 의지가 더 발휘되어야할 때라고 봅니다.

 

나 하나만이 아니라 너와 내가 만나 하나가 되는 것은 동양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했던 마음이었습니다. 이것이 서구와 다른 점이죠. 로빈슨 크루소처럼 무인도에서 혼자 떨어져서도 잘 버티어나가는 사람보다는 함께 하려는 우리의 공동체 정서입니다. ‘내 엄마’가 아니라 ‘우리 엄마’인 거죠. 강한 내가 약자인 너를 어깨동무하여 나아가는 것이 교육의 힘입니다. 공교육의 혁신으로 그 힘을 키워야 합니다.

 

2014. 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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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랏빛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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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티 인사이드

Overdye*~ 2015. 10. 1. 15:19

 

 

리메이크된 <뷰티 인사이드>의 원작은 도시바와 인텔의 후원으로 노트북 홍보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지극히 상업적인 영화란다. 2012년 인텔 & 도시바 합작 소셜 필름인 ‘The Beauty inside'인데 이 작품은 칸 국제광고제 그랑프리 클리오 국제광고에서 금상을 차지하기도 했다더라.

 

상업성을 등에 업고 "누구나 남자 주인공을 연기할 수 있는 영화"라는 슬로건으로 영화의 주인공인 알렉스의 페이스북을 통해 하나의 에피소드가 공개되면, 1주일 동안 그 이후로 어떻게 진행될지를 관객들로부터 비디오로 직접 받아 다음 편 에피소드가 만들어지는 방식이었단다. 생각하지 못했던 일상성이 오히려 특별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그래, 어쩌면 나의 일상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특별할 수 있으니까. 제작 의도와 발상이 전혀 다른 효과를 주는 것이 원작과는 다른 감동을 준 것 같다. 백감독의 <뷰티 인사이드>는 느리게 마음을 적시더라. 영화 역시 내면을 들춰내어 질문을 던지고 나를 닮은 수많은 사람을 통해 나를 다시 만나게 하기도 하고.

 

 

 

나의 수많은 모습의 순간들이 다른 인물의 이미지로 이어진다는 느낌에 어느 순간 뜻밖의 나를 만날 때처럼 친근하기도 하더군. 영화의 리뷰를 쓰는 것이 목적은 아니기에 나의 영화 이야기는 늘 나의 주변과 인물, 내 공간, 내 주변에서 느끼는 감성들로 이어지고는 한다. 나와 당신을 이어주는 것은 무엇일지 생각해 본다. 당신의 눈에 비치는 나의 사회적 지위인가 아니면 나의 경제적인 면인가 출중하다 할 나의 외모인가(?) 아니면 영화 속의 그녀가 잡은 '그런 마음'인가를.

 

이 영화는 어느 날은 친근하게 또 다른 날은 낯설게 수많은 느낌으로 나를 스쳐 갔던 사람의 희미한 표정들과 닮았다. 마음 타령으로 스스로 위안으로 삼았던 내가 영화의 주인공으로 분하는 순간 세계는 작은 점들로 이어진 직선을 보여준다. 끝이 없다. 끝나지 않을 선이다. 내 안에 있는 수많은 나의 모습에 보이지 않았던 마음은 이성의 힘으론 설명 불가능하다는 것을 조금 빨리 알아차린 덕분에 이 영화가 주는 판타지가 계속 이어지길 바라게 되어 버렸거든.

 

형식과 내용. 외면과 내면. 두 가지에서 늘 허덕거려야 하는 현대사회에서 내가 주인공으로 살아갈 수 있으려면 꽤 용기가 필요했던 것 같다. 그때는 잘 모르고 지나왔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분명하게 드러나는 모습은 어쩔 수가 없지. 이방인이 되어 먼 길을 돌아가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시간이 지금은 세상이 나를 자꾸 불러낸다는 생각도 들거든. 내가 세상을 향해 소리 낼 수 있을 때 세상은 지금보다는 나아질 수 있었다고 말하는 나도 있긴 해.

 

어느 날 갑자기 내가 다른 모습으로 잠에서 깨어나는 설정은 문학 작품에서도 새로운 것은 아니지. 카프카의 <변신>은 널리 읽는 고전의 대열에 있는 작품이니까. 다만 내용에서 집중했던 것은 역시 현대인의 소외였어. 개인 간에 일어나는 소외의 일상은 어쩌면 이 사회에서 조장하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라는 생각에 머물게 되더군. 사회를 움직이는 테크노크라시로 만들어낸 소외. 국가가 개인을 교묘하게 소외시키고 있다는 거지.

