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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정서, 돌봄의 배를 띄우자

 

세월호 참사 1년이다. 이 글은 지난 해 세월호 참사를 겪고 한겨레출판사가 기획한 <한국 사회의 길을 묻다>에 기고해 실린 글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한국 사회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유가족들은 물론 국민을 기만하고 있는 뻔뻔한 정부가 더 강고하게 있을 뿐이다. 정부를 책임지고 있는 이들의 도덕적 해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다시 묻는다.

 

 

 

 

 

넋 빠진 대한민국이다. 홀로코스트는 계속 되고 있었다. 국가의 야만에 의해 파괴되어야 했던 소중한 목숨들이 바람처럼 불어오는 계절이다. 숱한 넋이 광장에서 내게로 달겨드는 오월을 지나 유월의 햇살이 너무 따갑다는 느낌으로 길을 걷는다. 내가 느끼는 세계와 거리에서 만나지는 일상의 모습은 혼란스럽다. 정오를 지난 시간에 하는 외출이 참으로 불편하다. 낯설게 존재의 위기감이 거친 숨과 함께 내부에서 스멀거리기 시작한 거다. 노동자들의 죽음, 세월호참사, 밀양사태, 정부의 인사참극, 전교조의 투쟁, 아무렇지 않게 또 7월이 열린다.

 

낯선 도시의 골목길을 돌고 돌아, 다시 빙 두리번거리며 겨우 도착한 그곳은 그 지역의 오래된 책방이었다. 그 책방 역시 시대의 흐름에 걸맞은 채비를 하고 대형서점으로 변신 중이다. 책방의 이름은 옛 것이지만 이미 그 모습은 없다. 주변에는 이런 변신이 일상처럼 일어난다. 우리의 윤택한 삶은 사물에서 시작되는 것일까. 사물을 바라보는 한 인간의 시선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니었나. 답답한 심정에 불러 세운 너마저 객기 넘치는 격한 목소리로 비아냥거리듯 술이나 한 잔 마시자며 날 더 아프게 한다.

 

도대체 이게 나라냐. 시궁창이지. 광화문 네거리에 늘어선 놈들을 봐.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 아니 더 나빠진 거겠지. 소용없어. 내가 광장에서 이리저리 끌려 다닐 때 늘 들었던 그 빨갱이라는 말을 이 나이 먹어도 집안 어른에게서 듣고 있거든. 희망 따위는 없어. 소용없다니까. 바라보고만 있어도 숨이 막힌다. 다 썩었어. 다 죽어야 돼. 나부터 시작해서 그 이후 나이 먹은 인간들이 다 죽 으면 바뀔 거다. 어떻게 이런 나라가 가능할 수 있는 것인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어. , 이 나라가 싫다.

 

내 기억 속에 너는 여전히 투사로 살아있는데 너는 자꾸 아니라고 한다. 술이나 퍼먹고 소리나 지르면 뭐하냐고 내 안으로 기어들어가는 소리를 낸다. 너는 여전히 투쟁하고 있는 거였어. 청년시절 느끼는 사회에서 만나는 낯선 시선들을 지금도 마주해야 하는 고통에 화가 나는 거겠지. 조직의 존립을 위해 국가를 이용하는 패거리 정치, 각종 마피아들이 판을 치며 사람을 가라앉게 한 대한민국이다. 반세기 가까이를 뒷걸음질 치며 광장에서 사람들이 왜, 저항하고 있는 지 기억하면 돼.

 

정치는 나의 삶을 공동체와 더불어 향유할 수 있도록, 좀 더 나은 세상에서 존재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해 주는 행위의 시스템이지. 나쁜 정부의 통치는 공동체에서 스스로를 자발적으로 복종하도록 만들어. 많은 사람들이 대의민주주의 시대에서 오로지 정치인들만이 정치를 하는 시대가 아니라는 점을 이해하지 못한다. 대표에게 맡겨놓고 먹고 사는 문제에만 매달려 있다면 우리는 고대 아테네에 사는 노예와 다름없잖아. 그렇게 말하는 내게 화를 내는 대상이 많아지면 한국사회에 다른 가능성이 생길거야.