 

이 영화는 소외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을 외부에서 찾지 않는다. 주인공의 삶은 매일 매일을 다른 얼굴로 살아간다는 게 드러나지 않을 뿐 현대인으로 반복되는 일이기도 하지. 보이는 것 말고 느끼는 것으로 살아질 수 없는 삶. 나는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집 앞으로 난 밤길을 걸으며 가을의 깊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내 삶과 함께 수많은 얼굴이 지나간다. 결국, 개인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의 기능에 주목하게 된다.

 

인간에게도 유통기한이란 것이 있을까. 5년짜리 정부의 유통기한 중 벌어진 일들을 생각해 보자. 아직도 가슴을 쿵쾅거리게 하는 참사 이후 과연 변한 것이 있을까. 정부의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애프터 립 서비스는 최고이다. 입으로는 삼권분립을 외치는 대통령만큼이나 공공연하게 드러나지 않는 우리 사회, 악의 유혹은 고용소비그 달콤함으로 개인들의 의식을 마비시키는 데 힘을 보태 왔다.

 

경제 성장을 위한 국가의 도그마에서 국민은 권리의 유통기한에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다는 불편한 진실을 언제까지나 외면할 수는 없지 않은가. 사회에서 상품의 유통기한이 지나면 폐기 처분된다. 그 기한을 만든 이는 생산자이고 수요자의 입장에선 생산자에 대한 믿음이 전제된 가운데 그 기간 안에 상품을 소비하려고 애를 쓴다. 하지만 그 상품이 변질하면 내 건강을 위해서라도 쓰레기통에 버린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고 그와 같은 사회적 조건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것이 상호 신뢰이다. 역사는 훌륭한 개인이 아니라 다수 인간이 생활해 온 모습이고, 그들의 경제적 욕구와 공공선을 향한 존엄이 반영되어 온 과정이기도 하다. 한쪽으로만 치달은 급성장의 역사를 성찰할 기회는 늘 마련되어 왔고, 그것을 향한 지속하는 저항에는 유통기한이 없다. 정부가 겉으로 추진하는 정책에 담긴 의미를 알아차려야 한다는 거겠지.

 

역사의 진보는 한 시대, 또 한 세대를 좀 더 나은 세상을 향해 나아가도록 이끄는 나침반 역할을 해 왔다. 한 개인이 몸담은 그 사회에 자유와 평등의 가치가 구성원 모두에게 상식적으로 통하기 위해 그 사회의 역사적 기록과 그 이미지는 역사의 발전을 향해 발걸음을 내디뎌 오지 않았던가. 지나온 역사에서 반복되곤 하던 공안 정국을 내세우는 국가의 정치는 이미 유통기한을 넘긴 지 오래다.

 

그런데도 정치·경제, 사회 각 분야를 부패의 냄새로 전염시키며 휩쓸고 있다. 눈 가리고, 귀 막고, 입 막고 이제는 코를 막아야 할 때이다. 결국, 썩은 냄새가 싫으면 알아서 기어 그들의 품에 안기거나, 숨통이 끊어지지 않을 만큼 틀어막고 연명하라는 말이다. 정치를 바라보는 피로도가 급격하게 몰려오는 현실감은 방향을 잃기에 십상이다. 국민을 상품화하여 유통기한에만 사용하는 국가는 정치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이라는 이름으로 장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선거 기간이라는 유통기한이 상실되면 국민을 폐기 처분하듯 버린다.

 

영화 <뷰티 인사이드>에서 'Inside'라는 단어는 선물처럼 포장된 '내용물'이나, 사람의 '내면'의 이중적인 의미가 있다. 한 개인의 마음이 한결같을 수는 없었지. 늘 뜻밖의 작은 일로 그동안의 마음에 상처를 받기도 하고 그 마음을 애써 버리려고도 하지. 하지만 완벽한 사람이 없듯이 내 눈에 보이는 것이 달라도 그 안에 담긴 진정성을 판단하고 느낄 수 있다면 내 마음을 한결같이 이끌어갈 수는 있었던 것 같다. 하물며 5년짜리에 불과한 나쁜 정부에 동참하고 있는 조력자들과 정치인(政治人)에게 기회를 주어서는 안 되겠지. 겉으로 보이는 이 사회의 풍요와 그 이면에 드리운 암울함을 바라보게 된다면.

 

내면의 아름다움이 나를 감동하게 할 그 어느 날, 광장의 유쾌함을 위하여 오늘은 빗소리와 바람소리에 귀 기울여 보면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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