 

 

현재를 살아가는 기성세대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해야 할 책임감을 기억하고, 포기하지 말자고 토닥거렸지만 네 마음을 알 것 같다. 한국 사회에 국민은 있지만 시민은 없다. 국가는 사람이 없는 교육과 시장을 만들며 언론 장악으로 현실과 타협하게 해왔어. 시키는 대로 순응하며 사는 것이 가장 편하다는 것을 배우게 만들었던 거야. 많은 신세대들이 자신에 대해서 확실하게 인지하는 것은 내가 누군가의 자식이고, 어딘가에 속해 있고, 어느 집단에서든 안전하면 된다는 거지. 자동적으로 학습되어 '?' 라는 말을 잃어버린 사회에서 나의 이해관계로 가장 편한 선택을 하는 것이 현실을 잘 살아가는 방법이란다.

 

이미지에 불과한 국가 정체성의 개념에 남아있는 나의 삶을 잃고 싶지 않다. 대한민국에서 국민의 역할은 있어도 주체의 존재감은 없어. 시민으로 존엄성과 의의를 찾아야 해. 내 나라, 나의 정원에 단 한 송이의 장미로 존재감을 뽐내고 싶다. 돌봄의 공동체에서 개별자로 살아가는 나의 모습이어야 한다. 현실을 초월하여 좀 더 고귀한 삶을 살아내기 위해서는 자기의 정체성, 자존감, 자부심이 중요한데 학벌사회에서 교육 과정을 무시한 채 존재감을 발휘할 방법은 흔하지 않잖아. 아이들은 학교를 거부하고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어.

 

공교육의 위기는 공동체를 교묘하게 해체하는 결과를 빚어내어 왔다고 하면 지나친 걸까. 여기, 한국 사회에 교육은 없었다. 개인의 성공과 이해관계로 개인의 잠재력이나 상상력이 발휘될 가능성을 애초에 원천 봉쇄해 왔지. 아이들은 권위주의의 억압으로 자신의 몸 사리기 급급하고, 획일적으로 주입된 사회적 성공이란 허울 좋은 허위욕망으로 허덕거려야만 해. 비주체로 사는 것이 덜 두렵게 다가오기에 사육당하는 교육 환경에서 주체로서 철저히 배제의 대상일 뿐이었어. 그런 결과로 발생하는 일들이 사회에 넘쳐나고 있었지만 국가는 표면적 대응과 감추기, 책임 전가에 급급했지.

 

 

 

청소년의 자살과 학교 폭력, 인권의 부재에서 보여지는 권위의 추락에 사람은 없다. 나 하나만이 아니라 너와 내가 만나 하나가 되는 것은 동양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했던 마음이었다. 이것이 서양과 다른 문화거든. 로빈슨 크루소처럼 무인도에서 혼자 떨어져서도 잘 버티어나가는 사람보다는 함께 협력하려는 우리의 공동체 정서이지. ‘내 엄마가 아니라 우리 엄마잖아. 강한 내가 약자인 너를 어깨동무하여 나아가는 것이 이 땅의 정서였다. 한국사회에도 우리만의 철학이 가능하다는 우리라는 시선을 찾아 가는 거지. '새로운 이념', '새로운 철학'이 나와 너에게서부터 마련되어 우리의 정서에 맞는 세상을 열어가야 해.

 

한국인의 기질 중에 가장 큰 특징은 '선함''강인함'이다. 절망적으로 학대 받지 않는 한, 늘 평화롭고 남을 해치지 않는 사람들로 고난의 역사를 보내 왔어. 착하고 순박하다가도 위험이 닥치면 무섭게 일어서는 용감한 사람들이기도 했지. 얼핏 바보 같지만 따뜻한 손을 옆 사람에게 내밀어 주는 좋은 사람들이 바로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야. 수세기를 거쳐 이러한 문화적인 정체성이 면면히 이어져 내려왔던 것을 기억해 내야만 해. 우리 어머니들이 물려준 강인함은 한국인의 정체성에 근원이기에 이렇게 오랜 시간을 지나면서 돌봄의 공동체를 향한 우리들의 마음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거야.

 

2014년 대한민국은 사회적 약자들과 검은 바다 속에서 죽어간 영혼들의 원통함을 함께 가슴에 새기는 어머니들의 통곡들로 이어지고 있잖아. 가족에서 사회로 서로 돌봄의 공동체가 가능한, 인간적인 형상을 지켜내기 위한 철학이 내 안에서 꿈틀거려야 해. 민주주의가 삶과 공존하게 되어질 때, 민주주의는 그 가치를 실현하게 될 것이고, 정치는 비로소 권력이 아니라 공동체를 향한 공론장이 될 거야. 친구야,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자들이 파괴된 인간성을 딛고 생물학적으로 견딜 수 있었던 기대는 삶의 의미를 기억하는 일이었어.

 

[416일의약속국민연대]를 소개하며 한국의 정서 돌봄의 공동체를 향한 당신이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나로부터 시작되는 작은 행동이 세상을 조금 더 나아지게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기억하려 한다. 내가 치루고 있는 이 잔인한 사월의 봄이 다시 열리지 않아야만 한다.

 

 

 

416일의약속국민연대(약칭:4.16연대)는 가족이 시민, 단체와 함께 꾸린 4.16참사에 대응한 통합적 상설단체이다.

 

4.16세월호 참사의 실종자, 희생자, 생존자 가족의 하나같은 요구인 실종자 완전수습, 세월호의 온전한 인양과 진상규명, 피해자에 대한 책임있는 지원이 이뤄지도록 하는 목표를 최우선적으로 두며, 나아가 4.16 참사 이후의 사회가 달라져야 한다는 국민적 요구를 범국민적 운동으로 발전시켜 국민의 안전, 존엄과 권리, 인권이 보장되도록 하며 침몰한 대한민국의 최종책임을 묻고 그 근본적 문제가 해결되도록 노력한다.

 

4.16연대는 단체 간의 임시 연대기구가 아닌 <시민회원 가입>을 기반으로 한 단일한 사회단체이며, 지역, 풀뿌리 간의 수평적 교류, 연결(네트워크)을 지향한다. 4.16이전과는 달라야 한다는 기억과 행동이 흩어지지 않고 일상적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회원가입제를 두고 회원단체로서 활동을 지향한다.

 

4.16연대는 무엇보다 가족과 통합적 운영을 통해 상설적인 논의집행을 원활히 하고, 또 시민회원을 기반으로 한 상설적 단체로서 일상적인 운동과 발 빠른 대응, 또 교류와 연결을 통한 빠른 소통과 정보공유를 펼쳐나가 4.16참사에 대응한 진실과 안전, 인양 실현을 최우선에서 해결해 나가도록 노력한다.

 

4.16연대는 새로운 시민운동으로서 다중심성 / 자발성 / 확장성 / 수평적 전국, 해외 네트워크를 지향한다.

 

[출처] http://416act.net/intro_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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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랏빛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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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의 아이들은 조금씩 드러나는 세월호참사와 관련된 정보들을 구체적으로 접해가며 충격에서 분노로 질문을 던집니다. 엉뚱한 말로 자신의 생각을 표출하기도 합니다.

 

저는 걸어갈 때 고개를 숙이며 다녔거든요. 이제부터 길을 걸어가면서 고개를 바로 들고 눈을 부리부리하게 다니고 있어요.”

 

 

왜냐고 묻는 나의 물음에 나온 답은 참으로 서글펐습니다. 이것은 어떤 정서로 아이들에게 다가선 것일까요. 나쁜 사람을 향한 분노의 또 다른 마음의 변화일까요. 만약에 현상금이 걸리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은 그만 두었습니다. 수사에 집중하기 보다는 여론몰이로 사실을 은폐하려는 수작인 것만 같아서 말이지요.

 

 

유병언 잡을려구요. 혹시 모르잖아요. 찾아보지 않는 지방의 한 작은 도시에서 돌아 다닐 지모르잖아요.”

 

현상금을 내걸어 눈길을 모으는 행태가 어째 반세기 전에 일어났던 간첩신고는 113’이 겹쳐집니다. 꽤 오랜 시간 나의 삶에 각인된 표어였던 것 같습니다. 그 때는 간첩 하나 신고해서 잡으면 대박인생이 되는 거였습니다. 말만 바뀌었지 국가 차원에서 조장하는 대박인생은 다양합니다. 삶을 이런 한탕주의에 의존하게 하는 사회 분위기는 사람보다는 돈이 먼저인 현실에 충분한 근거로 보여집니다. 도대체 얼만큼의 돈으로 한 목숨을 살릴 수 있다는 것일까요.

 

지방에 살고 있는 십대의 청소년들은 광장으로 나가 함께 행동할 수도 없습니다. 인터넷 뉴스로 접하는 대도시의 광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자신들이 작아만 져서 존재감도 없는 것 같다고 합니다. 그런 느낌들은 기성세대에게도 다가오는 끊임없는 스스로를 향한 질문이기도 하지요. 지금 할 수 있는 일들을 할 수는 있다고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눕니다. 6.4지방선거를 위한 투표참여와 제대로 된 정보들을 주변에 알릴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지요.

 

세월호참사로 겪는 트라우마는 우리들의 삶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습니다. 막연하게 파고드는 죄의식, 구해주지 못하고 아무 것도 해주지 못한 죄의식들이 슬픔과 함께 떠날 줄을 모릅니다. 죄의식과 슬픔들에 혼자 빠져들면 더 큰 불행이 찾아들겠지요. 함께 이야기 하고 표출하고, 극복할 수 있는 내일을 향한 무엇인가를 하는 것이 트라우마를 극복해 나갈 수 있는 방법이겠지요. 여전히 책임이 등가로 여겨지도록 해서는 안 되겠지요.

 

자본이 중심이 되어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현실에서 청소년들에게 미래에 대한 불안과 불신을 해소시킬 수 있는 최선의 노력들에 함께 힘을 실어야하겠지요. 돈이 그렇게 많지 않아도 삶은 풍요로워질 수 있다는 보다 인간적인 삶의 가치들을, 그 이야기를 우리 사회에서 들려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이들이 갖고 있는 잠재력들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교육 환경과 자신의 빛으로 채워갈 다양한 색깔로 물들여진 시간들로 향유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다양한 개인들이 저들만의 역할로 개별의 선을 추구한다면 우리 사회는 공동의 선으로 넘칠 것입니다. 이 글을 쓰면서 때마침 트위터에 올라온 적절한 사진을 찾아 사용여부를 쪽지로 보냈지요. 그는 자로 [네티즌 수사대] 국정원과 사이버사령부를 추적하는 네티즌 수사대로 스스로를 드러내며 활동하고 있습니다. 시민이 이슈공중으로 진보하는 거지요. 우리 사회가 좋은 삶을 누릴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작은 역할들이 정의를 세워갈 것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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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랏빛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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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의 햇살이 너무 따갑다는 느낌으로 길을 걷습니다. 거리는 저들 나름의 모습으로 치장하고 있습니다. 정오를 지난 시간에 하는 외출이 참으로 불편합니다. 내가 느끼는 세계와 거리에서 만나지는 세계는 너무 이질적입니다. 나는 사방이 책으로 둘러싸인 공간에서 자족의 풍요를 누리며 삽니다. 나의 풍요는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것으로 채워지지요. 크게 부족함을 못느끼며 살아갑니다. 이런 내게 낯설게도 존재의 위기감이 숨과 함께 내부에 차오릅니다. 늘 있었지만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았던 그들이 나의 시선이 멈추기를 바라는 듯햇습니다.

 

 

 

▲ '삵 자연으로 돌아가다’ 서울동물원에서 태어난 멸종위기 2급 야생동물 '삵' 5마리가 21일 오후 경기도 안산 시화호 상류습지에서 자연으로 방사되고 있다. 2014.3.21/뉴스1

 


낯선 도시의 골목길을 돌고 돌아, 다시 빙 돌아서 겨우 도착한 그곳은 그 지역의 오래된 책방이었습니다. 그 책방 역시 시대의 흐름에 걸맞은 채비를 하고 대형서점으로 변신 중이었습니다. 책방의 이름은 옛 것이지만 이미 그 모습은 없습니다. 내 주변에는 이런 변신이 일상처럼 일어납니다. 우리의 윤택한 삶은 사물에서 시작되는 것일까요. 사물을 바라보는 한 인간의 시선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니었는지요. 책으로 가득찬 그 공간에서 이끌리는 시선이 멈춘 것, 내가 선택한 100쪽의 책 한 권입니다. '깊이에의 강요/파트리크 쥐스킨트'였습니다.

 

<깊이가 없다>는 평론가의 말에 <깊이>가 무엇인지 구현하려다가 좌절하여 자살한 젊은 여류 화가의 이야기가 책의 내용 중에서 유독 시선을 끌었습니다. 소묘 화가로 재능있는 젊은 여인이 초대 전시회에서 한 평론가의 비평을 신문에서 읽은 후,'깊이'라는 그 말의 의미를 찾다가 결국에는 자살을 하지요. 바람이 몹시 불던 날이었기에 그녀의 몸은 아주 멀리 날려가 전나무 숲에 떨어졌는데 즉사했습니다. 자살 사건. 한때 전도양양했고 미모도 뛰어난 그녀의 특이한 형태의 죽음은 대중지의 보도 가치에 따라 그간의 끔찍한 그녀의 삶이 드러났습니다.

 

깊이가 없다는 평론을 한 그는 이제, 그녀의 죽음을 평론합니다. <거듭 뛰어난 재능을 가진 젊은 사람이 상황을 이겨낼 힘을 기르지 못한 것을 다 같이 지켜보아야 하다니, 이것은 남아있는 우리 모두에게 또 한 번 충격적인 사건이다....>라고 썼습니다. 그녀의 끔찍한 삶은 그대의 상상력에 맡기려 합니다. 그렇습니다. 나의 시선이 말이 되어 어느 대상에 꽂힐 때, 감히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질 수 있기도 한 것입니다. 한 국가의 수장이 한 말이 비수처럼 꽂힙니다. 그런 5월은 이 땅에 황망하게 떠도는 숱한 영혼들의 말들로 찾아옵니다.

 

국가의 야만에 의해 파괴되어야 했던 소중한 목숨들이 바람처럼 불어오는 달이기도 하지요. 5.16 군사쿠데타와 5.18 민주항쟁으로 스러져간 넋들이 떠돌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보 대통령의 영혼이 광장에서 내 가슴을 향해 그리움을 담은 바람으로 넘치는 달입니다. 오늘의 광장에 더해진 세월호의 맑은 영혼들까지, 이 5월은 그렇게 우리들을 ‘깊이 있는 인간’으로 서게 하고 있습니다. 심리분석가 마거릿 말러가 첨단 기업들의 관행으로 ‘존재론적 불안정’을 말했습니다. 이것은 정신분석학적 전문용어만은 아니었습니다.

 

존재론적 불안정은 재앙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벌어질 일을 두려워하는 것이며, 특정 상황에서 이렇다 할 개인적 이유 없이 걱정에 빠져든다는 의미입니다. 대한민국은 이미 기업이 되어 있었습니다. 사유화된 국가는 국민을 이용해서 이윤을 추구하려 합니다. 재난을 이용해서 이윤을 취하려는 국가는, 국민의 생명을 이윤의 수단으로 전락시킨 금수(禽獸)일 뿐입니다. 이것이 저들이 말하는 창조경제일지요. 공동체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에 최선을 다할 주체인 정부는 희생의 시스템을 가동하는 허언들로 넘칩니다. 국가의 존재, '믿음'이 사라졌습니다.

 

정치와 경제를 공간적으로 갈라놓은 고대 아테네인들은 민주주의의 미래를 예견한 듯합니다. 사람들이 돈벌이에 신경 쓰다보면 정치에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게 된다는 고전적인 명제를 생각하도록 하고 있네요. 플라톤이 국가는 경제에서 요구하는 필요와 탐욕이 아닌 정의에 근거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는 현대 국가와 국민들이 깊이 있게 생각해야 할 말이었습니다. 정치와 경제가 유착되어 벌어질 수 있는 일들은 안타깝게도 이 땅에서 여전합니다. 정치도 소비의 한 형태일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라면 소비자인 나는 단호하게 금수정부를 거부 하겠습니다. 나는 사람입니다.

 

 

 


 

Posted by 보랏빛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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